헐렁한 자연인처럼 제주 살기 <7>
[김밥 같은 사람]
비는 안 오지만 우중충한 날씨다. 비양도는 다음에 가기로 하고 메밀밭에 사진을 찍으러 간다. 가는 길에 만난 진짜 음식 김밥. 양파 장아찌를 넣은. 기본 김밥에 햄이 안 들어가다니. 최고의 김밥이다. 평생 죽을 때까지 하나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김밥이다. 제주 밭일하시는 분들이나 배타시는 분들이 포장해 먹는다는 김밥. '김밥은 믿음직스럽다. 속재료를 한눈에 알 수 있어 예상 밖의 식감이나 맛에 놀랄 일이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대사이다. 어쩌면 기교 없이 맛을 내는 진짜 음식이지 않을까. 속 재료의 그 맛 하나하나 느껴지고 씹을수록 어우러진다. 김밥 같은 사람이 돼야지.
[1일 사진작가]
쥰의 새로운 카메라로 메밀꽃과 코스모스밭에서 사진을 찍는다. 해인과는 올해 스냅사진 등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졔와 쥰이 찍어준 감사한 사진들. 사랑스러운 그들의 모습도 남겨준다. 사진도 몰입. 피사체를 향한 사랑이 드러나는 사진이 좋은 사진인가 보다. 지미와 같이 셋이 찍은 사진은 참 귀하다. 제주에서의 기쁜 날들을 기록해 주어 감사.
[엄마의 로망]
추석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며느리 은퇴를 선언한 정이(엄마). 정이 인생 처음으로 시집간 이후 추석 전날에 정이의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낸다. 항상 시골에서 차례를 지내고 추석 당일에 자매들과만 만났는데. 이번에는 정이의 남자 형제들과 추석 음식을 함께 장만한다. 정이는 평소에 갖고 싶은 것을 얘기하지 않는다. 딱 하나 얘기했던 흔들의자. 카페에 놓여있는 흔들의자를 바라보니 정이의 로망과 지나간 세월들이 느껴진다. 드디어 꿈을 이뤘을까. 흔들의자에서 보내는 안락한 시간처럼 훨훨 날아가길 바란다.
[추나꾼]
한의원에서 받은 추나를 돌돌이로 따라 한다. 추나꾼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뭐든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는 일이라면 오케이! 적극적으로 추나꾼이 되겠어.
[오늘의 어록]
“결혼하고 싶어.”
“시간 언제 돼?”
[도토리식당]
도토리 같은 음식들. 큰 것들에 질려버린 걸까. 자그마한 것들이 사랑스럽다. 조그마한 것들에 힘이 있다. 작은 것들은 포용적이다. 귀엽다. 세심하다. 예전에는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작은 이가 되어야지.
[알아차림]
매일 바다 색은 다르다. 밀물과 썰물의 시간과 속도, 깊이도 다르다. 파도의 크기도 다르다. 윤슬도 다르다. 같은 시간에 같은 바다를 바라보니 그 차이가 느껴진다. 어느 것 하나 같은 날이 없다. 매일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바람, 온도, 습도, 햇살. 이것이야 말로 명상이 아닌가. 물속에서 바라보면 더욱 느껴진다. 물속에서 나는 소리가 다르다. 파도가 귀에 부딪치는 소리도 다르다. 알아차림. 명상의 시간들이다. 기분도, 생각도 매 순간 달라진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에 태도까지 변하진 않길. 기분을 알아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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