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나모 Sep 21.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5/100

남의 집에 세 들어 산다는 것. #1

100일을 연달아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쩌다 보니 연속 글쓰기는 진작에 실패하였네요. 

그래도 100개의 글을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엔 100개를 채울 수 있겠죠. 



학기 시작은 고작 몇 주 남아있었지만 지낼 집을 구하질 못했었다. 이래저래 집을 알아보려고 하던 중 30분 정도 떨어진 이모 집에서 통학을 하는 친구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모 집에 남는 방에 세 들어 살래?


지하실에는 방 하나와 나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다. 너무 넓어서 무섭기까지 한 거실도 있었는데 그 거실은 어찌 보면 그 집 강아지의 화장실이었다. 아직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강아지는 항상 지하실 어딘가에 똥을 숨겨두고 올라가곤 했으니까.


창문이 없고 작은 방이지만, 화장실도 혼자 사용하고 별로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당장 지낼 곳이 없으니 이곳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천천히 집을 알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덥석 그래도 되냐고 대답했다.


이사하는 날은 그 집 식구들이 모두 나와 반겨줬다. 친구와 이모네 가족들. 가족 중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살 많은 언니도 있어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왔으니 함께 밥을 먹자며 저녁을 함께 먹고 지하 내 방으로 내려와 위층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다. 그래도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외롭지는 않네.


하지만 역시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건 눈칫밥 먹는 지름길이라고 불과 몇 주가 지나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모두 쓰는 주방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주방은 하나였고 그 하나 있는 주방은 이미 사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꽉꽉 차 있어서 도대체 내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세를 한 번도 준 적이 없던 친구의 이모는 언젠가부터 불편한 티를 내기 시작하셨다. 아마도 내가 지하에 있는 걸 알면서 식구들끼리 밥을 먹기도, 그렇다고 매 끼니 나를 챙기기도 애매한 그런 상황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나 전에는 한 번도 세를 준 적이 없었으니, 남과 한집을 공유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미리 알지 못하셨을 일이다. 나만 홀로 이방인인 그 집에서 나도 그 이모님도 서로 어색하고 불편했다. 


사람이 슬프게도 비슷한 시간에 배가 고프다는 걸 그때쯤 알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쯤이면 위에서도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다른 식구들이 모두 식사를 하는 중에 내가 올라가서 나 혼자 먹을 밥을 하는 것도 참 모양이 그랬다. 그런 날이 지속하니 과자나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적도 많았다. 가끔은 친구가 내려와 같이 밥 먹을 거냐고 물어봐 주었지만 괜찮다며 일찍 자겠다고 침대에 누워 부딪치는 그릇 소리를 들으며 운 적도 몇 번 있었다. 밥이 뭐라고 내 마음대로 맘 편하게 뭘 해 먹지 못하는 그 순간이 참 서러웠다.


몇 주 되지 않아 나는 다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친구의 이모의 불편한 티가 점점 눈에 띄게 심해지고, 지하에 커피포트나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놓고 쓰면 되겠다는 말을 들으니 이 집에서 더는 나의 서러운 마음을 키우지 않고 지낼 자신이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주변 집들을 돌아다니며 세주는 방을 찾았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방 한 개를 계약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집에 돌아오니 친구의 이모님은 자기 집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웃으면서 네 집은 이미 구했다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행이네라고 말하는 이모님의 눈에서 애매모호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도 둘의 골의 깊이가 이 정도일 때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리 집을 구하지 못했다면 서러움에 눈물을 참고 방으로 내려와 펑펑 울었을 수도 있다. 집을 구해 나가라고 했던 이모님의 입에서 알싸하게 나던 담배 냄새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마 이모님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시는 게 쉽지는 않았겠지.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4/1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