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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Sep 12.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4/100

내가 좋아하는 이상한 것 #2

유난히 집에서 입는 옷들에 까탈스러운 법이다.


외출복으로 입는 옷들은 디자인과 재질만 보고 사 입는 편이지만, 집에서 입는 옷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남겨진 유물들이다. 저렴해야 하며, 소유한 지 5년은 넘어야 되고, 무조건 넉넉한 크기에 두께는 적당해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몸에 착 감기듯 부드러운 촉감이다. 이 모든 것을 만족하기란 쉽지 않아서, 한번, 이 옷이 되면 몇 년이 지나도 버리기가 힘들다. 비록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이 되어버리지만, 뭐 어떤가? 집에서만 입는 옷인데.


옷 #1 - 제이의 단체 티 (4살쯤?)

역시 집에서 입는 옷은 단체 티셔츠가 제일이다. 제이가 몇 년 전 고등학교 동기들과 놀러 갈 때 맞췄던 단체 티는 초여름, 초가을에 입기에 완벽한 집 옷이다. 남자들이 맞춘 티셔츠가 사이즈가 넉넉하면서 충분히 도톰한 이 티셔츠는 검은색이라 더더욱 큰 점수를 준다. 뭐 먹다 흘려도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색깔이고, 빨래도 쉬운 최고의 장점이 있다. 게다가 단체 티라 어차피 집 밖에 입고 나가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니 집에서 저만한 옷이 없다.


옷 #2 - 뚱의 검정 티 (최소 7살)

#1과 대적한 만한 옷은 내 동생 옷장에서 훔쳐 온 검정 티셔츠이다. 단체 티와 스펙이 거의 비슷한데 크기는 약간 작은 이 옷은, 나름대로 브랜드가 있는 옷이라 촉감이 더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다. 더 큰 장점은 옷의 디자인이 바깥세상과 소통 가능하다는 것이라 실내에서 입고 있다 외출을 할 때에도 종종 입고 나가곤 한다. 옷에 달린 앞주머니는 전혀 사용할 일 없지만, 왠지 그 주머니 덕에 집 옷 중 가장 고급스러워서 아껴 입는(?) 옷 중 하나이다.


옷 #3- 전 남자 친구의 회색 티 (최소 10살)

어쩌다 이 옷이 아직 내 옷장에 남아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이 옷의 완벽함 때문이다. 한여름에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은 이 옷의 재질은 목이 한껏 늘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의 이사에서 살아남았다. 항상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지만, 집에서는 정말 이만한 옷이 없다. 집 옷은 나와 제이가 모두 공유하여 같이 입는 편인데, 이 티셔츠는 제이도 많이 좋아한다. 전 남자 친구의 옷을 현 남편이 입고 있는 아이러니. 하지만 이 옷을 대체할만한 옷을 아직 찾지 못했다.


옷#4 - 제이의 초록 Guess 티셔츠 (최소 10년)

나의 전용 옷. 제이가 들고 왔지만 이제는 내 옷이 되어버린 초록 티셔츠는 사이즈가 좀 작아서 내 옷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집 옷들이 회색, 검정과 같이 칙칙하지만, 이 옷은 물이 빠진 초록색으로 나름 상큼함을 자랑한다. 옷장에 유일한 색깔의 옷이라 눈에 잘 띄는 것도 장점. 그래서인지 여름 반소매 집 왔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옷이기도 하다. 나름 브랜드 옷이지만 이제는 그 로고조차 다 헤져서 무슨 옷인지 모를 이 옷은 지금 현재 내가 입고 있는 옷이다.



위의 옷들은 정말 엄선된 나의 실내복들이다. 몇 년 동안 수십 장의 티셔츠를 구매했지만 집 옷으로 신분 상승한 몇 안 되는 녀석들이다. 어쩌면 나는 외출복보다 저 티셔츠를 더 아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옷장에서 사라지면 한참을 찾아 헤매는 녀석들. 그러다가 빨래통에서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 옷에 대한 집착은 진심이다. 예쁜 옷이야 매장에 가면 널리고 널렸지만, 저 옷들은 세상 어디를 가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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