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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Sep 09.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 #33/100

아인슈타인과의 과외

나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3월에 태어났지만, 호적상의 생일은 2월로 되어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나와 같은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2월생이면 초등학교를 1년 빠르게 입학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빨리빨리 나라 국민답게 무조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뭐든 시키려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나는 남들보다 1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이를 이만큼 먹으니 친구들보다 고작 몇 개월 어려서 한 살 적은 나이가 눈물 나게 감사할 일이지만, 7살의 초등학교 1학년생의 나는 큰 재앙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뭐든 느린 나는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엄마는 학교 수업에 한참 뒤처진 나를 보며 뒤에서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었다. 내 욕심에 애를 괜히 학교 빨리 보내서 저렇게 되었네..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못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처참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 정도면 말 안 해도 알만하다. 공부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내 초등학교 시절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사건이 있는데 일명 아인슈타인 할아버지 사건이다.


그날도 퇴근한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열심히 수학 문제를 알려줬었다. 무슨 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 못 하지만 13+36 = 10+3+10+10+10+6 = 40+3+6 = 49의 수식에 네모 칸을 채우는? 그런 문제였다. 아마도 시험을 앞두고 0이 적힌 시험지는 절대 받을 수 없었던 엄마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똥 멍청이라며 뒤통수를 칠 것 같은 저 쉬운 문제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 엄마에게 혼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잠들 때까지 나는 저 문제를 한 개도 풀지 못했다.


그리고 꿈에서 나는 아인슈타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 할아버지가 누군지 몰랐지만 우유 광고에 나왔던 똑똑한 과학자 할아버지는 꿈속에서 나에게 저 수식을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외국인 할아버지가 어찌나 한국말은 잘하던지 한참 꿈속에서 수업하고 눈을 뜨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 문제를 내달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냐면서도 문제를 내주셨는데, 그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냈다. 그럼 누구한테 과외를 받았는데. 나도 내가 신기했으니 엄마는 오죽하셨으랴. 그래도 어쨌든 수학 바보였던 딸이 자고 일어나니 바보는 면했다는 사실에 엄마는 더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신기하다. 꿈을 꾸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작가들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초등학생이 자다 일어나 못 풀던 수학 문제를 푼다니. 그때의 기억이 꽤 강렬했는지 그 뒤로 수학은 내가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가 되었다. 수학 하나 잘해서 그나마 대학이라도 갈 수 있었으니 그 모든 공은 그때 내 꿈속에 나오셨던 아인슈타인 할아버지에게 돌립니다.


아쉽게도 저런 행운은 그 뒤로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일생의 한번 있는 기회라면 조금 아껴뒀다 복권번호라던지 창업 아이디어를 알려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고작 두 자릿수 덧셈 문제에 소진한 걸 보니 나는 역시나 계산이 빠른 사람은 아니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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