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나모 Sep 28.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8/100

남의 집에 세 들어 산다는 것. #2

4명의 여자가 한집에 산다는 건 어쩌면 평생 하고 싶지 않을 경험이다.


방 세 개의 집에 네 명이 사는 것이 가능했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거실에도 칸막이를 놓고 한 명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덕분에 월세는 말도 안 되게 쌌으니 그때의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것이 옳았다.


방은 세 개지만 화장실과 부엌은 하나였기에 화장실과 부엌은 항상 바빴다. 정확하게 사 등분 한 냉장고에 우유 요구르트 그리고 어제저녁 먹고 남은 음식을 테이크 아웃해서 넣어두면 아무것도 넣을 공간이 없었다. 네 명이 사용하는 식당에서 종일 요리를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시리얼 과자같이 보관용 음식을 많이 먹었다. 팬트리는 항상 꽉 차 있었지만, 도대체 건강한 음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집이었다.


화장실은 부엌보다 더 바빴다. 아침이 되면 앞사람이 사용한 김이 빠지기도 전에 화장실로 다음 사람이 들어갔다. 종종 타이밍을 놓친 날이면 수업에 늦지 않게 부엌에서 이만 닦고 나간 날도 많았다. 욕조를 빙 둘러 샴푸와 컨디셔너 바다 샤워용품이 줄지어 있지만 비싸고 좋은 것들은 항상 방으로 들고 왔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겠지만 어째서인지 방에 놓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다행히 내방은 그 집에서 가장 넓었고 창이 많았다. 덕분에 겨울엔 창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창이 작고 따뜻한 다른 방에 비해 내 방이 유독 추웠기에 다른 룸메이트들은 겨울에 크게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관리비도 정확하게 4명이 나눠서 내기에 나만 춥다고 히터를 트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너무 추워 히터를 틀면 몇십 분 뒤 히터는 꺼졌다. 자동 타이머 기능 따위는 없는 히터였으니 누군가는 내가 중앙 히터를 쓰는 것이 꽤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비싸고 좋은 포터블 히터는 사치였을 그때, 마트에서 가장 싼 시끄럽고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작은 히터를 샀다. 반경 30cm만 따뜻하게 해주는 히터 덕분에 시끄럽게 울리던 히터 팬 소리는 겨울이 지나 봄이 와도 내 귀에서 윙윙거리는 듯했다. 아무리 틀어도 따뜻하지 않았던 히터를 옆에 두고 마트에서 가장 싼 에어매트리스 위에서 6개월을 보냈었다. 6개월의 싼 방값과 바꾼 내 허리는 지금도 종종 나를 괴롭힌다. 이래서 돈 아끼려다 더 큰돈 쓴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그 집에서 옆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노랫소리에, 다른 룸메이트들의 친구 초대에 나도 나의 방식대로 복수를 하며 즐겁게 지냈다. 가끔 음식을 하면 같이 나눠먹기도 하였지만 6개월의 짧은 생활로 룸메들과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었다. 6개월 이상 있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낡은 창문 때문이었으니, 불편하긴 했지만 최악의 룸메이트들은 아니었다. 


지금도 허리가 아플 때면 저 집을 생각한다. 에어 매트리스에서 자던 젊은 나는 이제는 메모리폼 침대에 누워 아픈 허리를 지근거리면서 잘 수 있을 만큼 나이 먹었고, 돈도 벌었다. 아프지 않은 허리를 가지고 있던 20대 초반의 내가 그렇게 허리를 혹사했기에 지금의 내가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가지고 있는 것일 테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7/1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