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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Sep 30.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9/100

코로나 시대의 추석

나는 맏며느리의 딸이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할머니는 부엌에 그 유명한 빨간 대야를 가져오셨다. 그리고 그 빨간 대야는 곧 동그랑땡 전 재료로 채워졌다. 수백 개쯤 되는 동그랑땡을 도대체 누가 다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전을 부치는 작은엄마와 엄마 사이에서 동그랗게 재료를 뭉쳐 밀가루 그릇으로 옮기는 것은 나의 역할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명절 음식 준비의 나의 역할도 점점 커졌다.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니 전을 부친다든지, 나물을 볶는 일은 나의 업무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를 도와 음식 준비를 하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항상 잘 배워서 결혼하면 시집에 가서 귀염받겠다고 좋아하셨지만, 나는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엄마가 혼자 고생하는 것이 싫어서였지 뭘 배우겠다는 마음은 절대 아니었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다행히 우리 집은 아빠도 명절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집이다. 송편도 함께 만들고, 전도 함께 부치는 아빠는 분명 대한민국 59년생의 남자 중 상위 1%의 가정적 남편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며느리인 엄마의 일이 제일 많았다. 엄마나 작은엄마에 비하면 별로 하는 일도 없는 나이지만,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니 왜 대한의 며느리들이 명절 우울증에 걸리는지 조금을 알 것도 같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엄마의 며느리 경력이 30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우리 집은 전을 더는 부치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는 매번 전을 부치지 않으니 명절 같지가 않다며 싫은 티를 내셨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시지는 못하셨다. 20년 넘게 명절 전날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전을 만들던 작은엄마도 몇 년 전부터는 명절날에만 와서 차례를 지내고 가시게 되었다. 동네의 유명한 반찬집에서 명절 전날 먹을 만큼만 전을 주문해서 받아 오니 명절 전날 할 일이 1/3로 줄었기 때문이다.


전을 사더라도 여전히 명절에 할 일은 많다. 전날 장도 봐야 하고 차례를 지내고 나면 나오는 끝없는 그릇 설거지를 다 하고 나면 발바닥이 욱신욱신 여전히 쉽지가 않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간편해진 우리 집 명절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엄마의 명절 연휴는 차례가 끝나야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올 추석은 좀 다르다. 코로나 덕(?)에 아빠는 올 추석 차례는 과감하게 패스하겠다고 선언했다. 살다 보니 참 별일이 다 있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아마도 우리 집의 올 추석은 평생에 가장 조용하고 편안한 연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고생했던 엄마 아빠가 올 연휴 내내 정말 연휴답게 쉬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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