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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May 12. 2023

너와 나의 몸이 연대하는 곳

말하는 몸1: 몸의 기억과 마주하는 여성들

<말하는 몸>을 처음 발견했을 때, 제목만으로도 기다리던 이야기가 드디어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매대에서 늘 만지작거리기만 했습니다. 몸이 주저합니다. 위험하다. 그런 신호입니다. 결단코 이 책은 나를 다치게 하고야 말거라는.


맞을 만한 정도의 비를 맞으며 들어온 서점에서 책을 세 권쯤 골라놓고 서성거리다가 나란히 꽂힌 이 두 권의 책을 더 얹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자해인가 하면서 계산을 합니다. 그날 밤, 맞기에는 현란한 빗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열었습니다.




표지에 그려진, 구 위에 올라 균형을 잡고 있는 여자는 아무래도 ‘하… 그냥 넘어져버릴까?’하고 생각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툭. 퍽. 아야! 통증에 정신이 들고, 일어서니 발 밑 땅이 울렁울렁합니다. 너무 오랜시간 구르지 않으려는 구 위에서 지냈던 시간의 관성입니다.


흔들거리던 여자는 그가 서 있었던 구를 쏘아봅니다. 땅과 무슨 원수가 져서 땅으로부터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면적만을 남겨버린 구 덩어리. 그 위에 올라선 위태로웠던 나날들. 결심. 그래 이걸 굴려버리자.


굴려서 굴려서 골고루 굴려서 망쳐버리자. 땅 안 뭍은 곳 하나 없게 망쳐버리자. 망쳐서 망쳐서 하나되자. 너도 나도 땅이 되어버리자. 그 땅이 넓어지고 넓어져서 만나자. 이 대지를 나도 딛고 너도 딛고 또 다른 나도 또 다른 너도 딛고 딛어서 놀아버리자. 구가 구르기 시작한다. 함께 구르자.




그렇게 목소리를 내 놓은 43인의 여자들과 함께 진탕 굴러보았습니다. 미리 감각했던대로 나는 이야기들에 다쳤고 쓰라렸습니다. 그래도 단숨에 읽어 나간 것은 이 아픈 공감대를 속으로만 앓기에는 내가 곯았다는 걸 읽을 수록 느꼈기 때문입니다.


몸. 온전히 내 것이라고 주장 할만한 것은 이것 뿐입니다. 세상의 일정 부분 공간을 차지하는 나만의 부피. 피부가 구획해내는 나의 형이하학적 현현. 찰나찰나 변화하면서도 나의 역사성을 잃지 않는 것. 몸.




하지만 일그러진 나의 신체자아상은 어떤 기억의 억압이기에 이 이야기들을 읽는 것 만으로도 나는 쉽게 다치고야 마는 걸까요. 기억들이 엄정하다는 것을 이미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의 잘디 잘은 마음 때문입니다.


어떤 밀실에서야 겨우 한마디 떼어 볼까요. 말 할 수 없음에서 말 할 수 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안전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정상성의 안전 말입니다. 이 담대한 목소리들을 듣고서도 초라한 안전을 꾸며내기 위해 여전히 땅을 밀어내는 나의 구에 올라타 곡예를 벌이는 불안을 감수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나 부끄러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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