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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May 18. 2023

하찮고 시시한 것들의 만만한 위로

<아이스크림: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하현

꽉 막힌 날이 있었습니다. 달아나고 싶지만 여행을 할 만한 돈도 여유도 없는 그런 시절에는 무작정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녹색 버스를 잡아 탑니다. 느릿느릿 구석구석, 왠만한 정류장은 모두 오지랖 넓게 살피는 그런 버스.


그런 버스가 나를 싣고 점점 좁아지는 길과 낮아지는 건물들 사이로 들어설 때,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했더니, 나 살던 옛 동네인 것을 알아차리고 내리겠다 했습니다. 이사를 자주 다녀 초등학교만 세 군데를 다녔는데 가장 오랜 시절 다녔던 곳 입니다.




친구 집에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가 우리 집과 꽤 멀어져 겁이 들었던 기억이 언뜻 돋는 골목부터 시작해 돌다보니 학교가 보입니다. 학교에 들어가 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담을 따라 한 바퀴 휘 돌았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메타세콰이어도 등나무도 모두 사라져버리고, 살았던 관사 자리에는 놀이터가 들어섰고,건물은 다시 지은 것 같지는 않지만 꽤 말끔해졌습니다. 시시해져서 괜히 발 끝을 툴툴거리는데, 문방구가 보입니다.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문방구의 감성은 그대로 입니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무심한 척 둘러보지만, 자그맣고 유치한 것들이 마음을 자극합니다. 원색의 군것질 거리도요. 설레이는 손에게 뭐라도 하나쯤 들려주고 싶어 처음보는 불량식품 하나와 수박바 하나를 골랐습니다.




불량식품은 희한한 맛입니다. 이게 무슨 맛이지? 아이들은 이런게 맛있다는 건가? 생각하다 참 어른들스러운 발상이라는 것 깨닫고는 변한건 학교만이 아니구나. 참 나도 시시해졌다 하고 수박바 봉지를 뜯었습니다.


색이 좀 옅어진것도 같지만, 베어물면 사각거리는 것도 그 빨간 단 맛도 한두개씩 들어오는 초콜릿도 아쉬운 녹색 껍질도. 너무 차갑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아서 좋은 느낌도. 좋습니다.


옛 학교도 나도 시시해져버렸지만, 수박바는 내 입맛에 여전합니다. 좋았던 것이 여전히 좋아서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빈 막대를 쪽쪽거리는게 발 끝을 톡톡거리는게 이제는 막힌 게 좀 풀렸다는 신호입니다.




나는 이제 다시 돌아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 또 해보지 뭐. 수험생시절도 또 한 때겠지. 이제 가자. 수박바 덕분에 달고 시원해진 몸이 기운을 차렸습니다. 하찮고 시시한마음을 달래주는 하찮고 시시한 아이스크림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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