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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안 May 22. 2023

나는 여전히 네가 궁금해

<사랑: 삶의 재발명> 임지연, 은행나무

어떤 다른 우주도 아닌 내가 살아있는 바로 지금의 시공간에 나와 완벽히 동일한 존재가 살아있다고 가정해봅니다. 나는 그것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존재는 나의 바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와 다른 것일테지만, 한번 가정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내가 나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느냐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정말 ‘사랑’을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장르는 동일자의 로맨스. 주인공은 하나 아닌 하나. 나르시시즘의 모티프. 만남의 계기도 헤어짐의 동기도 없는 꿈결같은 플롯.  어떠한 말로도 형용되지 않는 무언의 에피소드. 닿음 없는 에로스. 그리하여 어떠한 ‘차이’도 허용하지 않는 이야기. 과연 이 이야기는 삶에 ‘재현’될 수 있을까요?


“사랑을 재발견하고 재발명하는 것은 삶을 재발견하고 재발명하는 일과 같다.”(p12)


어떤 변환에도 처음 상태와 구별할 수 없는 대칭성. 그 완벽한 대칭성을 찬양하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서사일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흔들어도 ‘나’는 원래 상태의 ‘나’로서 유지되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에 아주 단호한 평점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라구요. 더욱이 ‘사랑’은 더더욱 아니라구요. 왜냐하면 사랑하기 전과 사랑한 후의 내가 원형 그대로의 동일한 사람이라면, 사랑은 삶에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체들은 자기의 경계를 허물고 침입하는(사랑하는) 타인을 즐거우면서도 고통스럽게 환대해야 하는 역설적 존재이다.”(p61)


그러므로 사랑이 가능하기 위한 단 하나의 전제는 ‘타자’와의 만남입니다. 그것은 나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안정을 해칩니다. 늘 변화하고 불확실하며 고로 인식의 틀을 깨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시무시한 ‘타자‘만이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나를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로부터 내가 아닌 내가 되어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삶의 재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자면 우리는 ‘타자’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또 우리는 ’타자‘ 안으로 나를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낯선 사태들을 겪어내야합니다.

그러한 이후에 사랑은 이룩해야할 무언가가 아닌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타자는 늘 변화하고 우리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사랑만이 그 궁금증을 해소해 줄테니까요.


내 사랑에게 나의 사랑을 고백한다면 “난 네기 늘 궁금할거야”라고 말할 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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