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다

장전 벚꽃길

by 모비

꽃 진다.


아침 촬영 모임을 핑계 삼아서 벚꽃길에 다녀왔다. 50mm 렌즈를 물리고 외투 주머니에 반쯤 고장 난 20mm 팬케익 렌즈 하나만 넣어 동네 편의점 가는 사람처럼 다녔다. 벚꽃은 하얀 세상이니까 자동모드에서 노출은 한 스탭 올린다. 아스팔트에 떨어진 꽃잎을 찍을 때는 한 스탭 낮춘다.


내가 사는 동네 장전리는 벚꽃 나무가 많다. 매년 봄에는 벚꽃 축제도 한다. 꽃이 피는 시기는 꽃나무 마음이라, 축제 날짜를 정할 때는 항상 조마조마하고 일단 날짜가 정해지면 이제나저제나 하며 꽃나무 눈치를 살핀다. 축제는 이틀 동안 옛 도로 일부를 통제하고 진행하는데, 올해는 좀처럼 기미가 없더니 축제 시작 이틀 전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준비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2차선 도로 양쪽에 도열한 나무들은 오래 자라서 꽃가지로 도로의 하늘을 덮는다. 아직 다 덮이지 않은 하늘 아래로 사람이 많이 다녀갔다.


축제라고 하지만 벚꽃이 핀 축제 장소는 300미터가 채 안 된다. 몇 년 전 새 도로가 나기 전까지는 광령에서 하가리에 이르는 수 킬로미터 구간이 모두 벚꽃 가로수길이었지만 넓고 곧은 새 도로가 생기면서 구불구불한 옛길은 군데군데 끊어졌고, 끊어진 한 토막의 벚꽃으로 축제를 연다. 새로 놓인 길 양편으로도 벚꽃나무 묘목을 심었는데, 저 나무들이 아름드리 자라는 데는 몇십 년이 걸릴 것이고, 자란다 한들 왕복 사차선의 하늘을 채우기는 역부족일 것 같다.


이번 봄에는 우리 집 마당에도 벚꽃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아내는 농담처럼 말했다.


장전에 살면 마당에 벚꽃 한 그루는 있어야지.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나무시장에 가니 작은 것은 5,500원, 큰 것은 32,000원에 팔고 있었다. 온갖 아기나무들이 각자 구획을 갖고 열 맞춰 선 그곳에서 아기나무들은 저들도 벚꽃이라고 나름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 두어 해는 자랐을 것 같은 나무를 골랐다. 32,000원. 5,500원에 두어해 시간 값을 보탠 셈이다. 이미 꽃이 달린 나무를 가져와 심으니 어제까지 없던 벚꽃이 오늘 생겨났다. 우리 사진관, 벚꽃이 피는 집이다.


활짝 펴서 가지 끝마다 뭉텅뭉텅한 벚꽃이 하나둘 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오르막을 다 올라온 청룡열차가 내리막 앞에서 잠시 멈추는 찰나, 벚꽃 구경은 지금부터다. 이제 바람 한 번 불 때마다 가지가 후드득, 흔들리면 꽃잎은 비처럼 쏟아질 테고 그러는 며칠 사이 비라도 한 번 내리면 그걸로 올해 벚꽃 구경도 끝난다. 그 뒤에는 초록의 잎이 싱그럽겠지만, 온 산과 들이 함께 초록초록하니까 흰색의 꽃만큼 세상에 홀로 피는 존재감이 없고 다만 초록 속에 묻힌다.


만개하는 벚꽃을 보고 꽃잎의 비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저렇게 풍성하게 세상을 다 덮을 것처럼 매달린 꽃의 온전한 세상이 개별 꽃잎 단위로 산산이 부서진다. 느리게 찍는 사진 속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린다. 무리 지어 매달린 연분홍 꽃더미와 방울방울 흩날리는 꽃잎을 같은 벚꽃이라고 아는 것은 기억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벚꽃을 처음 보는 사람을 데려온다면 피는 것과 지는 것은 엄연하게 다른 풍경이랄 것 같다. 이렇게 질 꽃이라면 차라리 필 때도 하늘에서 흩날려와 매달렸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어느 밤 사이 사라지듯 나무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 지거나.


벚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하면

이를 어째, 이를 어째!

하게 된다.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는 봄이 아쉬운 것도 아니지만 지는 벚꽃잎은 이를 어쩌나 싶다.


꽃 진다. 계절이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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