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컷도 주실 수 있나요?

B컷도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메일로 받을 수 있을까요?

며칠 전에 택배로 보낸 사진이 잘 도착한 모양이다. 마음에 든다는 반가운 문자 뒤에, 프린트해서 보낸 사진 외에 다른 사진들도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온다.

사진관에는 카메라와 연결된 큰 모니터가 있어서 촬영과 동시에 대형 모니터에 사진이 나타난다. 어두운 배경과 세밀한 조명이 조합된 사진 속에서, 모델은 평소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놀란다. 가족사진을 찍을 때는 더 하다. 가장 가까운 사이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어 보인다. 휴대폰으로 모니터 화면의 사진을 찍는 분들께 말해준다.

안 찍으셔도 돼요. 나중에 정리해서 파일로 드릴게요.

고래를 위한 포트레이트라고 이름 붙인 개인 흑백 사진 작업에서 내가 선택하는 사진은 세 장이다. 골라서 후반 작업을 하고, 프린트해서 한 장은 나무액자에, 두 장은 종이액자에 넣는다. 따로 적어 둔 엽서 한 장과 제주 풍경이 담긴 빈 엽서 한 장을 함께 넣어서 발송하는 것까지 마치면 한 명에 대한 사진 작업이 끝난다. 하지만 사진은 정답이 없는 거니까, 내가 뽑아낸 사진이 그들에게도 제일 좋은 사진일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진을 선택하는 기준도, 원하는 이미지도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최종 사진이라고 해봐야 내가 원하는 표정이 담긴 사진을 고르는 것뿐이다. 1차 선별에서부터 탈락하거나 마지막 선택에서 아쉽게 내려놓은 사진들 중에 모델이 찜했던 한 장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종종 비슷한 문자를 받는다.

B컷도 주실 수 있나요?

내가 꼭 쥐고 있다고 의미가 생기는 사진들이 아니다. 이대로 몇 해쯤 데이터로 남아있다가 저장공간이 다 차면 차례차례 지워질 운명들. 하지만 모델이 된 본인이나 가족들에게는 의미 있는 작은 순간일 수 있다. 섬의 기억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안 줄 이유가 없다. 선택받지 못한 사진들 중에서 느낌이 좋은 것들을 한 번 더 추려 모은다. 날짜와 모델 이름 뒤에 ‘B컷’이라고 덧붙이다가 잠깐 멈춘다. B컷이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목적대로 사용한 사진을 ‘A컷’이라고 부르고, 나름대로 느낌은 좋은데 최고의 한 장은 아니고 그렇다고 또 버리기에는 아까운 이미지들을 부르는 이름, B컷. 입 안에 단어를 넣고 몇 번 굴려보다가 내뱉는다. 

사진관은 나와 닮은 보통의 사람들을 드높이는 곳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아름다운 드라마가 있고, 다만 빛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해준다. 조명 아래 서면 다 멋있어 보인다. 그 조명이 당신을 비추지 않은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 그래서 장난처럼 말하지만 진지하게 믿고 있다. 인생은 조명빨. 그러니까, A와 B로 나눌 수 없는 사람에게 A컷과 B컷을 들이밀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름부터 바꿔야겠다. 찬란한 인생에 ‘B’는 없다고 치자. 몇 장의 사진을 다시 고르며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쓴다.

그럼요,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