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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8. 2022

인생은 조명빨




직접 제작하신 거예요?


촬영 중에 뒤에서 묻는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예쁘고 맛있는 음식의 재료를 찍던 참이다.


티셔츠요. 문구가 재밌어서요.


그렇지. 내 새 유니폼. 올여름은 아내가 디자인해서 만들어준 반팔 티셔츠를 주로 입는다. 아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제작업체에 보내서 프린트했는데 입어보니 썩 괜찮아서 아내에게 몇 개 더 부탁했다. 앞에는 작은 사진관 로고를 넣고, 뒤에는 반치옥사진관 모토를 적어주세요! 그렇게 만든 티셔츠 두 장에 각각 다른 문구를 적었다. 


첫 번째 모토가 바로 인생은 조명빨! 

예전 여러 잡지와 일할 때 내가 주로 촬영한 대상은 기업인과 예술가 등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처음 만나는 모델은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걱정스러운 외모다. 초기에는 그런 모델을 만나면 오늘은 힘든 날이 되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든든한 팀이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2시간 가까이 그를 붙들고, 스타일리스트가 세심하게 골라온 의상으로 갈아입고, 또 내가 열심히 찾아둔 배경 앞에서 잘 맞춰진 조명 아래 서면, 빛나는 모델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잡지에 실려서 나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의 선망 어린 시선을 받는다. 마치 그의 인생에 대단한 드라마가 있는 것처럼.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있는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다만 메이크업과 스타일링과 조명이 없을 뿐, 당신의 인생도 빛나고 아름답다. 인생의 내용이란 대동소이하며, 그것을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팔할이 조명빨이다. 

섬의 작은 동네사진관에서 메이크업과 스타일링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빛만큼은 대도시의 모델들을 비췄던 그대로 당신을 비춰주겠다는 게 사진관의 각오다. 그래서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도 미처 몰랐던 당신의 드라마를 무대 위에 올려주는 것이 내가 맡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구는 사진관 입구 간판에 세겨진 글이다. 작은 정육각형 철제간판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녹이 생기는 것인데, 정면에는 사진관 이름이 적혀있고 옆면에는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진관의 메시지를 적었다. 밤에는 조명이 들어와서 어둠컴컴한 골목길에서 작은 메시지는 등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내가 찍는 사진이 다큐는 아니다. 그보다는 모델의 얼굴에서 발견한 인생을 세기는 것에 가깝다. 그 인상을 방해하는 주름이나 잡티 등은 어떤 주저도 없이 지우고 만다. 기록은 기억보다 힘이 세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사진을 보면 사진 속의 인물이 본래 그랬던 것처럼 기억된다. 우리가 기억하려는 것은 내 부모님, 연인 또는 그때의 내 얼굴에 잔주름이 몇 개였는지, 점이 몇 개나 있었는지 그런 게 아니니까, 내게 보여준 당신의 기운만으로 충분하다. 

집에는 결혼 전에 찍었던 아내 사진들이 아직 있다. 나름 특별한 청혼을 한다고 고민했고, 상하이에 있을 때 작은 갤러리를 빌려 아내 사진들로 전시를 열었다.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한, 2시간짜리 짧은 전시였지만 따지고 보면 내 첫 번째 사진전이었다. 그때 벽에 걸었던 사진들인데 한국으로 돌아오며 액자는 떼어내고 사진만 갖고 왔다. 지금 보면 그때 아내는 참 예뻤다 싶다. 하지만 그때 기준으로 내가 가진 모든 사진 실력을 동원해서 찍고 또 고친 사진들이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했는지는 잊었다. 다만 지금은 그때의 아내가 참 예뻤다는 기억만 남는 것, 그것이 기록의 힘이다. 오늘 나의 기록이 나중에 당신의 기억이 된다. 반치옥사진관의 사진은 그 기록을 만든다.


이날 입고 있던 티셔츠가 첫 번째 문장, 인생은 조명빨이라는 여섯 글자다. 두 번째 문장이 무거운 선언 같다면 첫 번째는 보는 사람을 피식 웃게 만드는 위트가 좋다. 가을에는 맨투맨으로 만들어 입고 겨울에는 후드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곳을 찾는 당신이 낯선 스튜디오가 어색하고 카메라 앞에서 눈길 둘 곳을 모를 때, 조용히 뒤돌아서 등판을 보여주겠다. 인생은 조명빨이니까, 지금 딱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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