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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8. 2022

그 사람을 압니다.


마루는 뭘 좋아하나요? 초콜릿 괜찮을까요?


조심스러운 안부 인사 뒤에, 곧 제주도에 가는데 잠시 들러도 되겠냐는 더 조심스러운 문자. 환영한다는 답을 보내자 이내 아이의 선물을 고민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진 손님으로 와서 가끔 인스타를 통해 안부를 묻게 된 사이. 찾아보니 딱 일 년쯤 전이다. 부부가 함께 흑백 인물사진을 찍고 갔다. 마침내 다다른 지금의 편안한 일상이 참 좋다고 했던 남자와 글을 쓰는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면 좋겠다던 여자. 여자는 사진관에서의 경험을 글로 적어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고, 자신의 책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 책은 지금도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 못 되지만,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간 사람들의 얼굴은 깊이 또 오래 남는다. 찍으면서 한참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수 백 장의 사진 속에서 몇 장을 고르기 위해 표정의 작은 차이를 살피며 모니터로 한참 본다. 그렇게 고른 표정에서 어떤 특징은 살리고 어떤 부분은 지워낼지를 고민하느라 또 시간을 쓴다. 마지막으로는 프린트한 사진을 액자에 넣어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혼자 감탄하며 본다. 그렇게 본 얼굴은 좀처럼 잊을 수 없다. 한 명 한 명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아름답지 않은 얼굴이 없다. 

사진을 보낼 때는 촬영하면서 나눈 우리의 대화와 내 후기를 담은 엽서를 함께 넣는다. 여행은 즐거우셨냐고 묻고, 내게 들려준 당신의 이야기가 참 아름다웠다고 적어서 보낸다. 섬의 기억을 선물한다고 약속 했으니까. 그러면 가장 먼저 오는 소식은 사진을 잘 받았다는 문자 답장이다. 이런 사진은 처음이라는 인사, 부모님께서 참 좋아하셨다는 인사, 다음에 가족과 다시 오겠다는 인사.

사진사에게, 사진 참 좋다는 칭찬이나 전해받은 사람이 무척 좋아했다는 이야기만큼 큰 보상이 없다. 사진을 찍어 밥을 벌어먹는 것이 나의 일이니까 촬영비용을 받는 것이 제일 큰 것 같아도, 그건 기대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합당한 견적을 제안하고 그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물을 돌려주는 것. 거기까지는 직업인의 기본이다. 그다음의 목표는 감동쯤 될 것이다. 기대한 이상을 보여주기. 상업사진에서는 클라이언트가 떠올리지 못했던 아이디어, 알아챌 수 없었던 디테일을 잡아내 주는 것 등이 그렇다. 

인물사진에서는 그 각오가 조금 다르다. 사진관에 오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은 두 번 오기 어렵다. 어쩌면 저 사람 일생에 단 한 번, 내 사진관을 방문하는 단 한 시간이다. 저 사람 얼굴에는 다른 사진가들이 읽어낼 수 없는, 본인도 일생 본 적 없는 얼굴이 있다. 그리고 그 멋진 얼굴은 나한테만 보인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꼭 알려주고 싶은데 겨우  한 시간밖에 없다.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다. 사진을 찍고 갔던 사람들에게 한참 지나서 받는 안부 인사는 그래서 괜히 반갑다. 그때 내가 진심을 다한 것 같아서, 내 마음이 잘 전해진 것 같아서. 

그리고 그중에 좀 더 길게 남는 인연들이 있다. 손님이나 모델을 넘어서 지인이 되고 친구가 되는 사람들이다. 계절에 한 번쯤은 같이 밥을 먹고 봄여름 전갱이 낚시를 함께 가는 선우네 가족도 그렇다. 마루보다 세 살 어린 선우는 몇 년 전의 마루를 보는 것 같아서 참 예쁘다.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으며 처음 만났다. 제주에 사는 선우네 가족과 여행 온 은우, 리우네 사촌 가족이 함께 사진을 찍으러 왔다. 사진관을 연 지 오래되지 않은, 아직 어수선한 때였다. 아이들은 즐겁고 사진은 잘 나온, 순조로운 촬영이었다. 그리고 한 해쯤 지났을까? 선우네 가족은 선우 생일을 전후해서 다시 사진을 찍으러 왔다. 그 사이에 어떤 왕래가 있었던가? 선명하지 않다. 몇 년 사이에 우리는 촬영보다 다른 일로 많이 만났고 그 시간들은 기억 속에서 섞였다. 개인 사진 작업에 모델을 부탁하기도 했고, 선우네 할머니까지 따로 모셔서 카메라 앞에 세우기도 했다. 이쯤 되면 지인을 넘어서 친구에 가까워서 가끔 만나도 서로의 안부가 낯설지 않다. 

누군가가 내게 와서 누구를 아냐고 물어볼 때 나는 난감하다. 나이 들수록,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한 작은 책임을 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아, 그 사람 잘 압니다. 라는 대답 대신, 이름은 압니다. 또는 몇 번 만난 적은 있습니다. 정도에서 조금 비겁한 안전선을 긋게 된다. 그래서 만난 시간이나 횟수와 상관 없이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은 반갑고 든든하다. 물론 나만의 일방적인 감정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 물어온다면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네, 저 그 사람 압니다. 

사진을 찍으며 가까워지고 그 관계가 이어지는 사람들은, 생각해 보면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동병상련까지는 아니어도, 이 섬을 대하는 태도가 닮은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섬이 제주여서, 나는 이 섬에 와서 친구가 많이 늘었다.


전윤정은 맛있는 초콜릿을 사서 친구와 함께 사진관에 왔다. 그와 친구, 나와 아내는 마주 앉아서 조금은 어색한 듯이, 그보다는 가까운 듯이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에 인스타로 봤던 그의 일본어 공부며 새 책에 대해 물었고, 사진관 정원에서 새로 자라는 식물들에 대해 말했다. 그의 남편도 가끔 사진관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유칼립투스 몇 가지를 꺾어 작은 종이봉투에 넣어 전하며 반가운 마음을 담았다. 나는 아내가 직접 재단해서 만든 천 가방에 최근 작업한 책 한 권을 넣어 드렸다. 사진관 데크 기둥을 감고 오르는 등나무를 보며 말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저 등나무가 제법 그늘을 만들어 둘 거예요.


우리, 나중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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