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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8. 2022

안녕하세요, 예술가씨


그냥 모비MoBe라고 불러주세요. ‘님’ 자도 빼주세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호칭이다. 학생 신분이 끝나자마자 한국을 떠났으니까 따로 불릴 호칭이랄 게 없었다. 이름을 부르는 게 일상이었다. 제주에서 사진관을 시작한 후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작가님, 기사님, 사장님, 아저씨.

작가라는 호칭은 제일 많이 불리지만 여전히 부담스럽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다가 작가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한 번씩 덜컥, 과속방지턱을 넘는 자동차처럼 반응한다. 작가는 무엇인가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에게 어울린다. 나는 갈고닦은 사진 기술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사진사가 더 맞다. 

내게 예술은 전인권의 목소리 같은 거다. 사자머리 가수의 소리는 그가 세상과 통하는 좁고 유일한 통로이거나 그가 골방 안에서 바깥을 보는 작은 창문 같아서, 그에게서 소리를 지운다면 그는 사라져 버릴 거다. 세상과 잇는 위태로운 줄 하나만 겨우 붙들고 있는 예술가, 간절함이 오롯이 담긴 소리를 내지르는 사람.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드는 사람은 어쩐지 엔터테이너처럼 보인다.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 말고, 자신이 지닌 단 하나의 수단으로 밖에 전할 수 없는, 그 하나의 수단에 필사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작가가 나는 더 좋다. 그 하나의 수단을 빼면 불구에 가까워서 안쓰럽고, 그래서 아름답고 멋있다.  

그런 예술가상에 어울리는 작가의 흔적은 제주에도 깊게 남아있다. 우선은 이중섭이다. 실제 이중섭이 제주에 살았던 기간은 1년 남짓하지만 제주와 이중섭이 서로에게 남긴 흔적은 크다. 제주는 고단한 화가에게 모처럼의 휴식과 평화를 주었고, 이중섭은 바다가 보이는 서귀포 시내 언덕 사면을 온통 그의 이름으로 덮었다. 이중섭거리라는 이 일대는 그의 이름을 딴 이중섭미술관과 복원한 그의 옛집, 그의 그림을 바닥에 새긴 비탈길이 있다. 그리고 비탈길이 끝나는 아래쪽에 스튜디오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정식 명칭은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이곳에서는 전국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1년 단위의 레지던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건물 1층에 있는 전시장을 지역 신진 예술가들에게 무료 대관해서 다양한 전시를 열어주기도 한다. 

내 첫 사진전도 이곳에서 했다. 친구 배경완의 소개였는데, 서귀포에 전시공간이 있으니 신청해보라고 했다. 제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돌멩이를 주워서 스튜디오로 가져왔다. 돌을 줄에 매달아 공중에 띄운 후, 인물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돌마다 어울리는 조명을 맞춘 후 찍은 사진들이다. 평범한 돌들이 잘 맞춘 조명 아래에서 얼마나 멋지게 보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별 것 없어 보이는 나와 닮은 보통의 사람들이 참 멋있다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전하고 싶었다. 제목은 ‘고래를 위한 포트레이트 시리즈 1’

스스로를 직업 예술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나와 닮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드높이는 일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니까, 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기술도 갖고 있었다. 예술가를 발언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도 그 어디쯤 있을 것이다. 


이중섭에 이어, 제주를 사랑한 또 한 명의 예술가는 사진가 김영갑이다. 지독한 사랑이었다. 김영갑은 제주 풍경에 미쳐서 20여 년 동안 제주의 중산간을 오르내리며 셀 수 없을 만큼의 사진을 찍었다. 지금처럼 디지털카메라로 쉽게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가 잘 닦인 길을 따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돈을 모아서 필름을 사면 무거운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벌판을 누볐다. 말년에 그는 루게릭병을 앓아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었고,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전시할 공간을 다듬다가 죽었다. 사진을 지독히 사랑하는 사람이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을 얹고 있는 장면을 상상한다. 맞닥뜨린 찰나의 절경 앞에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데 손가락 관절 하나를 움직일 수 없어서 셔터를 누르지 못하는 사람. 한 장의 사진을 담는 순간의 무게가 그에게는 우주만큼 무거웠을까? 손가락의 힘이 빠지는 것과 비슷하게 그의 다른 근육도 쇠약해져서 문 밖을 나서는 것도 힘겨워졌도, 카메라 없이 절경을 대면하는 기회도 점점 사라졌다. 풍경은 그의 사랑인 동시에 숙제이거나 짐이기도 했을 테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평화를 얻었다고 적고 있다.

그가 가꾸고 그의 사진들로 채운 공간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다. 그가 평생 사랑했고 다 찍지 못했다고 말한 용눈이오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삼달국민학교 옛터를 고쳐 쓰는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면 우선은 정원을 지나야 한다. 예전에는 운동장이었던 곳에 나무를 심고 돌을 쌓아서 제주의 풍경을 가져다 놓았다. 작가가 찍어둔 제주의 풍경으로 들어가는 올레길 같다. 이후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고 그의 사후에 추가로 다듬기는 했지만 정원의 원형은 그가 직접 틀을 잡은 것들이다. 이곳을 갤러리로 선택한 직후 그는 병 진단을 받았고, 점점 사용법을 잃어가는 근육 다발을 다독이고 이끌어서 돌을 나르고 나무를 심었다. 그의 사진에서 보이는 시선의 흐름과 밝고 어두운 것을 다루는 기교는 그 정원에도 그대로 드러나서 억지스럽지 않지만 힘 있게 관람자의 발걸음을 그의 사진들에게로 이끈다. 


갤러리를 채운 사진에 대해서는 따로 적기 어렵다. 다만 가서 보아야 안다. 누군가 찍어야 할 제주의 모든 풍경은 이미 그가 다 찍어둔 것 같아서 제주 자연의 모든 얼굴이 거기 있는 것 같다. 사진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손에 든 카메라가 머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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