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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8. 2022

계절이 지나는 소리


섬은 사계절이 바쁘다. 자연과 몸을 맞대고 사는 어딘들 비슷하겠지만, 도시의 계절 갈이가 옷장을 바꿔 채우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제주는 조금 다르다. 시간은 언제나 사람과 장소에 따라 상대적이다. 모두가 같은 시계를 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편리를 위한 속임수에 가깝다. 확실히 이 섬에서 시간은 빠르니까.

골목길에서 보이게 아주 작은 간판을 달았다. ‘반치옥사진관’이라는 이름표 옆에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적었다. 여름이 되면 초록 덩굴이 자라면서 돌담과 간판을 뒤덮고 붉은색 꽃을 피운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유홍초라는 이름을 알려준다. 해마다 이쯤이면 기다리는 풍경 중 하나다. 여름에는 언제쯤 덩굴이 올라올까 기대하며 지켜보고, 덩쿨이 시들면 겨울이 오는 것 같아서 또 한 때가 간다 생각한다. 제주 사진관은 계절의 변화와 가까이 있다. 인공 배경을 만들어서 언제나 같은 풍경을 보여 주는 도시의 사진관과 다르다. 계절마다 딱 그때만 가능한 장면들이 뚜렷하고,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들은 얼른 다음 장면에게 순서를 내어주어야 해서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바다가 제법 멀고 한라산 정상은 마당 가운데서 겨우 빼꼼 보이는 정도지만, 계절은 이 섬의 어느 구석도 내버려 두지 않고 문 앞까지 몸을 들이민다. 


#여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세 식구의 잠자리는 에어컨 가까운 거실로 모이고, 마루 방은 물놀이 장비로 채워진다. 그리고 날씨만 괜찮다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해가 제법 기울었다 싶을 때 하나둘 옷을 갈아입고 장비를 챙겨 그날의 바다로 퇴근한다. 제주의 여름은 남풍이 주로 불어서 사진관이 있는 섬의 북쪽 바다가 오히려 잔잔하다. 어떤 날은 동네 포구로 가고, 또 다른 날은 가보지 않은 작고 낯선 해변을 찾아가기도 한다. 제주 생활 초기에는 이름난 해수욕장을 많이 다녔지만 이제는 지인들이 와서 소개 겸 함께 갈 때를 제외하면 거의 가지 않는다. 너무 붐빈 탓도 있고 또 물놀이 후에 온몸에 붙는 모래가 감당하기 어렵기도 해서다. 어디든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제주니까 굳이 해수욕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여름이라고 해도 아주 더워서 다 벗어던져야 하는 날은 길지 않다. 아침저녁 선선하거나 흐리거나 바람이 부는 날도 많다. 그래서 다이빙용 슈트는 제주 생활의 필수품이다. 뜨거운 햇빛이나 해파리의 공격 앞에서도 두렵지 않다. 안전하게 오래 물 속에 있을 수 있다. 해질 때까지 물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간단하게 세척해서 소금기를 빼고 마당에 장비들을 널어놓는다. 세 식구 슈트에 구명조끼며 오리발, 스노클에 구명용 튜브(우리는 꼬리라고 부른다.)까지 하면 마당 한쪽이 가득 찬다. 여름 햇빛은 강하니까 다음날 점심때만 지나도 장비들은 뽀송하게 마르고, 다시 걷어서 방 안 같은 자리에 정리해두면 다음 물놀이를 위한 준비는 끝난 셈이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제주살이 7년 차의 여름 일상이다.


#가을

아침저녁 바람이 선선해지려고 한다. 더위로 꽉 채워진 공기에 빈틈이 생긴다. 아직은 덥지만, 이 더위가 곧 갈 모양이다. 올여름도 잘 지냈다. 세 가족이 각각 얼굴과 팔 피부가 한 번씩 벗겨져 나가기는 했지만 마음껏 바다와 산을 누볐다. 이제는 가을 차례다. 가을은 땅 위의 곡식이 익어가듯 바다도 비슷하다. 봄에 태어나 몸집을 키운 물고기들은 가을 바다를 풍요로움으로 채운다. 바람 없는 날에는 세 식구가 근처 애월항으로 낚시를 간다. 간편한 대낚시 채비에 새우 한 통이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전갱이를 양껏 낚을 수 있다. 아내도 곧잘 낚고, 마루는 고기를 낚다가 지루해지면 자전거를 타고 항구의 광장을 빙빙 돈다. 낚은 것 중에 큰 것은 우리가 먹고, 작은 것은 통째 얼렸다가 한 마리씩 꺼내 기티에게 데워 준다. 

그리고 한 해의 수확처럼, 지인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은 더위와 모기 때문에 어렵고 겨울은 추운 바람 때문에 어렵다. 가을, 이때가 딱이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오면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작업을 마치고, 마당에 음식들을 꺼내온다. 친구며 이웃이며 그날 오는 사람들은 각자 먹을 것들을 조금씩 가져와서 함께 먹는다. 며칠 전에 잡아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전갱이도 양념을 발라 준비한다. 한쪽에서는 숯불을 올려 고기를 굽고 그 옆에는 작은 모닥불을 만들어서 둘러앉는다. 낮 동안의 일상이 해가 지듯 어두워지고, 불빛 가까운 곳으로 즐겁고 예쁜 이야기, 공감과 응원만 모인다. 


#겨울

여름 마당의 주인공이 잡초라면 겨울은 장작 몫이다. 사진관의 첫 해에는 어떤 채비도 없이 전기난로 하나에 의지해서 겨울을 났다. 두 번째 겨울이 오기 전에 근처에서 화목난로를 얻어 달았다.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나무를 구해 와서 땔감으로 삼았다. 작업실 공간 전체를 데우려니 나무 한 짐 타는 게 금방이다. 마당에 널려있던 목재 팔레트 몇 개를 모아놓고 직쏘로 끊어낸 다음 기계톱으로 썰었다. 썰어 낸 장작이 한쪽에 무더기로 쌓였다. 장작이라면 마땅히 마당 한 켠이나 집 벽 바깥쪽에 가지런히 높게 쌓여야 한다. 온갖 이미지 속에서 내가 본 장작이 모두 그랬으니까. 그러나 막상 만들어 보니 어디 가서 돈 주고 사 오는 장작이 아닌 이상 좀처럼 가지런하기 어렵다. 우선 구해 오는 나무가 목재 팔레트부터 공사장 자투리 나무, 바닷가에서 주워오는 나무들까지 출신 성분이 다양하다. 생긴 것이 다르고 붙은 모양이 제각각이라 대충 난로 입구에 걸리지 않을 크기로 자르면 그만이다. 이리저리 박힌 못은 하나하나 뽑는 것보다 태운 후에 못만 따로 걷어내는 것이 빠르다는 걸 알게 됐다. 각진 나무, 둥근 나무, 구부러진 나무, 못 박힌 나무들을 어떻게 쌓아봐도 차곡차곡이 안 된다. 어지러운 날들이 정신없이 쌓인 한 달, 일 년이 꼭 저럴까 싶다.

  매일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과로 움직였다던,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의 산책 시간을 보며 시계를 맞췄다던 철학자를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였나 그럴 수도 있었겠다 생각이 들었다. 공감을 넘어 부러울 때도 있다. 무언가 집중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끊어내야 비로소 가능한 삶의 형태 같기 때문이다. 산 속이나 신의 전당에 들어가 사는 수도자의 삶이 아닌 이상, 일상이 가지런하기는 어렵다. 잘 정돈된 삶은 돈 주고 사서 쓰는 장작 같아서, 비슷해 보이는 삶도 들여다보면 아무렇게나 쌓아 둔 장작더미 같을 거다. 한 사람의 일이, 하루의 사건이 키 맞춰 자른 나무토막처럼 열 맞춰 오지는 않는다. 괜찮다. 조금 엉클어져도 삐딱거리면서 간다. 괜찮다.

 유홍초가 돌담을 뒤덮는 풍경이 여름의 신호인 것처럼, 겨울을 알려주는 풍경도 있다. 늦은 가을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구름 걷힌 한라산은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허리쯤에 선명한 선이 생긴다. 선 아래로는 아직 초록인데, 선 위로는 눈이 내려 하얗다. 그럴 때 자연은 어찌나 정확한 지, 눈이 내리는 고도와 녹아서 비가 되는 고도가 뚜렷하게 나누어진다. 그렇게 한라산이 두 가지 색깔로 나누어지면, 섬이 본격적으로 겨울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그때부터 한라산은 눈을 기다린 등산객으로 붐비기 시작한다. 창고에서 눈썰매를 꺼낼 시간이다. 

제주에 있는 숲길들은 계절마다 아름다워서 겨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눈 쌓인 풍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눈길을 걸어 숲으로 가고 오름을 오른다. 그렇게 며칠만 지나면 사람 한 명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폭으로 눈길이 생긴다. 포근하게 쌓인 눈밭 가운데 좁고 깊게 난 길. 눈썰매에게 그만큼 매력적인 길도 찾기 어렵다. 두어 시간 오르막 숲길을 걸어 오른 후에는 눈썰매를 타고 하산한다. 인적 드문 숲길이 비할 데 없는 눈썰매장으로 변신한다. 한라산 등산로에 “눈썰매 금지”팻말이 붙어있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래서 큰 등산로를 피해 아닌 작은 숲길로 만들어진 산책길들은 찾아 눈썰매를 지고 겨울 산을 걷는다.


#봄

다시, 봄이 온다. 가을이 더위의 빈틈부터 오는 것처럼, 추위의 빈틈에서 봄이 기웃거린다. 잠깐의 바람이거나 어느 골목의 그림자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때는 뭐지? 뭐가 지나간 거지? 하며 얼른 뒤돌아본다. 여전히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지만 봄은 저기 오름의 능선 너머에서 낮게 엎드려 있다. 한 번 두 번 신호를 보내다가 이내 한 순간 와락, 덮쳐 오는 것이 봄이 오는 방식이다. 봄이 오면 콩닥거리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하며 괜히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은 지났다. 제주에서 만나는 봄은 지난 한 해를 잘 버티고 받는 증명서 같기도 하고, 후회했던 실수들을 만회할 수 있는 새로운 날들이 오는 것도 같아서 반갑다. 아직 조금 이르지만 난로 연통을 마감 청소하고 계단 아래 쌓아두었던 장작도 더 보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봄이 완연해질 때쯤, 장화를 꺼내 신는다. 산으로 들판으로 가야 할 때다. 한라산 중턱을 한 바퀴 도는 포장도로의 이름은 산록도로이다. 어느 때 보면 갑자기 길 주변으로 길게 주차한 자동차들이 있다. 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길게 늘어선 자동차의 주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그 들판이고, 목표는 고사리다. 제주 고사리는 맛있기로 소문났는데,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비밀처럼 봄이면 자주 찾는 고사리밭 두어 곳쯤은 알고 있다.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고 봄이면 숲이며 들판 가릴 것 없이 사방 천지에 자란다. 이때쯤 제주에 내리는 긴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아침 이슬 속에 싱싱하고 굵은 고사리를 찾기 위해 이맘때 차 트렁크에는 항상 장화와 장갑을 넣어둔다.

짧은 고사리철이 끝났다고 아쉬워할 것 없다. 여름으로 가기 전 섬의 숲은 아직 선물 하나를 남겨놓고 있으니까. 슬슬 조금씩 낮이 더워지는 늦봄이면 때가 된 것이다. 숲 속 산책로 주변으로는 산수국이 지천으로 핀다. 도시 꽃시장의 어느 가게 앞에 귀하게 피어야 어울릴 것 같은 꽃도 여기서는 아무렇게나 번져나가는 들꽃이다. 그 들꽃길 사이사이에 빨갛게 빛나는 것은 산딸기다. 많기도 많아도 많아서, 사람 많은 등산로를 가더라도 한 손 가득 풍성하게 산딸기를 담는 것이 어렵지 않아서 물 한 병 가져가지 않아도 두어 시간 산책은 목마르지 않다.

사진관은 해마다 사진이 조금씩 쌓이고 난로가 들어서고 마당이 풍성해지고 간판이 바뀌면서 제주의 계절을 겪어내고 있다. 이 섬, 동네 사진관에서 당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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