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가 잠시 주춤한 때가 있었다.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하기 전이었다. 코로나의 끝이 보인다고 착각했던 그때, 한 번은 이 시대를 기록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는 같은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겪는 인류사 이래 최초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세계대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을 비롯하여 역사에 기록된 모든 사건은 따지고 보면 진짜 ‘세계’는 아니었다. 인류의 일부에게만 일어났다.
코로나는 역사에 전례가 없는 사건이지만, 역사 이전으로 거슬러 가보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인류 이전에, 공룡의 멸망을 초래한 원인으로 추측되는 거대운석의 지구충돌이 이에 비길 만하다. 운석 충돌은 전지구의 땅속에 같은 형태의 지층을 남겨서 그때의 사건을 증언하고 있다. 코로나 19는 지질학적 지층을 남기지 않겠지만 전인류의 의식 속에 그와 비견될 만한 문화적, 의식적 지층을 남길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정돈된 정보가 아닌, 생생한 주변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하지 않았으니까, 나라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촬영과 전시장소는 서귀포에 있는 온천탕이라는 폐업한 목욕탕이었다. 50년 넘게 운영하다가 문을 닫은 그곳은 파란 타일에 반사된 시원하고 투명한 빛이 공간을 환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 매력적인 공간을 어떻게든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건물주 박재완의 적극적인 찬성으로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
진행은 쉽지 않았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았던 코로나는 촬영 시작 며칠 전부터 다시 기세를 올리고 있었고, 4단계 방역조치가 시행되면서 촬영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현장은 엄격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목욕탕 내로 한 명씩 밖에 들어올 수 없었고, 무턱대고 건물 밖에 대기시킬 수도 없으니 한 명당 촬영 시간을 15분으로 계산해서 예약시간을 배정했다. 문 닫은 지 오래인 목욕탕 실내에는 별도 냉방기가 없어서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고, 열흘 중에 절반 이상은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였다. 그런 난관을 뚫고, 2021년 8월 하순, 83명의 모델이 온천탕에 와서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진행했다. 그 폭우를 뚫고 더위를 견디며 모델이 되어주고 당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어준 모델들이 이번 작업의 주인공이다.
모델은 코발트빛 타일로 마감한 낡은 목욕탕으로 들어와서 텅빈 탕 안에 앉았다. 그리고 인터뷰와 촬영이 이어진다. 모델의 말소리는 바닥에 부딪쳐서 탕 안을 웅웅거리며 맴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당신의 직업 생활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까?
코로나로 당신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 사태가 끝나면 당신의 위시리스트는 무엇입니까?
기본으로 준비한 네 가지 질문과 각 개인의 상황에 맞는 다른 질문들을 조합해서 모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생각했던 큰 틀이 있었는데, 83명의 모델이 들려준 이야기는 사람마다 달랐다.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고, 의외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는 답도 많았다. 유소년기의 나이로 코로나를 겪는 아이들의 대답도 인상적이었는데, 낯선 대상 앞에서 호기심보다 경계심을 먼저 가져야 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전시방식은 사진과 글을 함께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야 온전한 지층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말은 사진과 같은 크기로 프린트되어서 얼굴 근처에 걸렸다. 얼굴과 텍스트는 바로 붙여놓지 않고 간격을 두고 걸어서, 누구의 얼굴과 누구의 말인지 구분이 잘 안 되도록, 섞이도록 연출했다. 말과 글이 서로를 바라보고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온천탕에서 전시하던 시기에는 코로나가 워낙 심하던 무렵이라 폐쇄된 공간에 관람객을 들이기가 어려웠다. 만들어 둔 전시장은 문을 닫아 걸고, 대신 전시를 소개하는 영상을 몇 번에 나누어 제작했다. 그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의 말을 대신 읽었다. 온천탕 전시가 끝날 무렵,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으로 이어졌다. 미술관의 한쪽 계단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사진들은 높게 또 낮게 머리 위까지 내려와서 사진과 글의 숲길 같았다. 그 사이를 사람들은 걸어내려오거나 올라가며 타인의 코로나는 어땠는지 감상했다. 그곳에서 이어진 전시는 상황이 조금 나았다. 100일 가까운 전시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타인의 코로나를 읽으며 코로나 시대의 어려움이 나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공감과 연대의 힘이 생겨나기를 바랬다.
코로나의 끝에 서서 지나간 시대를 기록하겠다던 생각은 너무 순진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코로나는 진행중이다.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시간이다.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 없이 어린이집을 졸업한 마루는 어느새 3학년도 끝나가는데, 학교 다니는 3년 동안 한 번도 마스크를 벗은 적 없다. 사람 많은 곳에서 마스크를 벗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워하고, 바닷가나 숲길에서도 정말 벗어도 되는 것인지 몇 번을 다짐받고서야 맨얼굴로 호흡한다. 이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전시는 끝났고 사진과 글은 철수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도록으로만 남았다. 코로나의 지층은 얼마나 두꺼워야 끝날까. 우리의 지층은 그 한가운데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