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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8. 2022

고객을 찾습니다.

 


 제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으면서 중간중간 생각했다. 꼭 하고 지나가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이 섬을 너무 아름답게만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에게 오해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쓰였다. 나는 제주가 너무 좋고 이곳의 생활에 아주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낭만으로 온전히 채워진 섬은 없다. 삶의 터전이라면 어디든 있는 고단함이 여기라고 예외는 아닐 테니까. 

제주에 오기 전, 내 손님은 주로 잡지사와 기업이었다. 전자레인지, 냉장고, 세탁기 촬영을 의뢰하는 전자제품 기업부터 캠페인 사진을 의뢰하는 글로벌 기업, 중국의 서북쪽 끝, 우루무치 근처에 있는 와인 농장과 남쪽 하이난다오에 있는 호텔까지. 잡지사는 주로 예술가나 기업가의 포트레이트 사진을 의뢰했다. 에디터와 함께 가서 내가 찍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로 찍은 인물도 수두룩했다. 미리 현장을 살피고, 짧은 시간 안에 꼭 어울리는 배경을 찾기 위해 긴장되는 순간을 보내고, 모델이 들어오면 내 긴장이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다음 달 잡지에서 내가 찍은 사진을 확인한다.

제주 이주를 결정했을 때, 내 작업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쓸 수 있는 장비와 인력의 한계, 잡지사나 기업 등 고객의 부재. 관련 직종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이미 잘 찍는 다른 사진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제주도니까, 그 풍경에 기대서 찍으면 어떻게든 먹고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에 사진관을 짓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이 풍경 어디든 사진관보다 못한 배경이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환상에 가까웠다. 준비도 없이 너무 무모하게 이 섬에 상륙했고,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집과 사진관을 짓는 동안에는 근처 아파트를 빌려 1년간 살았다. 대출을 포함해서 쓸 수 있는 모든 돈은 집을 짓는데 들어갔으니까 생활은 빠듯했다. 생활비는 따로 바닥날 것도 없이 처음부터 가뭄에 갈라진 흙바닥 같았다. 이사 올 때 가져온 것들 중에서 안 쓰는 것들을 내다팔기도 하고 드문드문 들어오는 촬영 의뢰는 무엇이든 받아가며 생활을 이어나갔다. 아직 중국에 촬영 계약이 남아있었으니 두어 달에 한 번씩 출장을 다녔고, 제주에 여행 온 지인의 웨딩사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통해 알게 된 가족의 스냅사진 정도를 겨우 찍을 수 있었다. 

마루는 그때 4살 무렵이었는데 어린이집에 빈자리가 없어서 종일 엄마와 함께 있던 때였다. 하루는 사과가 먹고 싶다고 했고,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 마트까지 걸어갔다. 상하이는 과일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집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과일이 바구니에 담겨있었다. 제주에 와서 생활비를 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일 먹을 일도 줄었다.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하니 안 사줄 수 없었는데, 그날 아내는 사과 몇 개가 담긴 봉지를 겨우 사서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원하는 과일을 얻었으니 마루는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겠지만, 저녁에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답답했다. 조명장비는 아직 이삿짐 속에서 풀지도 못했고, 푼다 한들 찍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다음번에는 사과 한 개도 못 사고 아이의 빈손을 잡고 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

사진관을 짓는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용접을 배웠다. 용접공 하루 일당이면 저렴한 용접기 하나를 살 수 있었다. 중요한 부분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작은 부분은 직접 용접하면 건축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며가며 내가 용접하는 것을 알고 있던 지인이 부탁해 왔다. 개인적인 작업이 조금 있는데 혹시 용접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내 용접 아르바이트는 이후 1년 넘게 드문드문 이어졌다. 한겨울 바닷가 현장에서는 옷을 네 겹씩 겹쳐 입고 일했다. 그래도 손끝이 얼었다. 나중에는 일감 주는 지인을 따라 며칠씩 육지 출장을 다니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그날 저녁에 일당을 받았다. 내 하루 몫은 15만 원이었다. 며칠 연속으로 일하면 가족 생활비가 됐다. 

혼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위 몸값이라는 게 있다. 설사 일이 많지 않더라도 그 이하로 내려가면 안 되는 값. 그래야 그만한 수준의 일을 받고 또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상하이에서 내 하루 사진값은 그곳 노동자의 월급보다 훨씬 높았다. 그만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만한 기술을 갖췄으니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일거리가 없을 때조차도 더 낮은 비용으로는 촬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 번 낮추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무서웠고,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자존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첫 한 해를 살아내며 내 몸값은 달라졌다. 용접 하루 일당으로 받는 15만 원이 새로운 기준이 됐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온종일을 춥거나 더운 바깥에서 몸을 움직여 받는 돈, 15만 원만 넘으면 촬영은 무엇이든 다 한다.

아쉬움이 없다고는 못 한다. 갈고닦아 몸에 익힌 촬영의 디테일과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누구도 그런 수준을 요구하지 않고, 그런 수준에 따르는 견적을 감당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쓰지 않는 기술들은 점점 잊혔다. 이제 예전에 활동하던 무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긴장감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만하면 됐다 싶다. 지금 찍는 이 사진들이 주는 만족감도 나쁘지 않다. 여전히 일은 충분히 많지 않고 생활은 빠듯하지만 이제 그 시절은 점점 추억이 되어간다. 

상하이에서 보내던 시간보다 이곳이 훨씬 더 재미있고, 카메라가 없으면 무엇도 할 수 없던 그곳보다 생활의 보다 많은 부분을 직접 움직여서 해결해야 하는 지금이 훨씬 더 삶이라는 단어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그렇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먹고사는 일의 팍팍함은 꼭 말해 두고 싶었다. 아름다운 섬이지만, 제주를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고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도 여기도, 꾸역꾸역 삶을 살아내야 하는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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