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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8. 2022

이런 나는 닮지 마라



아이가 어떤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어떤 세상에서 자랐으면 좋겠어요?


출산이 두 달쯤 남은 만삭의 예비엄마와 아빠가 왔다. 몇 달 전에 촬영을 문의했는데, 배가 충분히 부풀지(?) 않았으니 다음에 찍자고 미뤄서 잡은 날짜가 오늘이다. 입구 환영인사는 엄마와 아빠의 이름 아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이름까지 함께 적었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주겠노라고 썼다. 비공식이긴 하겠지만, 아이야, 너의 첫 번째 가족사진이라고 하자. 나중에 사진을 보며 말해라. 


이 안에 나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상상으로 가 닿을 수 없는 세상과 만나는 일 같다. 아침 빛이 드는 방 안에서 나와 닮은 아이가 뒤척이며 부스스 눈을 뜰 때, 오늘도 새로운 세상이 환하게 열리는 것 같다. 하루마다 조금씩 더 나를 닮아가는 세상.


아직 아이여서 마루는 종종 열이 오른다. 감기이거나, 코로나이거나, 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어려서 상하이에 있었을 때 고열 때문에 위험했던 적이 있어서 아내는 마루가 열이 나면 더욱 신경을 쓴다. 해열제를 먹이고, 잠든 아이의 몸을 물수건을 닦아주고 아이스팩으로 이마를 식힌다. 그러면 다음날 마루는 푹 젖은 몸으로 개운하게 일어나고는 한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지쳐 잠든 엄마 옆에서. 

마루의 고열은 대부분 편도선이 부어서 시작된다. 나를 닮아서 그렇다. 어려서 나는 편도선 때문에 고생했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병원과 약국을 전전하고는 했다. 방 안에서 혼자 아픈 목을 부여잡고 뒹굴 때도 있었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낫기는 했지만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루가 아픈 날은 저 아이도 그때의 나와 비슷한 고통일까 짐작해 보고, 잘 붓는 편도선 말고 또 어떤 나의 부족함이 네게 전해졌을까 생각한다. 마루는 나처럼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좋겠다. 내 짧은 식성은 닮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일을 벼락치기로 수습하려는 버릇도 너는 안 가지면 좋겠다. 내가 가진 아쉬움은 네게 하나라도 적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겨우 알게 되는 것들을 너는 조금이라도 앞서 알기를, 나보다 좀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이가 꼭 닮았으면 하는 당신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이것만큼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모습은 어떤 게 있을까요?


나의 부족함과 마루의 부족함을 연결 짓게 된 후로, 자녀와 함께 오는 모든 부모는 내게서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갓난아이와 함께 온 부모부터 이미 중년이 넘은 자녀에 손자 손녀까지 있는 노년의 부모까지,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질감이 사뭇 다르다. 대부분은 전해주고 싶은 것보다 닮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질문을 더 오래 고민하고 대답하는 문장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아이에 대한 질문은 결국 방향을 되돌아와서 자신에게 향한다. 살아오면서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던 온갖 부족함과, 그 모든 결핍을 온전히 닮아버린 것 같은 내 아이. 내가 저지른 서투른 실수들을 반복하고 내가 했던 후회까지 따라 할지도 모른다. 내 다음의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러 감정이 겹친다.


사랑받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환경도 사랑을 많이 받는 환경에서 자라면 좋겠어요.


만삭의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빠의 대답이 이어진다.


엄마처럼 멋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몰두할 때의 아내가 참 멋있어요. 아이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도전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창업이어도 좋고, 뭐든 좋으니까요.


도전이라는 게 뒤집어 보면 실패가 항상 따라오잖아요. 실패를 대하는 방식은 어떻게 될까요?


재미있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놀이처럼.


실패를 놀이처럼 대하면 좋겠다는 대답이 신선하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라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며 그에 따르는 실패를 놀이처럼 대할 수 있는 아이. 그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자랄 것이다.


아빠는 엄마의 둥근 배에 대고 아이 이름을 불렀다.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는 못 하겠지만, 몇 달 뒤면 직접 듣게 될 익숙한 목소리를 지금은 동굴 속 울림처럼 듣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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