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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8. 2022

사진관 막내, 기티



새벽잠을 설쳤다. 알람이 울었나 싶어 얼른 눈을 떠 보니 잘 못 들었다. 다시 잠들었나 싶었는데 들리는 작은 울음소리, 기티다. 시간은 새벽 3시. 크게 울면 바로 쫓겨나는 것을 아니까, 살짝 운다. 나가야겠으니 문을 열어달라는 뜻이다. 그렇게 깨서 문쪽으로 가면 녀석은 꼭 반대편 밥그릇 쪽으로 먼저 간다.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신다. 우선 제 밥 먹는 것을 지켜보라는 듯. 그리고 느긋하게 문 앞으로 가서 손잡이쯤을 올려다본다. 열어주면 그제야 어슬렁거리며 나간다. 자동문이냐? 몇 시간 새벽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거다. 

사진관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탐스러운 꼬리를 가진 고양이다. 5년쯤 되었다. 어느 날 지인들과 사진관 마당에서 삼겹살을 굽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쳤다. 삼겹살 한 조각 주면 좋겠다는 뜻이구나. 주변을 오가는 길고양이들은 제법 눈에 익었는데,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보통 길고양이들은 사료를 주어도 멀찍이서 눈치를 보고 다가오지 않았는데, 이 고양이는 천연덕스럽게 받아먹고 사람의 손길도 거부하지 않는다. 누구냐, 넌?

손을 피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한 때는 사람 손에 자랐던 것 같고, 귀 한쪽이 살짝 잘린 것은 길고양이의 신분으로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뜻이니 그의 길바닥 생활이 제법 됐다는 뜻일 거다.

거부감 없이 안기는 녀석을 사진관 안으로 데려왔다. 저항도 없다. 하룻밤을 재워보니 오랜만에 먹은 삼겹살 때문일까 토한 흔적은 있지만 딱히 다시 나가겠다는 기색도 없다. 그래, 같이 살자.

기티라는 이름은 마루가 지었다. 상하이에 있을 때부터 고양이 타령을 했던 마루에게 핑계처럼 했던 대답이 제주에 가면, 이었다. 제주에 와서는 길고양이를 길들이려고도 해보고 유기동물보호단체에 문의도 했지만 다 실패했다. 

기티가 온 첫날, 마루는 귀여운 고양이라서 ‘귀티’라고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다섯 살 어린이는 한글이 서툴렀으니까 ‘귀’여워야 할 고양이는 ‘기’여웠고, 그래서 이름은 ‘기티’로 결정됐다. 나중에 고쳐주려고 해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든다며 그대로 굳어졌다. 처음에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그 무렵의 고양이가 나이를 알기 어렵다고 대충 한 살에서 세 살 사이일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제법 대여섯 살도 넘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알게 모르게 어려 보인다. 젋어보인다고 해야 하나.

태생이 길고양이라 집과 사진관, 마당과 주변을 마음대로 오가며 산다. 가끔 온통 풀씨를 붙이고 올 때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색으로 온몸을 물들이고 올 때는 도대체 이 녀석의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큰 소리로 부르면 언제는 옆 귤밭에서, 언제는 앞집 텃밭에서부터 뛰어온다. 집 주변을 종횡무진한다. 가끔 새끼 고양이를 쫓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네 덩치 좋은 길고양이들에게 맞고 다닌다. 싸움 소리가 들리면 얼른 나가서 큰소리로 기티를 부른다. 그러면 대치중이던 녀석은 도망가고, 기티는 못 이기는 척 돌아온다. 안 말렸으면 맞았을 거면서. 

작업실 뒷문에는 고양이가 오갈 수 있도록 방화문 아래에 구멍을 내고 기티 전용문을 만들어 달았다. 집에는 못 한다. 내 실력으로 자르고 붙일 수 있는 문도 아니거니와, 가끔씩 새, 쥐 따위를 물고 오기 때문이다. 참새를 물고 어서 문을 열라고 보챌 때는 난감하다. 집 안에 새털을 날릴 수는 없다! 기티의 주식은 사료와 전갱이다. 우리 식구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근처 포구에서 전갱이 낚시를 즐기는데, 조금 큰 것은 우리가 구워 먹고 작은 것들은 기티가 먹는다. 냉동칸에 넣었다가 데워주면 하루에 두어 마리씩 꼬박꼬박 먹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밥값으로 기티는 사진관 막내 스태프로 일한다. 일한 지 오래됐으니 제법 직급도 있는 정직원이다. 주 역할은 손님 응대 및 분위기 전환. 모델이 한참 촬영 중일 때 괜히 들어와서는 다리 옆을 쓱 쓸고 간다. 바닥에 천 배경지를 깔면 그 밑으로 들어가 장난치거나 화면 가운데 들어가 몸을 뒤집는다.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도 고양이는 좋은 소재가 되고, 대화가 끊기거나 어린아이들이 지루해할 때도 기티는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 만하면, 꽤 괜찮은 직원이다. 가끔은 태업할 때도 있다. 손님이 와서 예뻐하는데도 데면데면하게 굴 때는


 기티야, 밥값해라.


 말해준다. 촬영을 예약한 분들께 보내는 안내 문자에는 사진관에 사는 고양이에 대한 안내도 포함되어 있다. 


사진관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불편하신 분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잠시 격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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