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운 사진관이라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바다가 가까운 해안도로에 작고 하얀 사진관이나 초원 가운데 무심하게 턱, 놓인 돌집 사진관 같은 거. 제주에는 그런 사진관들이 실제로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사진관은 마을 안길에 있는 조립식 건물이다. 마음은 돌집에 가 있었지만 손안에 받아 든 견적서는 현실이었으니까.
그런 사진관도 나름 멋있어 보이는 것이 또 제주의 힘이다. 사진관의 첫인상은 큰길에서 꺾어 들어오는 작은 돌담길이고, 그다음은 사진관의 정원이다. 마당인지 텃밭인지 모호하기는 하다. 살짝 숲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사진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너른 마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스튜디오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때는 정원이 그렇게 노동집약적인 곳인 줄 몰랐다. 집과 사진관을 짓기 전, 이 땅은 한라봉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과수원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수확하지 않고 내버려 둔 농익은 한라봉을 몇 개 따먹었는데 그 맛이 워낙 좋아서 이 나무들 중 몇 그루만이라도 꼭 살리자고 했다. 집과 사진관 주변으로 귤을 비롯한 만감류가 열리는 노릇노릇한 겨울 풍경. 생각만 해도 그럴듯했다. 하지만 집 짓는데 걸리적거린다고 한라봉 나무는 모두 베어져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고집스럽게 지켰어야 했는데 처음 지어보는 집이라 그런 고집을 부려도 되는 것인지 몰랐다. 혹시 태풍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집을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은 야자나무와 제주 현지인들이 벌레가 많이 든다고 경고해 주신 동백나무도 잘려나갔다.
처음 지어본 집이고 빠듯한 예산이었으니까 조경이라고 따로 고민해둔 것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한라봉 몇 그루도 베어져 나갔으니 넓은 흙마당만 남은 셈이다. 남은 이삿짐을 실어오거나 택배를 배달하던 트럭들은 여지없이 입구부터 젖어 있는 진흙 구덩이에 빠져 겨우겨우 돌아나가고는 했다. 이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정원은 이 집에서 우여곡절을 가장 많이 겪은 곳이다. 이 작은 정원 식구 중에 처음부터 있던 것은 하나도 없다. 출신도 제각각이다. 잔디밭의 잔디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은 처음에 잔디 씨를 사 와서 뿌렸다가 2년쯤 지나서 실패하고 다시 다른 품종의 잔디를 사서 덮었기 때문이다. 그마저 처음 잔디를 깔끔하게 제거하지 못해서 그렇다. 15미터 길이에 2미터 폭으로, 그것도 2개나 만들었던 텃밭은 한 해 만에 얼마나 우리 수준에 말이 안 되는 규모인지 알 수 있었고,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어서 지금은 앉은자리에서 팔만 뻗으면 닫는 크기로 적당(?)해졌다. 현무암 판석은 하도 여러 번 옮겨 다녀서 도대체 처음 자리가 어디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지금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보장도 없다.
나무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집 안쪽에 기대듯 자라서 지금은 마당의 터줏대감이 된 유칼립투스 한 그루를 제외하면 거의 한 두 번씩은 자리를 옮겨 다닌 것들이다. 유칼립투스와 마주 보는, 잘 생겼지만 이름을 모르는 나무는 뒷마당 보도블록 사이에서 위태롭게 난 것들 옮겨 심은 것이다. 지금은 유칼립투스와 함께 사이 좋게 좌청룡 우백호로 마당을 지키고 있다. 가운데 있는 아카시아는 지난번 큰 바람에 나무가 꺾였는데, 뿌리로 번진 작은 것들이 대신 자라서 자리를 지켰다. 삼색 나무도 몇 년 사이 잘 자라서 작은 나무벽을 만들었다. 왕벚나무와 목련 그리고 내 생일선물이라면서 아내가 선물한, 사실은 자기가 갖고 싶었던 또 다른 종의 유칼립투스도 잘 자라고 있다. 레몬그라스와 핑크뮬리 약간 그리고 팜파스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잘 모르는데 아내는 너무 잘 아는 풀꽃들은 곳곳에 있어서 꼭 풀 베고 나면 한 두 개씩 베어져 나갔다며 아내의 핀잔을 듣게 만든다. 담화헌에서 가져온 옹기 의자와 조환진, 김창원 두 돌챙이 선생님이 주신 돌들, 그리고 어느 카페에 있는 것을 보고 따라 만든 철제 오두막까지. 정원은 성근 것 같으면서 꽉 차 있다. 아내는 이 마당에 있는 온갖 풀들의 이름을 다 안다. 이름뿐일까. 언제 샀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자랐는지 그들의 이력서를 꿰고 있다.
나는 겨우 아내가 시키는 것만 드문드문한다. 그러는 중에도 가지를 쳐낸다면서 레몬나무를 반토막 내기도 하고, 예초기를 돌리면 잔디와 닮은, 그러나 분명하게 다른 아내의 풀꽃을 꼭 하나씩 더 잘라먹기도 한다. 우리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마야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내는 이 정원의 식물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천에 인쇄해서 루다제주라는 이름으로 묶어낸다.
이 집을 지어주신 소장님은 몇 년이나 지난 아직도 가끔씩 들러 차 한 잔 하고 가시는데, 어느 날은 사진관에 앉아 마당을 보며 말했다.
어디 다른 집 가 보세요. 이런 정원 없어요. 돈 주고 시킨 조경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딱 그대로예요. 이렇게 자연스럽고 예쁜 정원 진짜 드물어요.
아내는 전문가의 칭찬에 뿌듯해했다.
그렇지요. 모든 정원이 이런 우여곡절을 겪지는 않으 테니까요. 나는 속으로만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계절 다른 꽃과 풀이 피고 지는 아내의 정원은 여전히 변신 중이다. 그러니까, 이름 붙이자면 자연주의 정원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