젯다에는 볼거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 자체가 여흥과는 거리가 먼 곳이거든요. 아무래도 '특별히 알아보지 않는 한' 현장에서 재미있는 걸 찾기는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얼른 검색을 해봤습니다. 근처에서 너무 멀지 않고 이왕이면 집에 가는 경로에 있으면 더 좋고요. 그렇게 결정한 다음 목적지는 '킹 압둘라 이코노믹 시티'였습니다. 이곳은 경제적인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럭셔리한 휴양도시예요. 사진과 후기 몇 개를 찾아봤는데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약 2시간 (200km) 가야 한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 멀리까지 놀러 왔으니까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사막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네요.
그렇게 이코노믹 시티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없죠. 왜냐하면 도착하자마자 멘붕이 왔거든요. 도시에 도착한 것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문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는 도시 전체가 아주아주 큰 리조트였어요. 회원권을 가지거나 숙박을 하지 않으면 시설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그럴듯한 시설은 죄다 리조트 소유였고 그 자리에서 숙박을 알아봤지만 벌써 매진이라 빈 방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물어물어 알아보니 겨울에 스키장 시즌권을 끊듯이 이곳도 시즌권을 끊어서 계절을 통으로 빌려 오는 사람들이 많대요.
그래서 무작정 눈앞에 보이는 호텔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만 한 잔 하고 나왔습니다. 다행히 해변 구석에서 혼자 노는 것까지는 터치를 안 하길래 애들을 놀리고 '이제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는데요.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서양 아저씨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하고 있었는데요. 당연히 그 사람도 숙소가 없다는 걸 여기 들어와서야 깨달았고 다음 목적지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달려야 하는 신세였어요. 우리 보고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차가 있는지 물어보는데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할튼 그 사람과 서로 '이런 곳이 있냐'며 신세 한탄을 하고 헤어지려는데, 지나가는 말로 물어봤어요.
"근데 당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메디나"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랑하는 이슬람 2대 성지 중 한 곳이에요. 무함마드가 태어난 메카가 첫 번째 성지고, 그리고 메카에서 쫓겨난 무함마드가 무슬림 지도자로서 다시 일어난 곳이 메디나거든요. 무함마드의 전성기를 보낸 곳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무덤도 메디나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메카와 메디나는 무슬림이 아니면 도시 출입 자체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젯다로 오는 길에 메카가 있는데 고속도로에서 메카로 빠지는 램프에 검문소가 있는 것도 봤어요. 고속도로를 지나는 모든 차가 톨게이트에 서듯 멈춰 서서 한 번씩 검사를 받고 지나갑니다.
한눈에 딱 봐도 무슬림이랑은 거리가 먼 백인 자전거 하이킹족이 메디나에서 왔다니까 놀랄 수밖에요. 아마 제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사우디 정부가 정책을 바꾼 것이겠지요. 관광 비자도 내고 여러 가지로 개방 붐이 일었기 때문에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행선지는 "메디나 너로 정했다!" 배신자 이코노믹 시티에서는 두어 시간 목만 축이고 바로 메디나로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