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바뀌어도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나미는 달력에 진성이 들어오지 않는 날을 표시했다. 한 달에 가위표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나미가 바가지를 긁었는지, 진성이 친구를 지나치게 좋아했는지, 그래서 여전히 밤마다 투닥거렸는지 모비와 동생은 알지 못했다. 딸기우유 색 벽지와 붙박이장, 이층침대가 있는 그곳에서 그저 매일매일 열심히 자랐다. 넷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한 날은 별로 없었지만 크리스마스 때에는 모비 키 만한 인형을 선물 받았고, 눕히면 눈을 감고 간지럽히면 웃는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햇빛을 받으면 자주색으로 변하는 칼이 있었고, 나이에 맞지 않는 세계명작 전집이 있었다.
모비 집 옆으로 골목이 하나 있고 안쪽에 두 집이 있었다. 한 집은 교문 앞에서 산 병아리를 항상 닭까지 키워내서 시골로 보내는 집이었고, 다른 한 집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학원의 2층은 피아노를 배우는 곳으로 안방에 피아노 두 대, 다른 방에 피아노 한 대가 더 있었고, 1층엔 선생님이 사셨다. 선생님이 믹스커피를 타러 내려가시면 모비는 거실에 모여 언니들에게 빨간 마스크 이야기를 들었다.
입이 쭉 찢어졌다는 빨간 마스크를 만나면 보여줘야 하는 십자가를 손목에 그려놓아도 빨간 마스크를 만날까봐 무서워 떨었다. 그러다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피아노 앞에 앉아 뚱땅거렸다. 포도송이 10개를 다 색칠하면, 친구들과 골목에서 제기로 '오자미'를 하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해가 지면 다들 저녁을 먹으러 헤어졌다. 모비는 바로 옆 3층 새 건물 안으로 자기가 들어가는 것을 모든 친구들이 볼 때까지 안녕- 안녕- 내일 또 놀자- 안녀엉. 긴 인사를 했다.
1년 후에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는 바람에 미리 사두거나 선물 받은 공책을 모두 버리고 새로 샀다. 손 들고 큰 소리로 발표해야 한다는 나미의 당부에 모비는 발표를 열심히 했고 수업 시간에 집중했다. 선생님들은 모비를 예뻐했고 학생들은 모비를 부러워했다. 나미가 흰색 셔츠에 흰색 멜빵 치마, 올백 머리에 흰색 곱창까지 해 주는 날이면 모비는 옷이 더러워질까 봐 어디에도 앉지 못했다. 때에 맞춰 데스크톱 컴퓨터를 사서 라이온킹 게임을 했고, DDR 발판 위에서 화살표에 따라 춤을 췄으며 삐삐 시대 마지막을 경험했다. 천리안, 누리텔을 하다가 집전화가 안 돼 꾸지람도 받았고.
소풍을 앞두고는 친구 둘을 3층집으로 데려와 SES 노래에 맞춰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모비는 당연히 유진 역을 맡았다. 더 이상 7살 숏컷의 모비가 아니었다. 아빠는 돈 버느라 바빠서 잘 만나지 못하지만 엄마의 세심한 관리 속에 자라는 유복한 초등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