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파도가 계속 치면 결국 바위도 패이잖아요?"
학원 선생님이 너무 짜증 나, 단어 하나 틀렸는데 왜 맞은 것까지 10번이나 쓰게 하냐고. 조금만 틀려도 남으라고 하고. 다른 애들이랑 비교하고. 나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최선을 다 안 했다고 하고.
차라리 네가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널 다시 설득했을 텐데. 파도에 패인 바위라니, 아가.
"영어 학원에서는 자꾸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아요. 학원 방침도 잘 이해가 안 가고요. 저도 이제 한계를 느껴요. 이번 달까지만 다니고 10월은 쉬고 싶어요. 10월에 학원을 옮겨봤자 남는 게 없어요. 휴일이 너무 많잖아요."
어학원이라 숙제가 워낙 많기도 했고, 그만 다니고 싶단 얘기는 주기적으로 해 왔지. 한 달마다 전화 오는 영어 선생님은 똑같은 말을 했어. "어머님, 우리 Ellie는 잘 키우면 아주 크게 될 녀석입니다. 조금만 더 욕심을 갖고 열심히 하면 될 텐데 그게 아쉬워요."
거침없는 네 성격 덕에 너는 파닉스 발음을 원어민과 똑같이 과장되게 잘 따라 했고, 틀리든 말든 어떤 표현이나 내뱉어서 영어 실력이 쑥쑥 늘었지. 나도 이런 어학원을 다녔다면 지금 영어를 더 잘했을까 싶을 정도로 학원 시스템도 훌륭했어. 내가 공부하던 때와 다르게 '혼자 공부하는 아이'는 없다고, 학원 다니고 학원 숙제하는 게 공부하는 거라는 주위 사람들 말에 영, 수 학원을 보내고 집에서는 그래도 자유롭게 TV, 휴대폰 사용을 허용했던 건데.
네가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공부해고 싶다니, 그럼 나도 입장이 달라지지. 나는 영어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는 네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어. 대신 휴대폰 다운타임을 절반으로 줄이고, 티비 리모컨을 숨겼어. 금단 현상이 곧바로 시작되더군. 덩달아 둘째 어린이까지. 부탁하다가 화내다가 다시 애원하는 너희들 성화에 나도 퍽 괴롭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아빠 말씀대로 하루에 한 시간씩 모두 모여 각자 책도 읽고, 공부도 해 보자. 지금은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리지만 조금씩 좋아지겠지.
'공부는 엉덩이 힘으로 한다.'
너무 구닥다리 같은 말이지만,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할 힘도 없는데 무슨 공부를 하겠니.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5:21-22)
성경에 자세히 적혀있지는 않지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게 된 데에는 자녀 므두셀라가 계기가 되었을 거야. 네가 '제가 공부하는 기계가 된 것 같아요.'라는 말할 때는 너무 열받고 코웃음 치고 싶지만, 꾸욱 참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계기로 삼아볼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 3 1:2)
나는 네가 몸과 마음이 평안하기를 항상 기도해.
그리고 요즘엔 이렇게 기도하지.
네가 예수님처럼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갔으면 좋겠다고.(눅2:52)
티비 리모컨 어딨냐며, 그걸 숨기는 건 너무하다며, 그럴 거면 티비 왜 샀냐는 둘째의 볼멘소리에 오늘 출근길도 열받았지만 출근길 아이스 카페라떼로 달래 본다.
너희도 나도 존버다. 존중하며 버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