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백일장 출품작(대상)
내 그림자가 깊어진 때는 긴 머리카락을 잘린 7살 여름이었다. 큰 다툼이 있었는지 어머니는 서울 친정으로 가버리고 아버지와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요리조리 묶고 땋던 나의 긴 머리카락이 늙은 할머니께는 처치 곤란이었으므로 거의 남자애처럼 숏컷이 되었다.
아버지가 출근하고 없는 한낮에 어머니가 나를 보러 할머니 댁에 왔는데 꽤 오랜만에 본 터라 어머니를 보고도 데면데면하는 내 옆구리를 할머니가 푹 쑤셔댔다. 그래도 내가 엄마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못하자 어머니가 화장실을 간 틈에 할머니는 "울어라, 울어, 엄마랑 살고 싶다고 울어브러야."라고 나를 재촉했고, 어머니가 자리에 앉자마자 앞뒤 맥락도 없이 어설프게 우는 연기를 했다.
어색한 연기가 통했는지 1학년 때부터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밖으로 도는 아버지와 참지 않는 서울 여자인 엄마 사이는 순탄치 못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났고, 엄마 손에 한 올도 빠짐없이 묶여 젤을 바르고 형형색색 머리 곱창을 매달며 지냈다.
IMF가 터지면서 부도와 이혼이 급증했고 나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지역 유지였던 할아버지 지원 아래 사업을 벌인 젊은 사장님인 아버지의 사업은 넘어갔고, 빚 때문에 위장이혼을 하기로 한 어머니는 사회생활 한 번 해 본 적 없다가 두 딸을 데리고 길바닥에 나 앉았다. 하필 그때 내 사춘기와 맞물려 내 그림자는 어떤 빛도 다가가지 못하는 깊은 바닷속 어둠을 닮아갔다.
어머니는 말바우시장 옷가게에서 공짜 점심만 얻어먹으며 일을 배웠고 집에 돌아와 우리가 끼니를 챙겨 먹지 않은 것에 불호령을 내리셨다. 그런 어머니 아래에서 나도 가라앉을 수만은 없어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 결과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게 됐다.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정확히 정사각형이었던 그 방에서 가로등 때문에 주황색으로 물든 창문과 천장에 비친 행거의 그림자를 보며 소리 없이 울던 수많은 밤도이제 다 용서했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7살에 생긴 깊은 그림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받게 했고, 이유 없는 어두움으로 한없이 슬프게도 했다. 그림자는 아무도 모르게 점점 더 길어지고 점점 더 짙어지더니 그림자 무게에 다리를 땅에서 들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림자에 발이 묶여 멈춰 섰다가 이내 주저앉았다. 죽고 싶다기보다 사라지고 싶은 날들이었다. 7살에 생긴 그 그림자가 여전히 내 안에 있어 성인답게, 엄마답게, 살지 못하도록 자꾸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왜 슬프지, 왜 슬프지... 왜 그러지, 나는?'하고 되뇔수록 자꾸 잘려 나간 긴 머리가 떠올랐다.
'그림자에 삼켜질 수는 없어!'
나는 살고 싶었다. 그림자만 핑계 대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몇 년 후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인데 한참 뒤늦게 온 사춘기에 남은 인생을 망칠 수 없지. 나는 그림자를 다시 해석하기로 한다. 그림자는 결국 빛과 물체 때문에 생긴다. 나는 부모가 있다. 애증, 원망 그러나 또 사랑. 사랑이라는 광원.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있다. 꼬마 아이의 그림자는 작고, 어른의 그림자는 크고 길다. 딱 그 사람이 감당할 만큼 진하고 긴 그림자가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7살에 그림자가 깊어졌으나 너는 취업으로, 친구로, 사람으로 그러했겠지. 그림자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 있으니 그것이 또 하나의 위로.
그림자는 시간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진다. 태양의 높이에 따라 하루에도 그 길이가 달라지고, 같은 시간이어도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덜어낼 수 없는 슬픔이 나와 너무 가까이 있어 괴로울 때도 있지만, 또 다른 것으로 그림자를 덮을 때도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365일 길고 진한 것은 아니니까. 나는 그림자가 짧아질 때, 옅어질 때, 완전히 사라질 때를 기다릴 것이다. 이는 희망.
부모로부터 그림자를 받은 나 역시 두 아이의 부모다. 나도 그들에게 블랙홀 같은 그림자를 줄까 봐 두려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게 다시 내 그림자를 원망하게 했다. 악순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한다. 그림자가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는 것과 그림자가 커질수록 사람도 커 있다는 것. 크고 작아지고 진해지고 옅어지는 그림자는 시간의 흐름이자 인생이라는 것을.
대신 나는 우리 아이와 그림자놀이를 하고 싶다. 혼자 천장의 그림자를 보면서 울지 말고, 나랑 놀자고,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슬픔들로 같이 놀아보자고, 같이 크자고, 그림자가 무거워진 만큼 밀도가 높아진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