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뜨릴 수 있는 벽

by 조모비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벽을 세웠어요. 마음의 벽은 하루에도 만리장성만큼 쌓을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언젠가 이 벽을 부서뜨릴 사람도 '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대요. 벽은 나를 지키기도 하지만 가두기도 하니까요. 무작정 벽을 높고 두껍게 쌓으면 벽을 부술 때 고생할 거라고.


시간은 벽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요. 허물 수 있다면 빨리 허무는 게 좋대요. 풍화작용으로 벽이 허물어지길 기다린다면, 그때 너와 나는 없겠지요. 그런데

벽을 그렇게 빨리 허물 수 있다면 애초에 쌓지 않았다고요! 무서운 걸요. 한 번만 더 공격받으면 난 흩어질 거 같았어요.




그럼 문을 조금만 열어보라고요?

아직 성 안이 너무 복잡해요. 다 정리되면 열게요. 그래요, 알아요. 다 정리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




가끔 기분 좋은 날이 있어요. 가을바람이 기분 좋고, 구름이 예쁘고, 나무들의 우듬지가 정갈하고, 솜사탕처럼 둥글게 이발한 은행나무를 본 날이요. 그런 날은 다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당장 전활 걸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웃어줄 수 있을 것 같죠. 그래서 그날도 문고리를 잡았어요. 철컥 돌릴 생각이었어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다가오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불편했어요. 분홍색 알약을 떠올렸어요. 곤두선 내 감각을 모두 잠재우겠죠. 심장이 느리게 뛰고 눈꺼풀이 느리게 움직일 거예요. 그리고 나는 알약을 삼킨 목구멍으로 고기를 먹어요. 노래를 불러요. 인사를 해요.

돌아오면 바로 눕겠지요. 그렇게라도 날 주고 싶었어요. 평화를 위해. 당신의 평안을 위해.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모두에게 미안했어요. 당신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괘씸하겠죠? ’이 정도면 됐지! 그때 한 번 가지고! 애초에 뭐 큰 일이었다고!‘




다 핑계일까요? 내가 나 자신마저 속이고 있을까요?




기분이 좋은 날이면 나는 망루에 올라서서 당신에게까지 손을 흔들고 싶어요. “안녀어어어어엉하아아아아앙세에에에요오오오오오오옹오” 다 큰 숙녀답지 못하다고요? 뭐 어때요, 전 원래 개구져요. 기분이 더 좋은 날엔 우리 손잡을래요? 당신의 어깨가 들썩거릴 때까지 맞잡은 손을 흔들어줄 거예요. 그래도 웃지 않을 건가요? 둘 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할 거예요.





그때까지 나 조금만 더 나를 봐줘도 될까요? 내 살을 모두 내어주기 전에 조금만 더요.

성 안에 가을바람이 들어오도록 창문도 열고, 노래 부르며 춤도 추려고요. 조금만 더 즐거워질게요.




다시 봄이 오면, 새로운 모든 이들에게 비밀로 할 거예요. 내가 누군지. 왜 이러는지. 그때까지만. 조금만 더. 내가. 나를. 봐주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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