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슬픔

by 조모비

소설을 마치며 나는 모두에게 뜯어 먹힐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마음까지 온전히 줄 수 없어도 몸의 모양만큼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때때로 아주 정상적이었으니까. 무기력과 타고난 게으름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떤 일은 잘 해내기도 했으니까. 내가 다 또는 거의 회복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대면을 앞둔 몇 시간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그날의 일정을 떠올린 때부터-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깊은 호흡이 되지 않았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답답하고 얕은 호흡, 두근거림,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정제를 떠올렸다. 밥을 먹기 위해 안정제가 필요하다니. 안정제는 예민해진 나의 모든 감각을 둔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면 나의 껍데기는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정제를 먹지 않았다. 테이블에서 고기를 씹어 넘길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빈 집에 홀로 남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벌을 주었다. 몸에 음식을 넣지 않았다. 약도 먹지 않았고, 시계도 보지 않았다. 험한 꿈에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났는데 아무리 비켜가려고 해도 시신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럭셔리 파티장에 있었다. 모두가 즐거운데 나 홀로 초라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서 먹지도, 앉지도,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눈치를 보는 꿈이었다. 7살에 살던 할머니댁으로 갔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 모든 친척이 모여서 내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같이 왔다. 친척들이 내 칭찬을 할 때마다 엄마가 '제가 키웠어요. 제가 이렇게 잘 키웠다고요.'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모른 채 했다. 다음은 빌딩숲이었다. 너무 지쳤는데 길을 잃어서 한참을 걸어도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엔 수양회장.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금방 출발한다는데 짐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모든 것이 정리된 숙소에서 내 자리에만 이불이 펴 있고 내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모두 버스에 타 있었다. 버스를 놓칠 것이다.




알람이 울리고 아침이 되었다. 다른 가족들이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모두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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