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가족의 유산 중 좋은 것만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그들로부터 멀리 갈 수 있을까. 혹은 가까이 머물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정중한 타인인 채로 말이다.
-이슬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 중에서-
너무 사랑했던 동생이 결혼을 했다. 모비가 동생을 키운 것도 아니면서, 흡사 빈 둥지 증후군 같은 기분을 느꼈다. 모비가 이러한 기분을 느낀 것이 결혼식은 아니다. 이미 체감하고 충분히 서운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동생은 그 무엇도 가족들과 상의하거나 묻지 않았다. 제부와 함께 알아서 모든 것을 진행했다. 나미와 진성, 그리고 예민한 모비까지. 삼각형의 무게 중심에 서서 미세하게 잘 조율했다. 모비는 이제 같이 짐을 지는 사람이 아닌, 동생이 배려할 또 하나의 대상이 된 것이다.
드레스를 입은 동생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식이 시작되기 전, 신부대기실에서 서로 마주 보고 사진을 찍는데, 동생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화장을 고쳐야 할 만큼 많이. 모비는 신부대기실 출입 금지령을 받았다. 올해에는 모비 눈만 봐도 우는 두 명의 신부가 결혼했다. 그들을 위해 모비는 울지 않았다. 울지 못 했다.
모비가 일주일 넘게 악몽에서 만났던 친가 식구들을 실제로 보았다. 일부러 활짝 웃지 않고 인사했다. (반만 웃었다.) 진성과도 인사하지 않았다. 진성도 안 했으니까. 모비를 잃은 진성은 퍽이나 처량했다. 그날은 모비가 진성보다 아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그 건물에 익숙했지만, 멀리서 온 진성 동료들에게 살갑게 인사해 주지 않았고, 친가 식구들도 보는 둥 마는 둥 해 버렸다. 모비의 딸과 아들을 정성스럽게 인사시키지도 않았다. 모비가 진성과 어색하니까 그랬는지, 손주들도 할아버지와 어색해졌다. 확실히 진성에게 불리한 게임이다. 중간에 어쩔 수 없이 모비는 진성에게 전화를 걸긴 했다. 사진 찍어야 하니까 빨리 오시라고. 진성은 건조한 목소리로 '어.' 하고 끊었다. 식당에 따로 마련된 혼주석 테이블에 앉았을 때에는 식사하시라고 모비가 진성에게 수저를 챙겨드리기도 했다. 진성이 그냥 자리를 떠 버렸다. 그리고 모비 옆자리가 아닌 곳에 덩그러니 앉아 급하게 식사했다. 그 옆으로는 모비의 이모부가 앉았는데, 아마 불편했을 것이다. 친가 식구는 누구도 혼주석에 감히 오지 못했다. 진성은 모비에게 인사도 없이 식장을 떠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비는 진성의 뒷모습을 봐 버렸다. 오래도록 서서 쳐다보았다. 구부정한 어깨, 짐 가방, 양복 케이스. 신랑 신부는 바쁘고, 사위는 축의금 정산하느라 바빴으니 모비 없는 진성은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다시 그날이 와도 모비는 진성에게 먼저 인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택이 아니라 '불능'의 상태였다고 말했다. 정말 불능의 상태였냐고 또 다른 모비가 물었다. '불능의 상태라고 하면,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내버려 둬.'라고 착한 남자가 말했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미는 '이제 그만 내려놔.'라고 말했다. 그 대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생은 '어때? 아빠가 언니한테 먼저 말 안 걸었지?'라고 했다. 이제 결혼한 자기가 아빠를 챙길 테니 언니는 가벼워지라고 했다. 글쎄, 그 말도 잘 모르겠다. 누구도 마음에 드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입을 다문다.
정중한 타인이 되고 싶다. 진성에게도, 동생에게도. 그리고 그들도 이젠 나에게 타인이어야 한다.
얼마 전 모비에게만 까칠하게 구는 사람에게 '왜 나에게만'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의식 과잉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자의식 과잉의 주요 특징
1. 자기중심적 사고: 모든 대화나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자신의 장점에 집착하거나 자랑을 자주 늘어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2. 타인의 시선에 민감: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끊임없이 신경 쓰고, 사소한 행동이나 실수도 크게 의식합니다.
3. 사회적 불안과 고립: 과도한 자기 모니터링으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 맞는 것도 같다. 모비는 자의식 과잉이구나.
그럼 책의 이 구절도 기억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신문에 실리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책이 여러 권 팔린대도 말이다. 무신경한 인터뷰어도, 배배 꼬인 악플러도, 찬사를 보내는 독자들도 사실 진짜로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숙희와 남희가 그렇듯 자신 앞에 생을 사느라 분주할 테니까. 그것을 기억해 낸 슬아의 마음엔 산들바람이 분다. 관심받고 있다는 착각, 주인공이라는 오해를 툴툴 털어내자 기분 좋은 자유가 드나든다.
-이슬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 중에서-
*숙희와 남희는 슬아에게 관심 없는 그 집 고양이들
진짜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이 세상에서는) 그러니 당분간 모비가 모비 스스로를 좀 행복하게 해 줘야한다. 즐겁게 해 줘야지. 모비를 괴롭게 하는 사람은 멀리 둔다. 그러다 힘이 나면 모비는 모비 옆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Let them. 모두 내버려 둬, 모비. 그러든 말든. 널 좋아하든 말든. 너에게 친절하든 말든. 너를 사랑하든 말든.
2025.11.17.(월)
덧+
이슬아의 에세이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책입니다. 에세이의 연장선이라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만큼 잘 썼거든요. (여기에 나오는 출판사가 진짜인지 검색해 볼 정도였으니까요.) 안 그래도 이슬아 작가가 부러웠는데, 정말 이렇게 살고 있다면 배가 너무 아파 뒹굴었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정말 그렇게 지내고 있진 않대요. 그러나 그녀가 꿈꾸는 가족을 나도 꿈꿔봅니다. 복희와 가장 닮은 삶을 살고 계신 시어머니를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녀의 삶을 더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에 대해 고민이 있다면, 작가의 솔직한 재치에 피식피식 웃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