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의 집

by 조모비

진성은 자기 집을 갖는 게 오랜 소원이었다. 수많은 아파트 현장에서 집 짓는 일을 했지만, 정작 자기 집이 없었다. 잠깐 소유했던 3층 건물 이후로 쭉.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지냈다. 숙소 생활이 정 힘들면 근처 원룸을 빌렸다. 아파트 현장은 2-3년꼴로 바뀌었다. 주로 인천과 경기도 신도시 쪽을 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사 현장도, 짓는 아파트도 달라졌다. 안전을 위해 나이 많은 사람은 고용하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어느새 진성이 현장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다.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점점 발전했다. 구축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파트 주차 시설부터 부대시설, 조경까지. 같은 평수여도 훨씬 넓게 빠졌고 수납공간이 많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훨씬 가치 있었다.


그리하여 진성은 노후 설계를 바꿨다. 원래는 5년만 더 일하고 은퇴해 광주 근처 근교에서 시골집 하나 얻어 마당에 개를 키우며 살 생각이었다. 보험을 든든하게 들어두었으니 딸자식들에게 손 벌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진성은 새 아파트를 사고 싶었다. 그나마 남은 젊을 때를 자기 집에서 누리고 싶었다.




고된 일 끝에 진성은 동료들과 늘 반주를 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딸들에게 전화가 오는 일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어 우리 딸~ 웬일이야.” 모든 동료 앞에서 일부러 크게 말했다. 그러나 통화가 길지는 못했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따로 살았기 때문에. 그래도 매일밤 진성은 딸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매일 저녁 딸들이 진성을 기다렸던 것처럼.


진성은 매년 4월이면 딸들의 생일을 기념해 광주를 내려갔지만 딸들은 진성의 생일에 올라오는 법이 없었다. 모비가 시댁에 가 버린 명절에 빈 집에 남아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 일도, 더 이상 자신이 오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 같은 형수댁에 굳이 가는 일도 처량했다.


진성은 기어코 자식새끼 다 필요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엄마랑 살아서 그런 건지 딸들은 지 엄마만 위했다. 돈 있고 건강할 때나 아버지 대접받지, 진성이 늙고 아플 때 딸자식들이 얼마나 들여다보겠나 싶었다. 내 살 길을 찾아야지, 내 집을 만들어야지.




진성은 광주에서 주소지를 옮겨 수도권 신도시의 아파트에 청약을 넣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랑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진성이 딸들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의지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드디어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됐을 때 진성은 3년간 만나던 여자와 살림을 합쳤다. 자기 집과 자기 가정을 새롭게 가진 진성은 5년 더 일하기로 한다. 대출금이 많았다. 그래도 혹시 자기가 죽은 뒤 이 아파트로 양쪽 자식들끼리 재산 싸움이 날까봐 여자의 돈은 하나도 섞지 않았다. 유산 싸움이라면 진성은 진절머리가 났다.


새 여자는 진성의 새 집을 깨끗하게 가꿨다. 진성이 좋아하는 떡국을 언제든 끓여내기 위해 냉장고에 떡국 떡을 가득 채워 넣어놨다. 그리고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벌었으며 진성에게 손 벌리지 않았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미와 돈 문제로 항상 싸우던 것과는 다른 삶이었다. 여자는 욕심이 없었다. 진성은 그런 새 여자가 좋았다. 주말이면 여자와 서울 근교 여기저기를 놀러 다녔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진성은 예전에 모비와 동생을 찍어주듯이 여자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여자가 찍어준 사진으로 매주 카톡 프사를 바꿨다. 휴대폰 앨범에는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진성과 여자는 자식 키우느라 고생한 서로에게 마지막 보상이었다.




모비는 진성 옆에 항상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고 싶진 않았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진성이 태담기 구입 링크를 물어왔다. 설마 이복동생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덜컥 두려웠다. 다행히 새 여자의 딸이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성은 모비에게 태담기를 사준 적이 없었다. 어버이날 진성은 새 여자의 아들 내외와 저녁 식사를 했다. 진성은 새 여자에게 자기 딸도 자랑하고 싶었다. 새 집에 놀러 오라는 말에 모비는 도통 올라와 보지 않았다. 진성은 모비 집으로 장윤정 콘서트 티켓 두 장을 보냈다. 진성과 새 여자의 것이었다. 모비에게 공항에서 콘서트장까지 픽업을 부탁했다. 진성은 자기의 딸이 얼마나 예쁜지, 바르게 컸는지, 착한지, 상냥한지, 자기한테 잘하는지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말이 투박하게 나갔다.


“당연히 네가 아빠 픽업해 줘야지.”

모비는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내가 왜? 내가 왜 그 아줌마까지 봐야 해? 아빠 연애 응원해. 그런데 그 사람까지 만날 생각은 없어요.”


진성은 진심으로 서운했다. 자신은 불륜이 아니었다. 새 여자의 아들 내외는 자기에게 식사까지 대접했고, 딸은 진성의 선물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런데 왜 자기 딸은. 진성은 새 여자 앞에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럼 그 티켓 다시 나한테 보내라.’


며칠 후 정말로 티켓이 돌아왔다. 진성은 광주에 내려와 공연을 보았지만 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모비가 ‘그냥 아빠 뜻대로 해드릴 걸 그랬나, 아니 아빠는 어떻게 나한테 이런 것까지 바라지.’의 생각 사이에서 얼마나 자기를 원망하고 자책했는지 진성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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