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의 딸

by 조모비

모비의 슬픔이 차곡차곡 쌓였다. 7살부터 12살을 지나 명절을 지날 때마다 차곡차곡.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모비는 어리석었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어리석은'에서 나왔으니까. 첫 아이는 호기심 많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아이였다. 남자는 사회적으로 한창 바쁜 시기였다. 휴직을 한 모비는 아이와 항상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너무 바빠서 모비에게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마실 텐데, 좀 늦게 들어갈 것 같아. 이제 끝났어. 와 같은 문자를 보낼 시간은 죽어도 없었다. 모비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너무 힘들어 모비가 울면, 아이도 울었다. 둘이 끌어안고 같이 울었다. 부모는 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던데, 모비는 그렇지 않은 자신이 싫었다.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샤워기에 물을 틀고 몸을 적시면 아이가 울었다. 라면을 끓여 한 젓가락 뜨면 아이가 불렀다.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무언가 집중하고 싶을 때 집중할 수 없었다. 우울이 아이에게 분노로 표현된다. 아이는 운다. 그러면서도 모비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모비가 혼냈는데, 모비를 미워하지도 않고 엄마만 찾는다. 어쩌면 부모보다 자식이 부모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닐까. 모비가 진성과 나미를 모두 사랑했던 것처럼.


모비는 진성을 한 번 더 용서하기로 했다. 진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거절이 서운할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모비는 아무 일이 없는 듯 진성에게 연락했고, 웃었다. 굳었던 진성도 금세 풀어졌다.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비의 마음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쯤 남자의 아버지에게 공격을 받았다. 하필 그쯤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자꾸 생겼다. 모비는 모래성이 무너지듯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죽고 싶다기보다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빨리 흘러버렸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사라지는 일은 잠드는 일이었다. 잠에서 깨면 시간이 사라져 있었다. 기억도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모비는 자꾸자꾸 잤다. 침대에 바로 누워 힘을 빼고 천장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옆으로 누워 태아처럼 한껏 웅크린다. 그제야 선잠에 든다. 여러 가지 꿈에 끌려다닌다.


남자는 모비가 하루 종일 자는 게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원래 잠이 많았다. 그저 어떻게 저렇게 오래 잘 수 있는지 신기했다. 모비가 자는 동안 그저 묵묵하게 아이들을 챙겼다. 남자가 모비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모비가 아슬아슬하게 서 있을 때 결정타가 왔다. 익숙한 새 명절을 막 지나고 나서였다.




나미는 예상치도 못하게 모비가 너무 일찍 시집간 것이 무척 서운해 1년이나 결혼을 반대했었다. 열심히 키워서 이제 막 같이 쇼핑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싶었는데 덜컥 시집을 간다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집이 힘들어 빨리 독립하고 싶었나 싶기도 하고, 자신이 딸을 너무 강압적으로 키웠나 후회가 됐다.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자신이 모비에게 너무 큰 기대와 책임을 준 것 같아 미안했다. 그때 나미는 두려웠고 어떻게든 딸들을 잘 키우고 싶었다. 나미는 남는 아쉬움을 손주들에게 풀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했다. 모비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이었다. 모비의 아이들은 나미를 무척 따랐다. 특히 모비의 딸은 나미에게 모든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미는 모비를 다시 키우는 마음으로 언제나 손녀 편을 들어주었다.






모비의 딸은 영특하고 눈치가 빨랐다. 친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같은 집에 살지만, 나미와 진성은 같이 살지 않은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아주 어린 나이에 '이혼'의 개념을 이해했고, 모비와 남자가 싸우면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고 하던데, 모비는 자기 부모의 이혼이 자기 딸에게까지 영향을 줄 줄 몰랐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비의 딸은 그림자 없는 모비 같았다. 자기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면 자기도 딸처럼 왈가닥으로 자랐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 면에서 딸이 부러웠다. 키우기는 어려운 캐릭터지만, 매력 있는 어린이였다. 그리고 모비의 딸은 마침내 모비가 진성에게 한 번도 하지 못한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핸드폰에 있는 여자 누구야? 여자친구야? 엥? 난 그 아줌마한테 할머니라고 부를 생각도 없고, 만나기도 싫어! 나는 나미 할머니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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