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장력에 마지막 한 방울

슬픔의 바다에서 유영하기 (1)

by 조모비

모비는 1988년생이다. 곧 마흔을 앞두고 있다. 그녀의 마음에서 무언가가 폭발해 버린 것은 작년 37살 늦가을이었다.


그녀는 무덤덤하게 정신과를 찾았다. 마음의 감기일 뿐이라고, 정신과는 나쁘거나 이상한 곳이 아니라고 배워 온 세대라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저 직장에서 병가를 길게 쓰려면 필요할 서류를 받아놓을 요량이었다.


수많은 책,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푹신한 소파, 다양하게 배치된 테이블과 의자들로 애써 카페로 위장한 듯한 로비였다. 어떻게 체크해도 우울증으로 나올 법한 질문과 답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모비는 무던하게 체크했다. 매우 그렇다. 대체로 그렇다. 그렇다. 전혀 아니다. 모든 응답을 '전혀 아니다'로 하지 않은 이상 건강하다고 나올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매우 그렇다'는 잘 체크하지 않았다.

장발을 묶은 젊고 호리호리한 남자 원장이었다. 이상한 것은 의사와 환자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었다. 원장의 커다란 책상 너머 낮은 탁상 테이블, 그리고도 간격이 꽤 있는 그 너머 소파에 앉아야 했다. 그동안 다녔던 병원들은(이비인후과, 안과, 치과 등) 다 의사와 가깝게 앉았었는데, 묘하게 더 외롭게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은 결과를 보니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었다. 모비는 자책과 반추 점수가 다른 사람보다 지나치게 높아 중증의 우울증으로 나온 결과 그래프를 손에 쥐고 있다.

"제가 이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모비의 대답을 들은 의사는 컴퓨터를 앞에 두고도 수기로 차트에 열심히 적었다. 모비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책상에 코를 박고 필기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여전히 차트에 시선을 둔 채로 모비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자책하나요?"

"제가 환경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바뀌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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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했을 때 이 일이 객관적으로 엄청 힘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보다 더 힘든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게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

모비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모비가 진심을 말할 때면 염소 소리가 났다. 우는 내담자가 많아서 그런지 테이블 한가운데에 미용 티슈가 있다. 모비는 눈물 닦은 휴지를 두 손으로 돌돌 말고도 더 울고 싶지 않아서 눈동자를 천장으로 굴렸다.


의사는 컵이 아무리 커도 물을 계속 부으면 넘치는 법이라고 했다. 모비는 안심했다. 내 컵이 작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해 주는 것 같았다. 듣고 싶은 말이었다. 동시에 내 컵에 부은 모든 물이 그 아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표면 장력을 이루던 컵에 마지막으로 떨어진 한 방울일지도 모르니까.


의사는 일을 쉬고 싶냐고 물었다. 진단서는 얼마든지 써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쉬어도 마음 편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며 약을 먹으면서 학기를 마무리하는 게 어떤지 물었다. 모비는 수긍했다. 애초에 휴직할 마음은 없었다. 그 아이 외에는 모두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그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올해 맡은 사업도 2개나 있어서 사업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산해야 하는데 인수인계를 하느니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했다.



그렇게 모비는 37살 가을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맞는 약을 찾을 때까지 힘든 시간이었다. 학기 말은 너무 바빴고, 이미 사용한 일주일 간의 병가동안 쌓인 일이 많았다. 약 때문에 쏟아지는 졸음, 집중할 수 없는 나른함.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그 학생의 문제 행동. 반복, 반복. 그래도 모비는 성실했기 때문에, 원래 잘 참아냈기 때문에, 끈질기게 버텼고 만나는 모든 이와 웃으며 인사했다. 어느 해보다 모비 자기 기준에는 부족했지만 학기 말 수업과 업무를 모두 처리했다.


모비가 그토록 바라던 종업식이 왔다. 그러나 그날마저 그 아이는 한 개 남은 칭찬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눈을 흘겼다. 모비는 다른 날과 같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모비는 그 아이의 문제 행동을 대응하느라 진이 빠져 다른 아이들을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한 것 같아 항상 미안했다. 오늘만큼은 나머지 아이들과도 뜨겁게 인사하고 싶었다. '그래, 너도 고생했다.' 하며 그 아이마저 토닥이며 잘 보내주고 싶었다.


모비의 관심을 끌지 못한 그 아이는 발을 구르고 책을 던지고 책상을 두드려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비는 아무 감정 없이 부적절한 행동을 멈추도록 지도했고, 당연히 상황은 계속됐고, 매뉴얼대로 교감선생님을 호출했다. 교감 선생님을 보자마자 아이는 교실 구석으로 도망갔다. 절대 교감선생님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모비는 지겹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도 똑같구나. 결국 부모님이 아이를 데려가셨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너는...


그 아이에게 썼던 편지들. 타일렀던 말의 온도, 훈계했던 에너지, 그 아이 때문에 피해받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자책, 그럼에도 우리 반 아이니까, 너는 어린이니까 미워할 수 없는 교사로서의 양심. 끊임없는 상담 전화, 교감선생님 호출, 반복되는 문제행동. 명백한 교권침해였으나 아동학대 고소가 무서워서 열었던 생활교육위원회, 수업권 때문에 방과 후에만 5일 이내 40분씩 교내 봉사, 솜방망이, 퇴근, 다시 출근, 또 반복. 모비는 모든 것이 지독하게 지겨웠다.


동료 교사들은 드디어 학기가 끝났다며 고생했다고 위로하였으나 모비는 겨울 방학 내내 약을 끊을 수 없었다. 잃은 식욕을 되찾지 못해 몸무게가 급격히 줄었다. 뒤늦게서야 가장 상처받은 것은 모비 자기 자신임을 알았다. 욕설, 지도 불응, 교내 이탈, 물건을 던지고, 노려보고, 아래위로 훑어보고, 말하고 있는 도중에 뒤돌아 가버리고,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있고, 그러다가 자기 기분이 좋아지면 다시 자신을 불러 발표를 시켜달라고 했던.

모비는 방학 내내 하루 종일 잤다. 잠들고 싶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잠자는 상태는 죽은 상태와 가장 비슷했다. 모비는 긴 긴 겨울잠을 잤다.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상상을 하며 모비는 잠이 오지 않아도 잤다. 반듯하게 누워 침잠하는 자기 육체를 상상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