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문을 닫아줘

슬픔의 바다에서 유영하기 (2)

by 조모비

모비를 괴롭게 하던 아이는 5학년이 됐고, 모비는 3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러나 얄궂게도 둘의 교실이 교재 연구실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었다. 그 아이는 5학년의 첫 반이었고 모비는 3학년 끝반이었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할 때, 교재 연구실에 갈 때, 급식 시간에 그 아이와 마주쳤다. 여전히 검은색 스포츠 기능성 옷을 입고 허벅지와 장딴지가 모비보다 더 굵은, 그리고 매섭고 작은 눈을 가진. 그러나 키는 모비 가슴팍까지 겨우 오는 어린이.

그 아이는 새로 온 남자 선생님의 반이 되었다. 새로 온 선생님은 ‘이 아이가 그렇게 유명했다면서요?’라며 조언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 그저 ‘아, 예.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고생하셨겠어요.’ 할 뿐이었다. 아이는 시간이 지나도 별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래, 네가 작년에도 3월엔 잠잠했지. 모비는 4월을 기다렸다. 5월을 기다렸다. 6월을 기다렸다. 7월 학기가 끝나갔다.


모비는 마음이 묘하게 복잡했다. 그래, 올해 담임선생님 속 안 썩이고 잘 지내니 다행이지 했다가도 올해는 왜 멀쩡하지? 나는 여교사라서 무시했던 거야? 교사로서의 내 자질이 부족했던가?

다시 칼 끝이 모비를 향했다. 여전히 그 아이와 눈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너는 끝났는데 왜 나는 끝내지 못할까.’ 모비는 작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모든 상황이 작년보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슬펐고, 학교는 괴로웠다.


병가는 그때 썼어야 했는데, 이젠 쉴 구실도 없다. 아프니까 위로와 보살핌을 받고 싶은 동시에 1인분을 다 못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저 야위고 생기를 잃고 무기력해졌다.


사실 올해 3월. 모비는 우울증을 거의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죽은 듯이 자면서도 병원과 상담센터를 꼬박꼬박 다녔기 때문이다. 상담, 심리, 철학 책들에서 여러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다. 더 이상 모비에게 우울증은 약점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지나치게 배려하지도 않았다. 모비는 이렇게 내 마음대로 살다가 양아치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스스로 조율하여 적정선을 찾게 될 거라는 상담사의 말을 굳게 믿었다.


여기저기에 ‘저 우울증이에요, 하지만 거의 다 나았죠.’ 떠들고 다니던 3월, 장난만 치던 4월, 무례했던 5월, 여기저기서 트러블이 생겼던 6월이 지나면서 모비는 다시 슬퍼졌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시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분이 곧 태도가 되는 나, 너만 보면 기운 빠진다는 소리에 ‘기운이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요 ‘하고 톡 쏘아붙이는 나, 장난 싫어하는 사람한테 눈치 없이 계속 들이대는 나, ‘선생님은 친절해서 좋아요’라는 소리를 듣지만 거의 동네 이모 같이 느껴지는 나, 전혀 티 나지 않는 일에만 열심인 나, 결과를 그럴싸하게 꾸밀 수 없는 나, 덜 솔직할 수 없는 나, 혼자 고립되지 못하는 나, 그렇다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나.


작년의 문 틈 사이로 음울한 스모그가 새어 나오는 듯했다.


‘이제 문을 제대로 닫고 잠가야 해! 그때 생긴 슬픔이 시시때때로 나를 덮치지 못하도록. ‘


사람들은 복기하지 말라고, 반추하지 말라고,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모비는 원래 슬픔을 되새김질하고 씹고 또 씹어서 삼켜버리는 사람이다. 마음이 하얗고 보드라운 피부 같아서 생채기가 잘 났고 좀처럼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모비는 고요하게 슬픔을 씹고 멀리멀리 깊이깊이 뱉을 생각으로 작년 기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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