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밑줄을 긋는 위로

슬픔의 바다에서 유영하기 (3)

by 조모비


모비.

네가 준 작년 기록을 어젯밤 단숨에 읽었어. 너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해 달라고 했지.

일단 나는 네 글을 읽으면서 참 슬프더라. 너무 자세한 글이라 영화 한 편 본 것 같더라고. 그 학생의 언행과 행동, 너의 지도 내용, 학부모와의 상담 내용. 사건 발생 후 회상하며 적었을 텐데 그렇게 자세하다는 건 그만큼 너에게 강렬한 사건들이었단 얘기겠지? 한편으론 네가 그 글을 쓰며 많이 울지는 않았을까..? 그 과정 자체가 스스로에게 2차 가해였겠다 싶더군.


두 번의 골든타임이 있었다고 생각해. 이미 3, 4월에 교내를 여러 번 이탈했을 때 학업중단숙려제를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생활교육위원회가 아니라 교권침해로 신고했어야지. 그래 알아,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거. 언제든 우린 아동학대 고소를 당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교보위였다면 그 학생으로부터 네가 분리될 수 있었을 거야. 그리고 너는 병가를 썼어야 해.


모비 너는 지나치게 이타적이었어. 문제 학생에게도, 나머지 반 아이들에게도, 심지어 동료 교사들한테까지. 너를 위한 선택은 어딨었던거야! 어떻게 이런 시간들을 겪으면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한 거지? 네가 무슨 신인 줄 알아? 너무 미워서 사랑해버리고 싶었다니 말도 안 돼. 너는 전지전능하지 않잖아. 앞으로는 좀 더 이기적인 선택을 하도록 해. 네가 없어도 학교는 돌아간다고 몇 번을 말해.


아, 화내는 건 아니야. 애썼다, 모비.


네가 물었지. 정말 객관적으로 힘들 만할 일이었냐고. 고통은 비교할 수 없다고 했잖아. 다 자기 손끝에 걸린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야. 그래도 다시 물으니 말하는데 나라면 못 견뎠을 거야. 대단해. 잘 버텼어.

화가 났을 때 학교에서 산책하라느니, 잘못할 때마다 그에 응당한 불이익을 받아서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느니, 학교 현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의사야. 하필 병원을 겨울 방학 끝나고 바꿨으니 네가 종업식까지 고생했다.


지금 그 학생이 멀쩡한 건 아주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겠지. 바뀐 약, 새로운 학급 구성 등. 그래도 네가 1년간 쏟아부은 애정이 크지, 지금 담임의 공이 전부가 아니야. 네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게 아니란 뜻이야.


내가 작년에 졸업시킨 아이들 중엔 여전히 잘 지내거나 여전히 문제인 아이들도 있지만, 1년 사이에 반대로 변한 아이들도 꽤 있더라고. 우리 영역이 아닌 거야. 아이들은 자라나니까.


난 사실 날 힘들게 하는 학생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그리고 몰입할 다른 일들을 찾지. 내가 선택한 방법이야. 지금 내가 행복해야 그 에너지를 다른 친구들에게 많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정답은 없지.


넌 그 학생에게 마지막까지 편지를 써 줬다며. 너 때문에 선생님이 아픈 건 아니라고. 고생했다고.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친구들과 선생님은 널 용서하고 믿는다고. 내 주변에서 너 같은 교사는… 글쎄, 오랜만이다. 근데 모비야. 학교 현장이 바뀌었어.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지켜야 해.


교사 조모비로만 살 거 아니잖아. 교사 1년 할 거 아니잖아. 그래, 네 말대로 교권침해 신고는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가 해줘야지. 아동학대도 교육청이나 학교를 신고하게 해야지. 어떻게 우리 개개인이 안 한 걸 안 했다고 증명하게 됐니.


모비야, 너나 나나 이런 학생들 안 만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장담할 수 없으니까 우리 스스로를 잘 지키자. 업무나 나머지 아이들 때문에 병가를 못 쓴다는 건 말도 안 돼. 알았지? 아휴, 한 번에 안 바뀌겠지만 노력하는 거야. 약속해.




모비는 ‘안 그래도 바쁘신데 죄송해요. 혹시 시간 되시면 한 번만 봐주세요’ 라며 드렸던 자기 글에 빽빽하게 메모한 선배의 글씨에 위로를 받았다. 무슨 글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색깔까지 바꿔가며 내 마음에 밑줄을 그어준 것이다.


모비는 이제 작년의 문을 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시간의 마법을 조금 부리면 작년의 문을 꽉 잠글 수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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