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불효 편지

by 조모비

나는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걸 찬성해. 같이 살아봤자 지지고 볶고 더 힘들지 않았을까? 우리 넷다.

그리고 남녀 사이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절대 일방적이지 않은 잘못들이 있었겠지. 나도 J랑 10년 이상 살았으니 그건 이해해.


그런데 나는, 엄마랑 아빠가 그 당시에 우리에게 좀 더 친절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워. 엄마, 아빠도 다 처음이었고, 나보다 어렸다고 말하겠지만, 동생이랑 나는 아무 선택권 없이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났잖아.


이혼하는 건 상관없는데, 엄마 아빠가 왜 헤어져 살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고,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너희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서로 말해줬다면 나는 덜 괴로웠을 것 같아.


아빠가 말하는 엄마는 너무 욕심쟁이라는데, 난 엄마가 좋았고, 게다가 엄마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했어. 엄마가 말하는 아빠는 여자 좋아하고 가정 일은 하나도 안 돕는 나쁜 사람인데 가끔 만나는 아빠는 또 너무 다정하고 좋은 거야. 그래서 너무 혼란스러웠어. 지금도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어.


게다가 아빠는 항상 큰집에 데려가려고 했고, 엄마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해서 명절마다 너무 괴로웠어. 아빠 말 안 들어주면 아빠는 또 삐져서 연락 안 한다 인연 끊는다고 그럴 거고, 엄마 몰래 큰 집 가면 엄마한테 미안하고 배신한 것 같고. 나 큰집 가서 항상 엄마 욕 안 먹이려고 더 밝고 싹싹한 척했어. 엄마 몰래 큰아빠, 할머니 장례식도 오래 있었고. 동생은 엄마 지키고 내가 아빠 뜻 따라준 날도 많았어. 둘 다 만족시키려고 너무 고생했던 것 같아, 나랑 동생이랑. 니네 엄마, 니네 아빠란 소리는 정말이지 너무 듣기 싫었어.


엄마랑 아빠도 힘든 상황에서 나랑 동생 키우느라 고생했겠지. 근데 부모였잖아. 나는 엄마랑 아빠가 하나님도 모르고 우리만 보고 사는데 우리가 엄마아빠 말 안 듣고 실망시키면 엄마 아빠가 자살이라도 할까 봐 항상 말 잘 듣고 대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둘 다 착하고 바르게 자라서 자기 알아서 먹고사는 데 이 정도면 훌륭한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왜 이런 소리냐고? 나 지금 우울증 약 먹어. 말 안 하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나 엄마 아빠 가슴에 못 박을 거야. 그래서 내가 살 거야.


아빠. 내가 아빠라면 엄마한테 고마울 거야. 어쨌든 그 어린 나이에 애 둘 데리고 살았잖아. 이만큼 키워줬잖아. 나랑 동생이 그 어떤 사촌들보다 잘 컸어. 그거 엄마 덕이야.


아빠 인생도 안쓰럽지만 아빠잖아. 아빠가 선택해서 우리 낳았잖아. 더이상 아빠가 연락 끊는다는 협박에 두려워하는 어린애가 아니야. 나도 이제 부모잖아. 연락 끊기면 아쉬운 건 부모라는 거, 나도 알아버렸어. 아빠가 엄마한테 돈을 얼마큼 보태줬는지 모르겠는데, 나 아빠가 사준 집에 살아본 적 없어. 아빠가 처음으로 집을 샀는데 생판 모르는 아줌마랑 같이 살잖아. 그 호강 엄마랑 동생이 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그 아줌마 조금 미워하는 게 뭐가 그렇게 서운해?


내가 우리 딸한테 그 아줌마 욕을 했다고? 아빠, 나 내 딸은 이혼이란 글자도 모르고 살게 하고 싶었어. 근데 그 똑똑한 여우 같은 것이 금세 할머니 할아버지 따로 사는 거 보고 이혼을 배워서 맨날 무서워했어. 자기 부모도 이혼할까 봐. 그런데 내가 그런 딸 앞에서 아줌마 얘기 했겠어? 외할아버지가 웬 다른 여자랑 찍은 사진을 핸드폰에 도배했는데 외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이가 어떻게 호의적이겠어. 딸한테도 안 듣던 싫은 소리, 끔찍히 아끼던 손녀에게 들으니까 서운해?


아빠가 항상 말했지? 교회 다니는 애가 왜 그러냐고. 나 교회 다녀서 아빠 이만큼 봐준 거야. 나 속으로 아빠 용서 많이 했어.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감사하고 공경하려고 나 많이 노력했어. 그런데 아빠는 항상 언제까지 과거만 생각하면서 살 거냐,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러면 되냐 하잖아.


마음이 병들고 나니까 이제 무서운 게 없어. 아빠 미워. 아빠가 나한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일부러 나에게 상처 준 건 아니지만 미안해했으면 좋겠어.


엄마, 나 살 빠진 거 우울증 때문이야. 그러니까 그만 걱정해. 나는 잘 버틸 거야. 나 살고 싶어서 부모 가슴에 못 박아. 용서해 줘.


2025. 5. 7.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며 부모님께 날린 카톡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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