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구멍

슬픔의 바다에서 유영하기 (4)

by 조모비

사실 모비는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을 죽이기엔 스스로가 애틋했다. 그저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모비의 생각은 언어로 구성된다. 매일 마음속으로 수 십 개의 글을 쓴다. 여러 개의 문장으로 신께 묻고 부탁한다. 왜, 어떻게, 살려주세요.

모비는 하루 한 시도 쉬지 않고 자기 안에서 터져 나오는 수십 수백 수 천 개의 언어들을 막고 싶었다. 어떤 문제들은 그만 생각하고 싶었고, 어떤 사람은 그만 떠올리고 싶었고, 어떤 기억은 그만 회상하고 싶었다.


모비는 가만히만 있어도 HP가 닳았다. 매일 피곤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내면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하고 있으므로.


모비가 생각을 멈추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죽은 듯이 잠이 드는 것이었다. 꿈에서 벌어지는 일은 꿈이 깨면 없어지므로 두렵지 않았다. 꿈속에서는 모비는 멋대로 행동했다. 그래도 책임질 일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참다못한 모비는 생각이 솟아 나오는 구멍을 찾아내기로 했다.

몸을 최대한 이완하고

깊은 심호흡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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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는 자기 육체 밖으로 빠져나와 가벼운 무언가가 되었다. 천장 위로 떠올라 편안한 감정으로 잠들어 있는 자기 육체를 본다. 자유롭다. 잠시 머물다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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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비는 모비 속에 있다. 어두운 동굴을 천천히 걷는다. 언어가 터져 나오는 곳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서든 그 구멍을 막을 것이다.


깜깜한 동굴 벽에 수만 개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뒤죽박죽, 크기도 제각각, 겹쳐 있기도 하고 끝맺지 못한 문장도 있다. 익숙한 문장들은 자주 했던 생각들이다. 모비는 자기 마음의 벽을 찬찬히 본다. 노려본다. 동굴 더 깊숙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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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시 39:4-5)

인명재천. 모비는 그만 살고 싶다고 감히 생각하지 않을 것. 삶이 주어졌다면 살아낼 것.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욥 38:25-27)

주인 없는 땅에도, 사람이 가꾸지 않는 곳에도 내리는 비. 신의 자비. 만드시고 돌보시는 분. 그러니 모비도.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8)

모비의 우울증은 그저 고혈압 같은 질병. 꾸준히 잘 관리하면 되는 질병. 고칠 수 있는 질병.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_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롬 3:10, 13-14)

모비나, 너나, 나나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 태어날 때부터 의인은 하나도 없는 것. 그러니 모비는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미워할 필요가 없는 것.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 29:11)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신의 본심은 평안. 모비의 평안. 이미 얻은 평안 위에 또 평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신이 신을 위하여. 모비를. 자기 형상을 닮아서. 신이 먼저 모비를.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_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 시니라(잠 16:7, 9)

원수. 원수까진 아니지. 모비는 그 사람 말고 신을 기쁘게 해야 할 때. 수 천 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도 인생길을 인도하는 것은 모비의 신. 열린 결말을 버틸 것. 그저 그리스도의 양심으로 묵묵하게 걸을 것. 모비는 그저 지음 받은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것.



못난 생각이 마구 솟구치는 구멍마다 모비는 신의 문장을 붙였다.

그리고 가장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는 이 문장을 붙였다.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 (사 49:5)




모비는 반신욕을 하고, 폼롤러로 스트레칭을 한 뒤 맛있는 밥과 약을 먹고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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