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데이비드 브룩스)을 읽고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이라는 책을 읽다가, '두 번째 산'이라는 책 소개를 보고 흥미를 가져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일단 '두 번째 산'이라는 비유가 참신하다. 사람들은 첫 번째 산을 오르다가 이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두 번째 산을 오르게 된다. 첫 번째 산은 나의 커리어, 성공, 개인주의와 연결된 산이다. 부와 명예, 업적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한 번쯤은 허무함을 느끼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오르는 두 번째 산은 소명, 공동체, 헌신과 연결된다. 두 번째 산의 관점으로 직업, 결혼, 교육, 공동체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다양한 단체와 사람을 소개하고 여러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중 조각조각 내 삶에 와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p. 121 (생략) 헨리 나우웬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고통은 깊으며, 이 고통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고통은 또한 오로지 당신에게만 특이한 것인데, 당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어떤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소명은 이 고통을 철저하게 느끼는 것이다. 당신의 상처 부위가 당신의 성인 자아에게 낯선 것으로 남아 있는 한 당신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상처를 입힐 것이다."
'어떤 고통은 오로지 나에게만 특이하게 다가온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누군가는 그냥 넘기지만, 나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다. 그 이유는 그 일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내 경험(상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고통을 피하지 말고 철저하게 느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상처가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해석했다. 지금 내 삶의 가장 큰 고통은 두 아버지다. 너무 힘들어서 작년부터 뵙지 않았다. 연락하지 않으니 더 이상의 고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안전하다. 그러나 죄책감이 따른다. 이러한 고통마저 소명(calling)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통을 철저하게 느껴서 그 상처 위에 딱지가 붙어 더 이상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p. 123
자기 인생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끈기를 가진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성숙하지 않은 태도로 평가하며 보낸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어떤 것에 맞닥뜨리는 순간 즉각 자기 마음을 결정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한 번 어떤 판단을 내려 분류해서 정리해 버리고 나면 더는 복잡한 온갖 요소를 고려하면서 다시 살피려 들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광야는 우리에게 소극적 수용 능력 negative capability, 불확실성 속에 머무는 능력, 성급히 미숙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능력을 가르친다.
나는 무엇이든 마음속으로 정해버려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사람이든 사건이든 명확한 인과 관계가 있거나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것이 복합적이고 시간에 따라 변한다. 나는 불확실성 속에 머무는 능력을 배우는 중이다. 그때 내가 사용하는 주문은 이것. 'Let them. 지켜보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일단 지금 여기에(다른 것에) 집중해 볼까?' (*이 책에서 말하는 광야는 고난과 역경 등을 의미한다.)
p.247
안전한 투자는 어디에도 없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쉽게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라. 그러면 분명 당신의 마음은 괴로움으로 찢어질 것이다.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다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심지어 그 어떤 동물에게도 마음을 주지 마라. 이런저런 취미와 사소한 사치들로 당신의 마음을 꽁꽁 감싸라.
이기심이라는 관 또는 장식함 속에 당신의 마음을 집어넣고 단단히 걸어 잠가라.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안전하고 깜깜하고 움직임도 없고 바람도 없는 그 장식함 속에서 변할 것이다. 그것이 다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깨뜨리거나 꿰뚫거나 또 바로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비극 또는 적어도 비극을 맞이할 위험을 피하기 위한 대안은 이런 지옥살이뿐이다. 천국을 제외하고, 당신이 사랑에 따르는 모든 위험과 동요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지옥이다.(C.S 루이스)
무언가를 사랑하면 정말이지 쉽게 상처받는다. 한 학생을 끝까지 사랑하고 싶었는데 실패했고, 그 상처를 회복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성인 사이에서도 그렇다. 내가 마음을 준 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그 사람이 좋아서 막 다가갔다가 무언의 거절을 느꼈을 때, 나는 금세 쪼그라들었다. 상처받기 싫어서 '그 누구도 많이 사랑하지 말아야지. 먼저 사랑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이 문장을 만났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다치는 일은 절대 없지만 이는 또 다른 지옥이라는 것. 글쎄. 어떡하지?
p.265
H. A. 도프먼 Harvey A. Doriman은 위대한 야구 심리학자이다. 걸작 〈피칭의 정신적 기본기 the Mental ABC's of Piching》에서 그는 산만한 마음의 독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런 유형의 구조화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규율은 자유의 한 형태이다. 게으름과 무기력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로부터의 자유이며, 나약함과 공포 그리고 의심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각 분야의 대가들은 의외로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산다. 자기가 정한 루틴을 지키며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영감이 떠오를 때만 일할 것 같은 예술가들도 정해진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일하고 연습한다. 이러한 자기 규율이 결국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관점이 새롭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로부터 마저 자유롭게 한다니. 자기 자신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자기 일상을 견뎌내는 모든 이들은 특별하고 대단하다. 일상을 견뎌내려면 자신만의 루틴이 있어야 한다. 루틴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삶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잘 정돈해서 나에게 잘 맞는 루틴을 완성하고 싶다.
p.351
결혼 생활을 별문제 없이 잘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각자 더 나은 사람으로 개선되는 것이다. 참을성을 더 기르고, 더 현명해지고,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이 듣고 또 많이 말하고, 또 더 겸손해지는 것이다.
p.363
사랑의 우물이 말라 버렸을 때는 그 우물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된다. 작가 마이크 메이슨도 다음과 같이 썼다. "거리감보다는 친밀감을, 무심함보다는 사귐을, 고립보다는 관계를, 무관심보다는 사랑을, 죽음보다는 생명을 택하는 것이 신중한 선택이다." 하지만 이건 사람이 타고난 성향이 아니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여기에서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이 어떤 건지 나는 안다. 재결단에는 자기 자신을 거스르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인생은 자기 자신을 거슬러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순간들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다른 모든 헌신과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성장시키려고 존재한다.
p. 368
첫 번째 사랑은 샴페인이다. 그러나 결혼한 뒤 싸우고 화해하기를 무수히 반복하고 나면, 어느 순간엔가 두 번째 사랑에 접어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사랑은 첫 번째 사랑에 비해 덜 열정적이긴 하지만 지속력은 한층 더 강하다. 두 번째 사랑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최악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 몇 번이나 용서하고 또 용서받은 사람들, 그리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리란 걸 알기에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비로소 누리는 사랑이다. 당신은 앞으로 이런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것이 당신의 인생이다. 두 번째 사랑은 두 번째 산의 사랑이다.
나의 사랑은 10년이 더 지났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진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주 달래 보지만, 샴페인 같은 첫 번째 사랑이 그립기도 하다. 이때 결혼 생활을 잘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상대가 아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혼이,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려고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우리는 서로의 최악의 모습까지 보았고, 몇 번이고 용서하고 또 용서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함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위안과 자부심으로 이 느슨한 권태와 평안을 잘 보내야겠다.
덧.
이 책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여진다. 일단 번역체가 매끄럽지 않다. 그래도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개인주의, 합리주의, 이성을 강조하는 요즘에 직관적, 영적, 헌신과 공동체 관점을 말한다는 것. 사지 말고 빌려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