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나잇 일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이도우)를 읽고

by 조모비

은섭의 서점 이름은 '굿나잇 책방'이다. 그의 인생 오랜 화두가 '굿나잇'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유도 노래 '밤편지'에서 사랑하는 이의 숙면을 빌었다. 불면의 밤을 보내본 자만이 '잠을 잘 자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깨닫는다. 몸은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새벽에 정신만은 또렷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잘라내지 못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 보았는가. 성경 시편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되어 있는데,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아, 하나님 마저 이제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가' 더욱 탄식했다.


정신과에서 약을 먹기 시작했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저녁 약을 먹고 나면 얼마 안 있어 몽롱한 기분으로 금세 잠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삼키기도 전에 잠이 나를 멀리 데려가 주었다. 살아있는 시간(?)을 줄이려 시도 때도 없이 낮잠을 자던 시절에도 약 덕분에 또다시 밤잠을 잤다. 용량이 많지 않은 수면유도제였지만 나는 간절하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에 내성이 생긴 걸까. 아님 처음부터 플리시보 효과였던 걸까.


오늘 하루 잘 먹고, 잘 자면 그게 좋은 인생이라는 은섭처럼, 나의 요즘 화두는 잘 자고 잘 먹는 1차원적인 안전이다. 스스로 잠들기 시작한 요즘 나는 너무 뿌듯하고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혼자서도 잠들 수 있다니. 잠은 '자는 것'이 아니라 '드는 것'에 가까워서 실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고, 이제야 잠의 선택을 받은 느낌이다. 아, 물론 수면의 질이 좋지는 않다.


원래도 꿈을 많이 꿨지만 한 달째 악몽에 가까운 꿈을 더 많이 꾼다. 잠자는 동안 내가 하는 생각이 아침까지 기억날 때도 많다. 그래도 새벽의 시간이 1분씩 지나가지 않고 몇 시간씩 사라져 준 것에 대해 나는 안도한다. 약을 중단하면서 카페인도 함께 끊었다. 그만큼 다시 와준 잠이 소중하다. 잠에서 깼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아서 좋다.


요즘은 잘 자는 것뿐 아니라 잘 먹는다. 체중이 이유 없이 줄어서 건강검진도 받고, 암 환자들이 식욕 올리려고 먹는 약까지 처방받았었는데, 요즘은 잘 먹는다. 너무 잘 먹는다. 줄었던 몸무게가 복구된 것뿐 아니라 증량되었다. (그것을 원치는 않았다.) 엄마까지 내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으니 말 다 한 거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 때문에 식욕이 감소한 거라고 했지만, 난 약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다. 식욕을 잃고 되찾은 시점이 약을 복용하고 멈춘 시기와 같기 때문이다. 밥을 앞에 두고도 수저를 들기 실었던 시간을 경험했기 때문에 식욕마저 반갑다. 모든 게 맛있다. 살이 쪄서 그런지 힘도 나고, 덜 춥다. 퇴근하자마자 자던 낮잠도 거의 안 자고, 직장 휴게실에서 매일 누워있던 것도 없어졌다. 체중이 느는 것은 싫지만, 이번 겨울은 눈감아 주기로 한다.


하루하루 정말 조심스럽게 산다. 나를 아끼고 살펴준다. 출근할 때 클래식 FM을 듣다가 차가 막히면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바꿔준다. 오전 디카페인 한 잔 이외는 절제한다. 너무 많이 먹는 날은 걷게 한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퇴근해서 좋아하는 드라마 한 편과 초코를 먹게 한다. 누워서 휴대폰을 많이 하지 않도록 재미있는 소설책을 머리맡에 둔다. 가기 싫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운동을 간다. 비올라 레슨을 다시 시작했다. 비싸도 예쁜 숙소를 예약한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글을 쓴다. 사랑하는 이와 퇴근길에 통화를 한다. 책을 교환한다. 나를 괴롭게 하는 이에게는 내 눈길과 마음과 생각과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덜 좋아하기로 한다. Let them. '내버려 둬.'를 되새긴다.


나를 아껴서 만든 이 평안과 사랑으로

나는 '너'를 사랑할 것이다. 모두 모두 잘 자요. 굿나잇.




덧.

동명의 드라마를 먼저 봤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예쁜 드라마였다. 배우 서강준이 은섭을 연기했다. 책을 읽으며 서강준을 떠올리니 즐거웠다. 현실 은섭이는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겠지? 드라마와 책에서의 은섭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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