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9. 두 달치 약을 모두 먹었다. 병원을 다시 방문해서 처방을 받아야 하지만, 일단 복용을 중단해 보기로 한다.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 아파서 약을 먹는지, 약을 먹으니까 아픈 건지 궁금해서. 둘째, 병원 진료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서. 일단 일주일만 안 먹고 지켜보기로.
2025. 11. 20. 저녁 약 없이도 잠이 들었다.
2025. 11. 21. 6:30 기상 후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2025. 11. 22. 새벽 3:30분까지 잠들지 못했다. 그 이후 선잠을 자다가 다음 날 새벽에 한 시간 단위로 깼다.
2025. 11. 23. 퇴근 후 19-21시쯤 깊은 잠을 잤다. 역시 잠에서 깨면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22시에 겨우 잠들었는데 가족들 소리에 깨서 너무 화가 났다.
2025. 11. 24. 아주 얕은 잠을 자다가 새벽 1:30분에 다시 깨버렸다. 계속 잠 못 들다가 3:30 이후부터는 잠들었다가 깨는 것을 반복. 아침 7:00 깸. 가슴 두근거림. 오한. 약한 이명. 입을 닫아야겠다. 감정 조절이 어렵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하루가 길다. 이젠 잠을 못 자니 더 길다. 약을 먹을 땐 낮잠을 자도 밤에 잠을 잘 잤다. 버티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다. 하루가 너무 길다. 병원에 가서 다시 약을 받고 싶다.
2025. 11. 25. 새벽에 땀을 흠뻑 흘렸다가 젖은 옷 때문에 추워서 깬다. 그래도 통잠을 좀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슴 두근거림이 없었는데 출근 후에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버티는 중이다. 그러다가 오후에 갑자기 정신과 기분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1년 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브레인포그라는 말처럼 뇌에서 안개가 걷힌 기분. 나는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 정신으로 업무를 하고 보고서를 썼다니. 참으로 나에겐 최선이었다. 그러나 기운이 없다. 이번 연말 업무는 안 밀리고 빨리 해야지.
2025. 11. 30. 여전히 밤 중에 한 번씩 땀을 흠뻑 흘리고 옷이 젖어 약한 한기에 깬다. 꿈은 어지럽지만 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한다. 금요일에 중요한 시험이 있었는데, 예전만큼 잘 준비하지 못했다. 주말을 잘 보내는 것이 더 어렵다. 햇볕을 많이 쐬고 바깥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배가 고프다는 것이 약간 수치스럽다. 끝없이 소비한다. 그러나 소비는 진정한 기쁨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생산할 힘이 없다. 이렇게 기운 없는 글 빼고는.
금요일까지만 해도 금단 증상을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회로가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꼭 해야 하는 일 말고는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또 다른 내가 '그렇게까지 자책할 필요 있나.' 하며 브레이크를 건다. 이런 나도 그냥 이해해 보기로 한다.
2025. 12. 1. 잠을 자기 위해 카페인을 끊기로 했다. 매일 아침 라테로 시작한 지가 몇 년째 더라. 아침을 탄수화물로 챙겨 먹고 음료는 우유나 물로 대체했다. 라테가 너무 그리우면 디카페인으로 마신다. 카페인 금단 현상도 만만치 않다던데, 이왕 하는 거 카페인 금단 현상으로 나를 속여볼 생각이다.
2025. 12. 6. 1년 만에 가족들과 나들이를 갔다.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서 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게으르고 이기적인 게 아니었어. 정말 아팠던 거야.
2025. 12. 11. 한동안 아주 잘 자다가 어제부터 잠을 못 자는 중. 반각성 상태로 선잠을 자다가 아침에야 잠이 드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괜찮아. 퇴근하고 잠들 땐 알람 맞추고 30분만 자기. 햇볕 많이 보기. 디카페인도 너무 많이 마시지 않기. 자기 전에 미디어 사용 줄이기. 할 수 있다!
2025. 12. 12. 잠을 자면서도 생각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잠이 깨서도 기억한다.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모를 만큼 각성상태의 잠을 자는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잠이 깨고 나서 가슴 두근거림이 사라졌고, 한밤중에 식은땀 흘리는 것이 없어졌다. 꿈을 꾸는 날에는 대부분 악몽이다. 꿈의 플롯은 대체로 이렇다. 내가 나쁜 행동을 해서 이를 무마한다. 다 해결된 줄 알았다고 방심할 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내 잘못을 들춰낸다. 나는 다시 수습한다. 그리고 다시 안도할 때쯤 다른 사람이 나를 고발한다. 또는 범죄 현장, 또는 소외받는 꿈. 꿈자리가 항상 어지럽지만 그래도 잠을 잔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고, 일어나면 꿈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025. 12. 13. 아침에 일어나 뒷산에 다녀왔다. 1년 내내 거절했던 식사 약속도 응했다. 비올라 레슨을 다시 시작했다. 이전에 너무 귀찮고 하기 싫어서 힘들었던 일들을 별 고민 없이 할 수 있게 됐다. 제일 먼저는 씻는 것. 그동안 씻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인간으로서의 내 존엄성'까지 들먹이며 욕실로 가야 했다. 돌아보면 '무기력'과 싸운 1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병을 우울증이 아니라 '무기력증'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 했던 모든 것들에 큰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니, 나는 아픈 게 아니라 원래 게으른 건 아닐까 자책이 들었었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정말 아팠다. 일상을 보내는 게 예전만큼 괴롭지 않아서 감사하다.
2025. 12. 14. 원장님께 마음대로 약을 끊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약 없이도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약을 먹으면서 시작된 식욕부진 때문에 갑자기 체중이 많이 줄어서 건강검진도 받고, 암환자들이 먹는다는 식욕 돋우는 약도 먹었었는데, 약을 끊고 식욕이 되살아났다. 체중이 원래대로 복귀한 것을 넘어 증량되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니 1년 만에 요리도 한다.
2025. 12. 20. 위기다. 그동안 놀라울 만큼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게 지냈는데 다시 기분이 가라앉고 짜증스럽다. 단약 후 첫 PMS다. 그래도 예정일 7일 전부터 이러는 건 너무하다. 호르몬의 노예인 내가 싫다. 뭐 이리 예민하고 까다로운지 스스로가 질린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좀 이해해 주기로 한다. 이것은 내 성질머리가 고약한 것이 아니라 호르몬의 농간일 뿐이라고 여기며 모든 것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버티기로 한다. 특히 가족들에게 버럭 화내지 않기 위해 입 닫고, 눈을 감는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2025. 1. 1. 곤두박질치던 감정이 다시 반등하였으나 여전히 마음이 가볍지 않은 것은 내 회복과 관련되어 있다. 스스로가 불능의 상태라고 여겼기 때문에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던 일들이, 이제 다시 고민스러워지는 것이다. 새해 인사를 드리는 일부터가 그렇다. 이제 약을 먹지 않으니 나는 환자가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그들을 더 이상 모른 척해도 되는 면죄부는 없어진 것인가? 수직선 위에 나를 표시한다면 경계선에서 한 칸 이동한 것이지 아주 건강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조금 더 뭉써도 될까? 어떤 일은 쉬워졌지만, 어떤 일은 여전히 버겁다. 불리할 때만 내가 아파서 그렇다고 핑계 대는 것은 아닐까. 명절이 또 돌아온다. 또 도망갈 수는 없겠지. 그러나 마주할 힘도 없다. 그 집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다. 오랜만에 차에 앉아 펑펑 울었다.
2025. 1. 8. 글을 쓰고 싶다. 슬픔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글을 토하듯 썼는데 이젠 어중간하게 슬프니 글도 어중간하니 안 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