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얘. 시아버지한테 싫은 소리 조금 들었다고 아직까지 그러니. 저번 제사랑 추석 때 안 왔으면 된 거 아니니. 그분들이 너네한테 안부전화를 강요하니, 김장 때 불러서 일을 시키니. 그냥 다른 친척들보다 일찍 와서 조금 늦게 가라는데 그게 어렵니. 일은 네 시어머니가 다하는데 네가 힘들게 뭐 있니. 일 년에 딱 두 번 자고 가는 게 그렇게 싫으니. 일찍 올 수 있으면 너네 집에 가서 자고 와도 되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집에 가서 자고 오더니 네 아버님이 그렇게 화내실 줄 누가 알았겠니. 친정이 뭐가 그렇게 멀다고 일찍 가니. 아, 물론 나야 여기가 친정이지만.
네가 시어머니 해라. 시어머니보다 며느리 팔자가 좋구나. 네 시어머니는 무릎 수술해서 다리도 성치 않는데 며느리가 이제 오냐. 그럴 거면 차례랑 제사랑 내년부턴 다 없애버리자. 뭐? 없애면 좋아? 싸가지 없이 네가 집안 전통을 없앤다고 하는구나. 우리끼리야 네가 설거지를 안 하든 늦잠을 자든 상관없지만, 작은 어머니 오시는데 네가 먼저 안 와있으면 이거 다 말 나온다. 나는 내 며느리 다른 사람들이 욕하는 거 싫다. 내가 화장실 가다가 봤는데 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일하는데 너는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이나 만지고 있더라. 그럼 되겠냐.
아이고, 네 아버지가 옆동 사는 아저씨 때문에 그런다. 그 집 며느리가 둘인데 그렇게 잘한다더라. 네 아버지가 그 집 얘기만 듣고 와서 그런다. 안 그래도 내가 그 집은 며느리는 둘이라서 그런다고 한 소리 해놨으니 신경 쓰질 말아라.
모레가 아버지 생신이래. 아니 그냥 그렇다고. 아니, 그냥 난 사실만 전한 것뿐이야. 내가 언제 같이 가자고 그랬어? 못 가면 내가 애들만 데리고 다녀올게. 아니 이게 뭐 배려가 없는 거야. 그냥 나는 사실만 전달한 거고, 그다음에 당신이 ‘나는 좀 가기 힘들 것 같아’ 이러면 얘기해 보려고 했지. 나는 장인어른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 아, 그야, 난 장인어른한테 그렇게 서운한 말 들어 본 적이 없긴 하지. 아니, 내가 언제 그때 그 일 가지고 지금까지 유난이라고 했어. 내가 하지도 않은 말 가지고 넘겨짚지 좀 마.
저번에도 안 갔는데 미운털 박히면 어쩌려고 그래. 그냥 눈 딱 감고 다녀와. 최서방이 평소에 잘하잖아. 그날만 그냥 맞춰줘. 어떡하냐, 너네 시댁이 그런 걸. 진짜 옛날 사고방식이긴 하다. 엄마 친구 딸들은 그전에 식사만 한 번하고 다 자기들끼리 놀러 간다던데. 아직도 작은 어머니랑 고모댁에 명절 선물 너네가 사서 드리니? 당신들이 하셔야지. 여자들은 성묘 잘 안 가던데 거긴 꼭 너랑 애들까지 다 데려가더라, 날도 추운데. 엄마는 이제 음식 안 할 거야. 가서 많이 싸 와.
시간 지나면 다 알아주시는 때가 오더라고요. 그땐 내가 미안했다 하시는 날이 온다니까요? 안 오면 어떡하냐고요? 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할 도리는 다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너무 잘할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가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와요. 점점 나이 드시니까 불쌍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제 그럴 날도 몇 년 안 남았어요. 우리 시어머니도 75세 되시니까 음식 안 하시더라고요. 나도 지난 추석에 다리 다쳐서 절뚝거렸는데 가서 음식 다하고 왔어요. 빈 말이라도 아픈데 쉬라는 사람 하나도 없더라고요. 집에 와서 남편한테 생색냈어요. 안 내면 남자들은 몰라요. 이젠 그래도 말이라도 고생했네, 고맙네. 하더라고요. 집에서 이야기하면 싸우니까 차 한 잔 마시러 근교 나가서 말해봐요. 난 이런 게 힘들더라,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말해야 알지. 일단 가서 지혜롭게 해 봐요.
언니.
힘들면 그냥 가지 마. 마음이 정말 괜찮아질 때 가면 되지. 형부도 괜찮다고 했다며. 솔직히 나는 언니가 너무 성급한 것 같아서 걱정 돼. 약도 마음대로 끊어버린 거잖아. 아직 다 나은 게 아닐 수도 있어.
만약 내가 그 상황이면 언니는 뭐라고 해줄 것 같아? 거봐, 똑같잖아. 그냥 아프다고 해. 거짓말 아니잖아. 마음이 아픈 것도 아픈 거야, 언니.
몰라, 난 언니가 아픈 것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 알았어, 그만 울게. 나는 언니가 행복하면 좋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