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당신 : 부서 동료
조금 과거의 일이다.
다음(DAUM) 아고라에서 야근 부대와 칼퇴근 부대가 격돌한 적이 있었다.
야근을 독려하는 야근 부대, 야근을 반박하는 칼퇴근 부대에 네티즌들이 편을 나눠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진지한 얼굴의 군인 그림에 ‘우리는 무적의 야근 부대이다’, ‘저녁 6시 이후 집에 있는 짓은 우리에겐 사치일 뿐이다’, ‘야근은 내 새끼 밥값이다’ 등의 문구를 합성한 포스터들 또한 눈길을 끌었다.
물론 즉각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부모님 세대의 노력을 야근과 결합시켜 억지 논리를 펴지 말라’, ‘할 일 없이 야근하며 부하직원 감시하는 상사부터 제거하라’ 등 댓글들이 따라붙었다.
이에 힘입어 며칠 뒤 야근 부대를 패러디 한 칼퇴근 부대가 등장했다.
‘칼퇴근.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로 시작하는 칼퇴근 부대는 ‘우리는 연인만을 생각하는 칼퇴근 부대이다’, ‘야근하는 날의 꾀병은 기본이다’, ‘상사의 횡포로부터 당신의 행복을 지켜라’라며 칼퇴근을 지지한다.
“날씨 좋은 주말이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놀아줘야 하는데. 자식들아 미안하다. 아빠는 열심히 일하련다. 용서하고 이해해 다오.”라는 어느 야근부대원의 고백이 떠오른다.
직장과 가정 중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가정이었다.
상사는 “너는 한창 일할 나이”라고, “우리 때는 지금보다 더 했다.”라며 몰아세우고, 일은 밑도 끝도 없이 쏟아진다.
다음은 어느 칼퇴근 부대원의 고백이다.
“오후 6시 퇴근 시간. 상사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한다. 6시 5분쯤 부서장이 개인 용무로 사무실을 나간 직후가 가장 안전하다. 평소 상사의 발자국 소리, 신고 있는 슬리퍼 종류, 이동경로(= 동선) 등을 기억해 둔다. 윗옷은 작게 접어 팔에 걸고 가방을 그 안으로 숨긴다. 겨울철 코트 깃 세우고 가방 어깨에 메고 머플러에 장갑까지 끼고 칼퇴근을 하다가 상사를 마주치면 이건 구속영장도 필요 없는 현행범이다.
문 앞에서 상사를 마주치더라도 당황하지 말 것. 무심한 표정으로 깍듯이 목례를 건네야 퇴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계단 이용은 필수. 엘리베이터에서 상사를 마주치는 건 잔소리할 꼬투리를 넙죽 던져주는 셈이다. 멀리 있는 부서장이라면 눈을 피해 요령껏 퇴근해야겠지만, 팀장급 상사라면 칼퇴근을 나의 '업무 신조'로 승화해 협조와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오래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야근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업무 집중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소한 5시 30분엔 모든 일을 마쳐야 한다. 퇴근 시간을 5시로 생각하고 일을 서두른다. 보고서를 5시에 제출하고 야근 안 할 생각이라면 ‘도둑놈’ 심보이며, 칼퇴근 부대원 자격이 없다. 깔끔한 일 처리로 하는 일마다 인정받으면 칼퇴근이 아니라 상습 조퇴라도 이해해 줄 상사가 많다.”
우리 사회는 야근하는 직원을 절대로 야단치지 않는다.
인사고과에 좋은 평가를 내린다.
오히려 업무를 끝내고 정시에 퇴근하는 부서원을 욕한다.
남들 야근하는데 혼자 일찍 간다고.
빨리 업무를 끝내고 회사에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유능한 칼퇴근 부대원을 욕해서는 안 된다.
업무 생산성을 높인 그를 칭찬하지 못할망정 비판하면 잘못된 것이다.
다만 인간미(人間美)를 보여야 한다.
아무리 동료마다 업무가 달라 서로 관여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가끔 주위를 둘러보고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도와줄 것이 있는지를 물어보라.
물론 자존심 때문에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는 동료들이 있다.
그럼 다음부터 도와주지 않으면 된다.
칼퇴근 부대원의 속성에는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판단력을 이용하여 자기의 도움이 조금이라도 필요한 동료에게 조용히 말해라.
“오늘 기분도 우울한데, 일을 해야겠다. 내가 도와줄 것이 있냐. 난 술보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더 좋거든.”
얼마나 멋진 말인가.
(Lensgo 이용, Prompt : Office setting at 6 PM, five Korean employees working at their desks with serious expressions, focused on their PC monitors, modern office furniture and soft overhead lighting, a 30-year-old Korean woman holding a handbag, smiling warmly as she stands up to leave, colleagues briefly glancing at her with no words exchanged, realistic depiction of a contemporary Korean office environ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