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해 시작하는 스타트업도 괜찮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다른 선택지에 비해 리스크가 컸고, 큰 자본과 인력,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스타트업이라는 표현 대신 벤처기업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창업은 모험적이었고 소수의 창업가들만이 시도했고 그중에서도 운과 타이밍이 맞았던 극소수만이 성공했습니다. 예전에는 안정적인 직업이나 투자 기회가 많았고 은행 예금이나 부동산, 우량 주식에 자금을 묻어두어도 자산을 불릴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벤처에 뛰어들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기업이나 공무원 등 안정적이라 불렸던 직장이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가도 인공지능이나 자동화, 불경기에 의해 자리가 불안정해졌고, 주식이나 부동산, 비트코인 등의 투자 기회도 경기나 유행에 따라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영업은 폐업률이 90%에 달하고 프리랜서나 배송/운수 직종도 경쟁이 치열해져 급여가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등 이제는 성공은커녕 생존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정적이었던 선택지들이 불안정해지면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덜 모험적인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부동산/주식 투자를 하거나 자영업을 시작하는 데에 대출 외에는 국가에서 별다른 금전적인 도움을 주지 않지만, 스타트업을 한다고 하면 창업지원금을 반환 조건 없이 제공하거나 TIPS나 정책자금, R&D 자금 등을 집행하기 때문에 이런 정책들을 잘 활용한다면 성공을 위한 다른 도전들에 비해 리스크가 크게 낮아집니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스타트업의 투자유치 규모나 인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창업가들이 큰 규모의 비즈니스를 꿈꾸며 투자유치와 급격한 성장을 전제로 한 사업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반대로 사업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전문성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잠재적 창업가임에도 스스로의 비전이나 만들고자 하는 플랫폼의 시장 규모가 작다고 생각해 도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자마자 자본을 투입하여 급성장하는 것보다는 초반에는 작게 시작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증명하고 작게나마 현금 흐름을 만들면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며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대형 스타트업들도 외형 확장 대신 이익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고 수익모델이 미비하거나 비용을 개선하지 않으면 추가 투자유치가 어려워지는 등 급격한 성장보다는 견실한 이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투자 유치 스킬이나 마케팅을 통한 급격한 성장이 아니라 비용과 이익을 계산하는 날카로움이고 전문성으로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집요함입니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공기업들까지 이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그리고 생존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 성공한 배달의 민족이나 엄청나게 큰 기업인 네이버, 삼성전자 등도 내부에서는 항상 ‘생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제로 생존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성장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성장을 고민하다 보니 더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이 쓴 ‘초격차’와 네이버 이해진 의장의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창업가의 비전이 꼭 세상을 바꾸거나 산업을 혁신시키거나 유니콘이 되거나 몇 년 내에 IPO를 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평생직장생활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꼭 해보고 죽자라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이 일을 하는 것보다 나 혼자 하는 것이 낫겠는데 싶어서 독립할 수도 있고, 취업 전선보다는 창업 전선에 뛰어든 대학생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유명한 많은 스타트업들의 창업가들도 학생이었고 직장인이었고 사업을 시작할 때는 내가 벌던 월급보다 많이 벌 수 있을까 몇 년은 버틸 수 있을까 굶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가, 이런 생존에 대한 걱정으로 단단하게 만든 사업모델을 바탕으로 사업이 커지고 나서 회사 임직원과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을 만들고 서로 오해하지 않도록 문화를 만들고 비전과 문화를 해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들고 채용과 브랜딩을 위해 멋진 스토리를 만듭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의 시작이 처음에는 시시했음에도 나중에 볼 때는 ‘도원의 결의’ 같은 역사적인 순간으로 포장이 되어서, 감히 평범한 내가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기 적합한 전문성과 사회적인 인맥, 통찰을 갖춘 분들이 더 많이 도전하지 않고, 오히려 약간은 엉성하고 준비가 덜 되었는데 마구마구 질러서 기회를 잡고 자리를 잡는 창업가들도 있습니다. 실행력도 스타트업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긴 하지만 신중한 스타일의 잠재적 창업가들이 실행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너무 겸손해서 실행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는 벤처캐피털과 같은 자본 투자가의 요구사항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투자사들의 투자 관점에서 보면 몇 년 내에 엑시트 할 수 있는 명확한 계획이 있어야 하거나 스타트업이 노리는 시장의 규모가 수천 억 이상이어야 한다던가, 처음부터 해외 진출 계획과 역량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던가 성장률이 매 분기 몇 % 이상이어야 한다던가 하는 투자자로서의 입맛에 맞는 요구사항이 존재합니다.
투자 유치를 전제하고 투자자의 요구사항을 사전부터 고려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안정적으로 시작하고 생존을 하기 위해서 집중해야 할 것은 자본과 투자가 아니라 제품과 매출입니다. 특히나 초반에는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제품을 마련하고 나의 인건비를 벌 수 있는 최소한의 현금 흐름을 목표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생존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매출과 수익으로 만들어지면, 한 두 명을 더 채용해서 내가 하던 일을 위임하고 전문화하고, 5명 ~ 10명을 더 채용해서 체계를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나가고, 20명 ~ 50명을 채용해서 문화를 만들고 비전을 만들고 그 이상의 성장에도 대비해나가는 점진적인 성장의 단계를 그냥 생존 차원에서 해내다 보면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되기도 하고 투자받지 않아도 성장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1인 기업에서 어떻게 규모를 확장해나가는지에 대해 ‘사업의 철학’이라는 책이 도움을 줍니다.
창업가들이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있는데, 10년 전에는 스타트업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배워가면서 사업을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 분야에 이미 유사한 서비스가 출시된 경우가 많고 내가 최초로 출시했다 하더라도 나보다 이 분야를 잘 아는 팀에게 금방 따라 잡힐 수 있는 시대입니다.
자신이 몸담았던 분야나 오랫동안 고민했던 산업의 문제를 푸는 것이 초반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합니다. 예를 들면, 학생 창업가라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티나 콘텐츠, 유틸리티 서비스를, 한 직군에서 오래 근무한 창업가라면 해당 직군의 구인구직 서비스나 용역 서비스, 정보 공유나 교육, 커뮤니티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고객사 중 수의사 펫시터를 반려동물 보호자와 연결해주는 ‘펫트너’의 경우 고객사 대표님이 수의사이면서도 반려동물 보호자였습니다. 또 다른 고객사인 ‘싸커비’는 축구 경기 분석 서비스인데 창업하신 대표님이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경기 과정과 결과를 디테일하게 분석해보고자 하는 본인의 필요에 의해 창업하셨습니다. 온라인 피트니스 서비스인 ‘리트니스’는 대표님이 피트니스 트레이너이시고 특허법인 고객사에서 특허 등록 서비스를, 세무법인 고객사에서 종합소득세 신고 서비스를 구상하고 저희에게 의뢰를 맡겨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해보고 싶은 사업이 있고 자신이 해당 분야에 전문성도 있는데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만약 리스크가 크지 않다면 찔러나 보고 싶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정부 창업지원사업 중 예비창업가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는 예비창업패키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해보세요.
해당 글은 인썸니아와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