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실적 발표를 보며 느낀 점
애플의 분기 실적이 발표됐다. 시장의 예상치를 가뿐하게 뛰어넘는 실적. 역시 애플… 배가 조금은 아프다. 작년 아주 소량이긴 하지만, 애플 주식도 테슬라 주식도 아닌 삼성전자 주식을 주력으로 매수했기 때문이다. 뭐,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이슈가 터지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주식이 숨 고르기를 하고 있지만(여전히 테슬라는 미친듯이 오르고 있다) 지금이라도 애플 주식을 사두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듣곤 한다.
어쨌든 최근 들어 애플 주가의 고점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작년 말, 애플 시가총액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을 추월하면서 애플 주가와 관련된 고점 논란이 더 관심을 받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애플의 주가 상승이 한동안 계속 이어질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에 동조하는 편이다. 물론 시가총액과 관련해 ‘코스피의 굴욕’처럼 조금 씁쓸해지는 부분도 있고, 또 상승폭이 단기간에 너무 과해서 숨을 고르는 조정기가 올 수도 있다는 의견에 일정 부분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제품과 서비스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즐겨 사용하는 유저로서 현 주가의 수준을 단순히 실적과 시총, 그리고 추세로 판단하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의 애플 주가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향후 전망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현상 이면에 있는 뭔가를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문점을 갖고 애플의 밸류이션에 대한 몇 가지 단상들을 정리해 보았다.
아이폰 외 다른 서비스와 제품들도 엄청난 성장을 했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폰이 애플의 전체 매출 비중 50%를 다시 돌파한 것에 대해 비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애플의 다른 제품들도 엄청나게 잘 팔렸지만 아이폰11은 더더욱 엄청나게 팔려나갔다고 보는 게 아마 정확한 분석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이폰11이 그만큼 많이 팔렸다는 건, 올해 하반기에 출시가 예정되어 있는 새로운 5G 아이폰에 대한 수요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이 생각보다 5G로 넘어갈 생각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아이폰11을 많이 사고 있다라고 해석해 보는 것인데, 이 부분은 오히려 애플에게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5G의 경우 아직 눈에 띄는 연관 콘텐츠와 어플리케이션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결국 핵심은 5G 관련해서 애플이 어떤 콘텐츠와 어플리케이션을 들고 나올 것이냐가 아닌가 싶다. 애플이라면, 아마도 이 부분에서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려고 하지 않을까?
팀쿡이 이름을 팀쿡 프로로 바꾸고 연봉을 두 배로 가져간다는 우스갯소리. 그만큼 애플의 ‘프로’ 라인 전략의 효과는 상당했다. 맥북프로, 아이폰프로, 아이패드프로, 에어팟프로… 이제 또 무엇이 프로로 등장할 것인가? 애플워치? 어쨌든, 애플의 이런 전략은 풍선을 커지게 하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 풍선 안을 꽉 채우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초기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전혀 새로운 개념의 제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소비하게 만들겠다는 것. 그것이 애플의 의도라면, 올해 상반기 예정된 아이폰SE2의 역할이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고가 수준의 프로라인이 먹힌 것처럼, 중저가 수준의 SE2가 기존의 중저가 시장에서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아마도 팀쿡은 팀쿡SE로 세 배의 연봉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애플의 가장 무서운 점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애플의 마케팅 팀이 되어가고 있는 것. 극단적으로 예를 들면, 테크 유튜버들이 가장 즐겨 업로드하고,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영상은 바로 애플 제품 관련 영상들이 아닐까? 수많은 유튜버들이 자발적으로 그것도 자신의 돈을 들여 애플의 제품을 구매하고 언박싱하며 애플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월급은 구글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구글뿐만이 아니다. 네이버의 경우 가장 비싼 메인 배너 광고에 등장하는 광고들을 보면 이게 영어 프로그램 관련 광고인지, 아니면 아이패드 광고인지 모를 때가 많다.
유수의 기업들이 가장 비싼 광고 영역에 스스럼없이 애플의 제품들을 자발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예산으로 광고비를 집행하면서 말이다. 네이버의 메인 배너가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광고 배너의 상황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온라인상에서 보여지는 이벤트 배너나 페이지가 대부분 애플과 스타벅스의 마케팅 페이지라고 하면 그건 너무 과장일까? 어쨌든 이쯤 되면, 애플은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의 마케팅 부서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외주로 쓰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에어팟은 무선 이어폰 아니 이어폰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 초기에는 시장의 비아냥을 들었지만, 에어팟은 이어폰 시장 자체를 무선 이어폰 중심으로 재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에어팟이 하나의 제품으로 게임 체인저가 된 것처럼, 애플 역시 브랜드로서 게임 체인저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애플이 되고 싶은 게임 체인저는 어떤 것일까?
애플은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쓰는 것을 일종의 언어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일종의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애플이라는 언어를 통해 라이프스타일의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이제는 코딩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입니다”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이제는 애플의 생태계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입니다”를 만드는 것이 애플이 브랜드로서 생각하는 게임 체인저의 모습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의 애플 제품들이 앞으로 어떤 생태계를 이루며 진화해 나갈지… 또 하나 관전의 포인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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