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여름을 강타했던 영화 엑시트를 기억하시나요? 주인공 용남의 가족들은 칠순 잔칫날 갑작스레 닥친 전대미문의 유독가스 테러에 건물 옥상으로 내쫓깁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스는 조금씩 차오르고, 이제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구조헬기뿐. 그들은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구조 헬기를 붙잡으려 애를 씁니다.
지금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상황은 이러한 영화 속 위급상황 못지않습니다. 겉보기엔 온라인 쇼핑 시장은 참 좋아 보입니다. 작년 11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전년 대비 무려 17.2% 성장한 15조 원, 모바일 쇼핑만 따로 봐도 10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둘 다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실적이었죠.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있죠? 주요 플레이어들 중 시장 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는 극히 소수이고요. 그 소수의 회사들 중 대다수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킨게임에서 탈락한 곳은 엄청난 빚더미에 오를 것이 분명하죠.
그래서 이들도 대부분 영화 속 주인공처럼 탈출을 꿈꿉니다. 투자자들은 매각을 통해 돈을 회수하고 싶어 하고요. 한편에는 상장을 통해 신규 자금을 유치하고, 최후의 승자가 되어, 한국판 아마존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연초부터 굵직한 매각, 상장설이 여럿 터져 나왔습니다.
먼저 주목받고 있는 곳은 이베이 코리아입니다. 지난 1월 5일 이베이 코리아 매각설이 또 기사화되었기 때문인데요. 왜 “또”냐고요. 이미 오래전부터 이베이 코리아 매각에 관련된 소문은 무성했습니다. 소문에는 그럴듯한 근거도 있었습니다. 한 때는 이커머스 시장 1위 기업이었던 이베이 코리아지만, 쿠팡과 네이버에 밀린 지 오래. 물론 1등 자리에서 밀려났을 뿐. 몇 안 되는 흑자 이커머스 기업인 데다가 거래액도 꾸준히 성장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래액 성장은 시장 성장률 평균보다 낮아서, 실질적으론 역성장이었고, 영업이익도 재작년 반등하긴 했지만, 수년간 축소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사는 대규모 투자는커녕, 2016년 이후 대략 7,000억 원 정도의 자금을 회수해갔지요. 그래서 2018년부터 매각설이 돌았고요, 여러 국내 대기업들과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소문도 이전처럼 그저 설로 끝날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제 진짜 제 값을 주고 팔 수 있는 기한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죠. 물 밑에서는 아마 바쁘게 매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걸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월 7일, 이번에는 쿠팡 상장설이 등장했습니다. 올해 2분기 미국에서 상장을 추진한다는 꽤나 구체적인 이야기였는데요. 앞서 언급한 이베이 코리아와 달리, 진짜 잘 나가는 쿠팡이지만 그들도 고민이 많습니다. 재작년까지 쿠팡의 누적 적자액은 3조 7천억 원 수준. 2019년 7천억 원 대로 적자를 줄이긴 했지만, 작년에도 흑자 전환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쿠팡의 누적 적자액은 이제 4조 원을 훌쩍 넘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 쿠팡이 유치한 투자 총액인 3조 4천억 원을 가볍게 넘겨 버리는 거죠. 이는 곧 쿠팡에게는 시한부 선고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상장 혹은 추가적인 대규모 투자 유치가 아니고선, 쿠팡이 올해를 넘기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쿠팡은 매우 오래전부터 상장을 추진해왔고요. 이미 작년 8월 뉴욕에서 현지 기관들을 상대로 기업 설명회까지 진행했을 정도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의 탈출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이베이 코리아의 경우, 그동안 계속 매각 소식을 부인해왔지만, 오히려 팔려는 의지는 있지만 적절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에 가까워 보입니다. 우선 미국 본사가 아마존에 치이고, 쇼피파이에 밀려 어려운 상황이고요. 한국 시장은 성장성은 낮은데 경쟁강도는 무지막지하기 때문에 매각 자금으로 차라리 신흥시장에 투자하고플 겁니다. 그래서 매각 의사는 충만한 상황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베이 코리아 매각이 계속 설로 끝난 이유가 있겠지요? 우선 지금 얘기되는 금액이 5조 원일 정도로 덩치가 너무 큽니다. 따라서 살만한 기업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장 유력한 후보인 국내 유통 대기업들은 코로나 후유증을 앓고 있고요. SK는 아마존과의 동맹을 택했습니다. 여기에 얼마 전 공정위의 요기요 매각 결정이라는 대규모 악재도 터졌지요. 이를 본 네이버는 독점 이슈 등에 얽히기 싫어할 것이고요. 이미 2조 원 규모의 요기요가 급매로 나온 상황에서 시장이 이베이까지 소화할지는 미지수로 보이네요. 그나마 돈도 있고, 커머스 점유율도 낮은 카카오가 가능성이 있는 상황인데, 그동안의 커머스를 향한 카카오의 남다른 행보를 볼 때 애매한 상황입니다.
반면 쿠팡은 이베이 보다는 확실히 나은 상황입니다. 환경은 나쁘지 않고, 스스로 얼마나 잘하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코로나 19로 인해 경제가 침체된 상황은 지속되고 있지만, 실물시장에 비해 투자심리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증시는 호황인데요. 국가가 푼 지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쿠팡의 적자규모가 크다고 하나, 나스닥은 성장성만 보장된다면 상장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고요. 특히 에어비엔비, 도어대시 등이 연이어 성공적으로 IPO를 마무리했다는 것은 쿠팡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그리고 1월 11일 마침내 쿠팡이 나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상장으로 가는 9부 능선을 넘은 셈입니다.
다만 쿠팡의 IPO 성공 유무는 올해 4월 예정된 실적 발표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적이 예상보다 더 좋다면 아마 상장은 엄청난 탄력을 받을 겁니다. 다만 적자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면, 비록 상장을 하더라도, 좋은 가치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요. 쿠팡이 기대하는 기업 가치는 400억 달러.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250~300억 달러와는 꽤나 차이가 나지요. 결국 이 격차가 얼마나 좁혀지느냐가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겠네요. 작년 공격적인 쿠팡이츠의 확장과 쿠팡플레이 등의 신사업 론칭이 자신감의 발호인지, 아니면 적자를 감추기 위한 고육지책 일지, 4월이 기다려지네요.
김요한님이 뉴스레터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