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사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가라는 제도가 없던 적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상·하위로 나누어진 사회 구조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향으로 이동하려는 욕망에 부합하려면 그에 맞는 평가 기준이 존재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였을 것입니다.
한반도 이 땅에서도 역사서에 근간해 보면 물론 그때는 기업이라는 것보다는 관료들의 역사가 정사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보니 고려 시대의 고과법(考課法), 조선 시대의 고과법과 포폄법(褒貶法)이라는 것이 존재하더군요. 지금의 평가 기준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단어가 쉽지는 않지만 포폄법에서 ‘포’는 포상을 의미하고 ‘폄’은 폄하를 의미합니다. 고과법과 차이는, ‘고과’는 관리들의 일반 근무 동향–근무 시간/일수 준수, 기본 업무 실적, 범죄 유무 등-을 파악하는 종합 기록 제도로써 인사 관리 기본 자료로 활용하고, ‘포폄’은 직속 상관에 의한 근무 성적 평가 제도로 상벌 목적 위주로 활용했습니다. 평가는 일 년에 두 번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직속 상관의 근무 성적 평가 제도가 주관적일 수 있기에 공정성 문제가 있기는 했다지만, 퇴출이나 파직과 같은 현재의 공무원 사회보다는 강력한 성과 관리 체계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500년 전의 프로세스이고 그 당시 계급이 존재했던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과는 많이 다른 평가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가 기준이라는 것이 명확히 존재했고, 결과에 따른 조치가 매우 세분되어 있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최근에 새로운 유행어처럼 번지는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텔의 전설적인 경영자인 앤디 그로브가 처음 개념화하고, 그 보완된 개념은 Google이라는 혁신적인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성능 평가 방법입니다. OKR을 가장 쉽지만 표면적으로 설명하자면
1. 상위목표(Objectives)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하위 목표(Key Results)로 두고 계층화해 성능을 추적하는 방법입니다.
2. 또한 위에서 목표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 사원들이 직접 중요 결과를 세팅할 수 있도록 하고,
3. 그 중요 결과는 매우 도전적으로 목표치 설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 들으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기업에서 경험해온 KPI 세팅이나 MBO 관리와는 무엇과 다를까,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당연히 많으시겠죠? 저 역시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OKR를 접했을 때 들었던 의문입니다. 경영의 신이라고 했던 피터 드러커의 경영 철학에서 시작한 개념의 MBO가 SMART 목표와 만나면서 KPI로 성장했는데, 그럼 그 방법이 틀렸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서로 간에 중복될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두 개념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도 KPI와 OKR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K’(Key)라는 공통 단어에 집중하면 조금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두 개념이 다르기는 하지만 각자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는 것입니다. OKR이 Results, 즉 가장 중요한 결과에 집중하자는 개념이라면, KPI는 indicator, index와 같은 표식에 집중하자는 것이겠죠. 그래서 오늘은 이 차이점을 좀 설명하고 이해를 도울까 합니다.
핵심 성과 지표인 KPI는 기업, 개인, 프로그램, 프로젝트, 특정 작업 등 추적하고자 하는 어떤 대상을 일정 단위의 시간 경과에 따른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데 사용됩니다. 일부 특이한 경우와 값이 생길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지표는 처음 설정할 때 다음의 3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목표치와 비교해 반드시 측정 가능(measurable)해야 합니다.
동원 가능한 자원(비용, 인력, 시간)을 어디에 집중(concentrate)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기업 전체나 조직의 큰 전략 목표(strategies)에 상·하위 연결성(hierarchical link)을 가져야 합니다.
핵심성과지표는 무조건 측정 가능한 KPI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 측정은 감시를 위한 평가의 자료가 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위치와 능력치를 검증하는 데 더욱 필요합니다. 이 개념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명언이 바로 피터 드러커의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될 수 없다’라는 표현입니다.
상대적으로 수치화 하기 쉬운 정량적(Quantitative) 값을 부가하면 비즈니스 컨텍스트-현재 상황에 비추어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제공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측정 대상 목표와 성능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가 나빴는가를 표현이나 서사로 해야 하는 정성적(Qualitative) KPI 생성은 가능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데이터에 대한 혼란과 주관적인 해석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권장하지 않습니다.(정량적 분석과 정성적 분석의 차이점에 관한 설명은 이곳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모든 업종에 걸쳐 KPI의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KPI는 기업이 진행 상황을 평가하고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정량적/수량적 척도입니다. 부서별로, 업종별로 KPI를 분류할 수 있으며 각각의 특성을 담을 수 있습니다.
IT 부서: 매월 평균 매출, 고객 유지 또는 이탈, 티켓 해결 시간, MAU, DAU
리테일: 평방 미터 당 매출, 매장별 매출, 직원별 매출
HR: 채용률, 이직률, 직원 실적, 평균 근무 기간, 성별 진급률
세일즈 부서: 고객 가치, 매출, 분기별 파이프라인
KPI의 목적은 측정 가능해야 하므로 절대 모호한 값을 설정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KPI를 목표에 묶어 제공하고 비교가 될 만한 표준 목표치(예: 업계 평균, 연도별 성장 등)와 비교합니다. KPI는 일반적으로 탑-다운으로 진행되는 방법이기에, 경영 리더들이 검토한 후 조직의 모든 성과 지표가 선택적으로 사용됩니다. 즉 전략적 차원에서 기업에 가장 큰 영향과 가치가 있는 지표만 추적하고 측정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OKR은 목표 및 핵심 결과의 약자로, 보다 구체적으로 목표는 주요 핵심 결과와 직접 연결됩니다. OKR은 전략적 프레임워크인 반면, KPI는 프레임워크 내에 존재하는 측정입니다.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해 주는 간단한 그림을 아래와 같이 추가해 봅니다.
OKR은 목표 달성을 트래킹하기 위해 특정 지표를 사용하는 매우 단순한 흑백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조직은 3~5개의 상위 목표(objectives)와 각 목표 당 3~5개의 핵심 결과(key results)를 갖게 됩니다. 핵심 결과는 목표에 대한 명확한 성능 평가를 얻기 위해 수치로 등급이 매겨집니다. OKR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항상 수량화/정량화가 가능해야 합니다.
0 또는 1의 바이너리 상태(성공/실패, 달성/미달성, 활성/비활성)나 0-10, 0-100의 척도를 갖고 점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명확한 타임라인이 제시되어야 하고, 매우 공격적인 달성 목표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OKR 프레임워크는 구글과 인텔에 의해 대중화되었지만 SAP, 아마존, 링크드인, 스포티파이, 그 외 매우 성공적인 회사들도 목표 관리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OKR은 성장에 초점을 맞춘 조직에 적합합니다.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조직의 KPI가 OKR 프레임워크에서 사용되는 주요 결과와 동일하게 이용되기도 합니다. 즉 큰 목표치를 OKR에서 설정하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결과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각 결과치에 가장 적합한 KPI를 설정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기업 조직의 경험과 충분한 토론 과정, 업무 적합도를 검토한 후에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SAP의 경우에도 기존 프로덕트의 버전업이나 유지 보수를 하는 성숙한 구조를 가진 팀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클라우드, 모바일, IoT와 같은 빠른 혁신을 요구하는 그룹에서 OKR을 적용하는 것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OKR은 성장이라는 큰 틀의 목표 위에 구축되기 때문에 직원과 조직을 매우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선까지 밀어붙입니다. OKR은 빠르고 공격적인 성장을 위한 연속적인 반복의 과정입니다. OKR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목표 #1: 모든 채널을 통해 고객 경험을 개선한다.
o 핵심결과 #1: 순 추천고객 지수(Net Promoter Score)를 5에서 8.5로 개선한다.
o 핵심결과 #2: 채널 간 고객 확보율을 30%에서 50%로 높인다.
o 핵심결과 #3: 고객 불만 사항을 30% 줄인다.
목표 #2: 수익률을 높인다.
o 핵심결과 #1: 유럽 세일즈 헤드를 고용한다.
o 핵심결과 #2: 온라인 판매 비율을 70% 이상으로 강화한다.
o 핵심결과 #3: 고객 이탈률을 5% 이하로 유지한다.
목표 #3: 새로운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론칭한다
o 핵심결과 #1: 기존 서비스 구독자의 전환율을 80% 이상으로 가져온다
o 핵심결과 #2: 서비스로 유입되는 블로그 채널 접속률을 30% 이상 올린다.
o 핵심결과 #3: 아이돌 스타와의 연계 마케팅을 한다.
비즈니스의 모든 부분에서 가시성이 확보된 상태가 아니라면, OKR을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OKR은 기본적으로 직원 수준에서 시작한 다음 관리자, 부서장 등 피라미드 구조로 만들어 확장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물론 탑다운 방식과 바텀업 방식을 혼합하여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기업 조직이 유지 보수를 주요 사업으로 하거나 완만한 성장을 하는 경우에는 OKR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OKR은 공격적이고, 빠른 혁신적 성장 목표를 갖는 스타트업 문화에 더욱 효과가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사람들을 하향식 또는 상향식으로 관리하는 것 중 무엇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KPI보다 OKR이 더 발전된 관리 기법이라고 소개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KPI는 직원 및 개별 팀의 생산성, 효과 및 효율성을 점검하는 역할을 하기에 안정감 있는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반면 OKR을 도입해 실행하는 업무와 팀들은 그들의 큰 목표에 집중하므로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목소리와 아이디어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낼 수 있고, 공격적으로 팀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조직의 민첩성과 유연성이 향상됩니다.
KPI와 OKR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예가 ‘여행을 가는 과정’에 대한 비유입니다. 당신이 어떤 장소로 차를 몰고 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서울에서 출발하여 최종 목표가 부산인 목적지인 경우 OKR이 차량이고 KPI가 대시보드의 지표입니다. KPI는 차량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려 주는 반면, OKR은 자동차를 최종 목적지까지 데려가 줍니다. OKR과 KPI를 사용하여 동일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합니다. OKR은 비즈니스 목표(부산에 도착)를 설정하고 방향을 측정하며, 더 큰 성공(더 빠르게 혹은 더 안전하게)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제공합니다. 그러면서 KPI 대시보드를 사용하여 연료 레벨, 엔진 오일 레벨, 차량 속도 등과 같은 실시간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KPI와 OKR은 단순히 일어나는 상황을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액션 아이템을 정하기 위해서는 그 액션 아이템이 만들어 낼 목표치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즉 고객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가 있을 때 고객과의 컨택 포인트를 넓히기 위해 일주일에 1회 이상의 DM도 보내고, 전화도 하는 액션 아이템이 설정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성 향상에 따라 ‘신규 고객의 웹사이트 방문 수’가 20% 이상 증가하는 KPI가 발생했고, 이 증가 수치가 신규 고객 유치율 5% 성장이라는 핵심 결과 Key Results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회사의 수익률을 높인다’는 기본 목표 달성이 가능한 과정이 됩니다.
모든 비즈니스의 성공은 개개인이 이런 새로운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보여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마인드를 갖추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강력한 성공 수단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노력한 모든 분을 늘 응원합니다.
김영욱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