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즈음 회사 동료로부터 제보를 하나 받았다. 오래전에 29CM에서 진행한 것 같은데 동물 얼굴에 사람 몸 합성해서 찍은 사진들이 지금 트위터에서 엄청 화제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좀 놀랐다. 왜 이게 지금 다시 화제가 된 거지? 그래서 트위터 링크를 공유받아 들어가 봤더니.. 오 마이 갓. 라이크와 리트윗 숫자가 모두 3천이 넘었고 이 정도면 이미 트위터를 통해 엄청 확산이 돼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멋있다. 쩐다. 심장 저격” 이라는 반응부터 “비스타즈 라이브 버전, 러스티 레이크가 생각난다”는 반응까지 다양했고 한국인들뿐 아니라 외국인들 반응도 꽤 많았다. (링크 보기)
정말 화제는 화제인지 이미 관련 기사도 발행된 상태였다.
이 프로젝트로 얘기하자면 정확히 2014년 5월에 진행된,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진행했던 프로젝트다. 왜 이것이 다시 재조명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 프로젝트는 사이트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니 말이다. 최초 트윗을 한 유저는 이것을 핀터레스트에서 찾아서 공유한 듯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이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한 나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또 반가운 일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당시 29CM의 인지도는 지금 같지 않았다. 소수의 팬들은 있었지만 다수가 거의 알지는 못하는 아주 조그마한 편집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해서 우리를 알리는 것이 중요한 시기였다. 그것을 위해 다양한 것들을 고민해보는 상황이었고 고민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하나의 명확한 테마(주제)를 잡고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임팩트 있게 풀어내는 것. 그리고 반드시 서비스와의 연결성을 놓치지 않는 것. 특히 두 번째가 중요한데 단지 바이럴만 만들기 위해서 서비스와 전혀 관계없는 무언가로 시선을 끄는 경우가 주변에 많았고 그건 무의미한 진행이라 생각했다. 반드시 서비스와 연결점이 있어야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년 5월 22일은 세계 생물 종 다양성 보존의 날이다. 아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 같긴 한데 난 이날을 하나의 테마로 잡았다.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우리를 통해서 알려 줄 수 있으며 그날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멸종 위기 동물들과 환경오염 등으로 글로벌 이슈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좋은 취지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얘기다.
29CM는 패션 중심의 편집숍이고 당시 스타일북이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다. 다양한 브랜드의 옷들을 내부 스튜디오에서 모델 착장과 함께 직접 촬영하여 사이트 내에서 보여주었기에 이것을 잘 활용하면 서비스와의 연결성도 가지고 가면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29 animals라는 프로젝트다.
멸종위기 동물을 보여주는 국내외 사이트들을 모두 뒤져 프로젝트 이름과 같이 29종의 멸종위기 동물을 선정했다. 그 동물을 대변(?)할 직원 29분을 선정하고 화보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입점 브랜드의 옷을 입혀 촬영했고 그 촬영본에 멸종위기 동물의 얼굴을 합성하여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것을 스타일북을 통해 업로드하고 각 동물의 정보와 왜 멸종위기인지를 함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참고로 동물 얼굴에 사람을 합성하는 콘셉트는 어느 스페인 사진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당시 해당 작가에게 연락해서 우리의 소개와 함께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잘 설명해 주었더니 너무 좋은 프로젝트라는 칭찬과 함께 자신의 작품 콘셉트를 사용해도 좋다는 동의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이 프로젝트는 완성되었고 2014년 5월 22일 세계 생물 종 다양성 보존의 날 오픈하기에 이른다.
당시 브랜드의 인지도가 지금에 비해 워낙 낮다 보니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시선을 끌고, 멸종 위기 동물에 대한 정보도 전달하면서 우리를 알려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시작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조금씩 페이스북을 통해 바이럴을 타더니 결국 몇몇 매체에서 이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는 데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슬로워크였고 또 하나는 파운드 매거진이었는데 이는 지금 폐간되었다.
당시는 내부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이렇게 이슈화되고 기사화된 경우가 없었기에 이것마저 큰 성과라 생각하고 뿌듯해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소량의 페이스북 광고비 이외엔 비용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에 결과가 더 의미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이것을 마무리하고 시간은 흘러 흘러 내 기억 속에서조차 이 프로젝트는 잊히게 되는데…이것이 6년 만에 다시 트위터를 통해 재조명된 것이다. 심지어 웹사이트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이 프로젝트를.
왜일까를 한참 생각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좋은 기획은 생명력이 길다는 것이다. 이는 이 프로젝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29CM 브랜드 북 역시 발행 당시인 2017년 초반에는 그리 큰 바이럴이 되지는 못했다. 물론 내부 직원용인 것도 있었고 외부 전달에 소극적인 것도 있었겠지만. 하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좋은 기획은 생명력이 길듯 그 책 역시 점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발간한 지 4년이 지난 아직도 이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위 링크의 브런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작년에는 베스트셀러였던 ‘기록의 쓸모’(이승희 저. 북스톤)에서도 ‘가장 진화한 기록물 세 가지’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다. 내용 중 “내부 구성원뿐 아니라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계속 화자 될 책이라 생각한다.”는 문장은 이 책의 생명력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좋은 기획의 조건은 뭘까? 브랜딩하는 사람으로서 난 개인적으로 이것을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한다. 첫째는 다른 곳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차별성, 여기에 해당 브랜드다운 모습이나 방식이 들어간다면 더 좋을 것이다. 둘째는 서비스와의 직간접적 연결성.. 이는 앞서 얘기한 대로 아무리 이벤트가 회자되어도 서비스와 연결성이 없다면 이것이 브랜딩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진정성. 이것은 어떻게든 이것을 성공시켜야겠다는 기획자의 간절함을 의미한달까? 이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생각과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태도와도 일치한다. 그런 열정이 있으면 좋은 기획이 나올 확률이 높고, 그것에서 나온 결과물이 더 반짝반짝 빛을 발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니 이런 기준 하에서 우리가 기획한 무언가가 당장 빛을 보지 못했다고 너무 서운해하진 말자. 위의 사례처럼 언제 어떻게 재조명되고 바이럴 될지 모르니까. 좋은 기획은 생명력이 길다.
전우성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