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과정은 자신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가 불편함을 느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솔루션을 찾게 된다. 그 과정을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한다. 그런 입소문이 점점 더 커지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베지밀의 창업 스토리를 가장 좋아한다. 정재원 명예 회장은 의사 일을 하면서 갓난아기들이 이유 없이 죽어 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년 넘게 방법을 찾았다. 이후 유당불내증(모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증상)을 발견하고 이를 두유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전국의 아기 어머니들이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두유의 수요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두유 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이게 정식품과 베지밀의 유래가 되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사업이 이뤄지는 것은 정말 이상적이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기회를 접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스타트업 창업에 있어 구루라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유명한 액셀러레이터와 VC들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객의 문제를 찾아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고객의 문제를 찾는다는 것은 직관적이지 않다. 고객의 문제는 고객이 직접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당신의 사업 아이디어에서 고객의 문제가 불분명한 이유). 또한 고객이 자신이 아닌 경우 고객을 공감하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아주 쉽게 이런 문제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창업을 한 번쯤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업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 아이디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1) 고객의 문제, (2) 그래서 그들이 취하는 행동 혹은 사용하는 제품, 그리고 (3) 이보다 더 좋은 나만의 해결책, 이렇게 세 가지 요소를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내가 가진 사업 아이디어를 이렇게 세 가지 요소로 분석해 보면 고객의 문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업 아이디어의 구성 요소 3가지 중에서 내가 제시하려는 해결책, 즉 어찌 보면 사업 아이디어의 가장 중요해 보이는 신제품의 아이디어는 마음속 저 구석에 묻어두고 당분간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할까? 사업을 하는 창업가 입장에서 유일하게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제공하는 제품밖에 없다. 고객의 문제, 고객이 현재 쓰고 있는 대안, 그리고 나중에 가서 고려하게 될 고객 유입 채널, 과금 모델 모두 창업자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많다. 창업가에게 주어진 자유는 어떤 제품을 만들까 — 하는 것에 거의 한정되기 때문에, 지금의 제품 아이디어는 잠시 묻어 두고 고객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가장 사업을 힘들게 하는 방법은 거꾸로 솔루션을 정해 놓고 이에 맞는 고객을 찾는 것이다. 이 경우 수많은 고객군을 검증해 봐야 한다. 그리고 솔루션을 검증하는 것, 즉 내 제품이 얼마나 큰 수요에 부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고객의 문제를 검증하는 것, 즉 고객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추정하는 일과 비교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한 다양한 산업 분야를 탐색해야 하므로 한 분야에 대해 깊게 이해하기 어렵다(반면에 고객 문제를 알아보는 것은 하면 할수록 해당 분야를 더 깊이 알게 된다). 수많은 고객군을 대상으로 나의 고정된 솔루션을 검증하는 일은 결국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럼 사업 아이디어에서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분석해 낼 수 있을까? 이건 합리적인 추론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고객이 내 제품을 쓰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으로 기술하면 그게 고객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고객의 현재 대안도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내 제품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고객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차선의 제품 혹은 행동을 유추해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부동산 직거래 앱을 생각해 보자. 직방, 다방과 같은 앱과 유사하지만 그들이 못하고 있는 아파트 중개 거래를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이 사업 아이디어 속에서 내가 추정하는 고객 문제는 ‘부동산 거래는 많은 전화 통화를 해야 하고, 중개인 혹은 매수자와 가격 실랑이를 해야 하는 등의 불편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 – 즉 현재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중개인과 사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정도로 생각된다.
이렇게 사업 아이디어에서 뽑아낸 고객 문제는 너무 평범해 보이기도 하고, 좋은 문제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더 좋은 고객 문제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발견의 마인드셋이 중요하다(10배 빠르게 업무 성과를 내는 마인드셋). 내가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릴 정도면 이미 이런 사업 아이디어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떠올렸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하지만 기존 대안보다 훨씬 훌륭하게 해결할 수 있는 고객의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사업 아이디어에서 뽑아낸 고객 문제에서 시작해 더 좋은 고객 문제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면, 어떻게 그 여정을 진행할 수 있을까? 고객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 알아보려는 고객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고객이 가진 다른 문제는 무엇인지 찾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고객 인터뷰가 필요하다.
이제 고객을 만나서 ‘이런 문제가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게 물어봐서는 절대 고객이 솔직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고객이 솔직해지는 것은 행동뿐이다. 그러므로 고객을 만나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난번에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The Mom Test: 고객의 말에 헷갈리지 않을 수 있는 고객 인터뷰 방법).
If I had asked people what they wanted, they would have said faster horses. 만일 당신이 사람에게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사람들은 더 빠른 말이 필요해 — 라고 답했을 것이다.
– Henry Ford
자주 인용되는 헨리 포드의 얘기이지만, 나는 이렇게 뭘 원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객이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고, 이게 큰 사업 기회가 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고객의 행동으로부터 고객도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문제를 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지난번에 했던 행동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 고객의 행동에서 현재의 대안(즉, 내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사람들이 쓰는 제품)을 파악해 내면 그 고객 문제는 검증된 것이다. 실제 문제가 존재한다면 비록 고객이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행동 혹은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창업가는 이런 고객의 행동과 제품을 파악함으로써 현재 고객의 대안을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사업 아이디어로부터 추론한 고객의 문제를 검증하다 보면 생각보다 훌륭한 기존 대안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는 결국 내 제품 아이디어가 경쟁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고객의 행동에 대한 얘기를 경청하면서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던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가 얼마나 직관적이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겪느냐, 얼마나 자주 겪느냐에 따라 좋은 고객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직거래 앱을 위해 고객을 만나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고객의 문제는 파는 과정이 복잡한 것보다 집주인이 현재의 시세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시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국토부 실거래가를 확인하고, 중개사가 올려놓은 호가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시세는 지금 얼마나 손님이 매물을 찾는지 아직 정부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실거래가 어떤 것이 있는지, 각 거래는 증여를 위함인지 실제 수요자와 공급자의 거래인지를 더 상세히 알아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그러한 시세에 관련된 정보를 빠르게 모을 수 있는 제품일 것이다.
또한 더 많은 고객 인터뷰를 하면서 고객으로부터 하나의 인사이트를 얻게 되었다. 아파트 시세를 알기 어려운 것은 사고파는 매매 횟수가 적기 때문인 것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부동산 직거래 앱이 솔루션이 아니라, 아파트의 조그만 지분이라도 사고팔 수 있게 해 주는 아파트 지분 거래 앱이 더 훌륭한 솔루션이 될 수 있었다. 지분 거래는 전체 아파트 거래보다 횟수가 비약적으로 많아지게 할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아파트의 시세가 마치 주식 가격처럼 알기 쉽게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파트 지분을 1%라도 확보하면 보유 주택 수가 늘어나 세금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미 보유 주택이 많은 사람들, 즉 부유한 사람들에게 투자 자산을 분배하는 하나의 새로운 애셋이 될 수도 있다. 아파트를 사려는데 자금이 부족한 사람들은 일부 지분을 투자자에게 팔아 일부에 대한 월세를 내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은 일부 지분을 사서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더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투자자들의 대안은 리츠 펀드, 카사와 같은 간접적 부동산 투자 펀드가 있다는 것도 고객으로부터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작하되, 그 아이디어에 내포된 고객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내가 익숙하지 않은 상향식(Bottom-up) 접근 방법이었다.
이미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풀 때는 하향식(Top-down) 접근 방법이 아주 좋은 효율을 발휘한다. 하향식 방법은 목표 결과를 낼 수 있는 체계적인 계획을 기획하고 이를 잘 수행하여 결과를 얻어 내는 접근 방법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대해 이미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효과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경로를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발견하게 될 때에 무의식적으로 이를 배척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계획의 일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향식 접근 방식은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들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발견의 마인드 셋을 바탕으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프로세스에 집중한다. 그 프로세스는 보통 고객의 얘기를 듣고 산업에 대한 이해를 늘리면서 그전까지는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결합하는 과정이다. 그런 프로세스를 계속하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문제 혹은 해결 방법을 떠올릴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하향식으로 사전에 계획할 수 없는 결과이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 최초의 사업 아이디어를 더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피상적으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고객의 숨은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업을 하려는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확신을 가지게 된 창업가들은 고객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나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대신에 창업가는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정말 좋은 고객 문제를 찾는 씨앗이 되는 아이디어가 생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씨앗을 통해 새로운 고객 문제 탐색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업 아이디어에서 나온 나만의 솔루션에 대한 생각은 잠시 마음속에 묻어 두어야 한다.
이처럼 사업 아이디어는 창업가가 탐색해야 할 고객 문제의 시작점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그 외에도 사업 아이디어, 특히 그 안에 내포된 나만의 해결책은 그 탐험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나의 최초의 사업 아이디어 속에는 접근 방식이 색다른 해결책이 포함되어 있다 —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해결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비록 고객의 문제가 어느 정도 바뀌더라도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여전히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다.
또한 그 색다른 관점의 해결책은 고객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아직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나의 해결책이 정말 문제를 훌륭하게 풀어내어 세상 사람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상상, 즉 꿈을 꾸는 것이 있으면 지금 고객의 문제를 알아보는 것을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다.
해당 콘텐츠는 김태현(tkim.c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