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컨대, 그것은 본인이 내키지 않은 일을 팀장인 내가 지시했다거나, 일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거부 반응이 없다 하더라도 일을 진행하는 방식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과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느껴서일 거다. 여하튼 내게 업무를 지시받은 팀원은 겉으로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심지어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순응하려는 나름의 노력은 채팅창의 텍스트에서도 느껴질 정도.
그 혹은 그녀에게 어쩔 수 없이 평소와는 다른 감정에서 비롯된 디테일이 발견된다. 스스로는 완벽하게 자신을 make-up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위장되지 않은 표정과 억양, 미소, 말투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부자연스러움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
필요와 상황, 시기와 중요성, 해당 업무의 이해관계자와의 특성들을 고려해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건만,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발견할 때면 굉장히 고민스러워진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해주어야 할지 아니, 이야기해주어야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조금 더 넉넉하게 품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이야기해준다면 어느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네줄지..
동시에 팀원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올라온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텐데’
‘적어도 내가 괜히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지 않을까’
‘아직도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가..’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팀원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역할을 수행하고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의심’을 받고 싶지는 않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왜 나한테 시켜!’
‘간단한 건데 자기가 하면 되지 왜 나한테 던지지!’
‘이걸 꼭 이런 방식대로 해야 하나!’
‘하필이면 이걸 왜 지금 해야 하나!’
‘굳이 여기까지 챙겨야 하는 건가!’
와 같은 의심 말이다.
팀장은 억울하다.
난 그런 의도가 없고, 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고, 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고,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업무를 요청 혹은 지시받았다’라는 하나의 사실에서 자신의 나름대로 ‘의도’를 곱씹으며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판단은 기어코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건드린다. 과거에 그릇된 리더십의 행태에서 상처를 받은 영혼이 본능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허구적인 ‘이야기’를 자신에게 스스로 전달한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는 판단이 감정, 정서와 뒹구는 과정을 통해 이미 ‘주관적인 사실’이 되어버린다. 과거의 경험에서 억압과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지나간 경험에 대한 발전적인 해석과 화해가 따르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그 과거는 현재 자신의 정서를 지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와 조직 안에서 우리 대부분은 현실 안에 산다기보다 각자의 해석으로 존재하는 ‘이야기’ 속에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심을 방지하고, 조금 더 끈끈한 팀워크로 일하고 싶어서 나름 나의 전문성을 보여주려고 애를 써왔다. 팀원을 시킬법한 일도 어지간하면 내가 해결하고 내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애썼다. 그냥 넘겨도 되는 일을 ‘맨바닥에 헤딩시킨다’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어느 정도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고 판을 깔아 놓은 다음에 팀원에게 이후의 팔로업(Follow-Up)을 부탁하는 방식으로 일을 맡겼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항상 프로답게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프로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
프로는 장소와 상황에 상관없이 기대되는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와 결과물을 보여주는데 그들에게 요구되는 일관성은 결과물이나 성과의 수준에 대한 일관성도 있지만, 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루틴’에 있다. 프로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루틴이 있다. 루틴은 곧 꾸준함이다. 어떤 프로는 그가 스스로 어떤 루틴을 가지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의 꾸준한 단련과 노력이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자연스레 배어있는 ‘무의식적 루틴’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타인에게는 매우 버겁고 어렵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대한 꾸준함이 프로의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는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루 이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마득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습관처럼 이어져 온 삶이기 때문이다.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히 프로답다고 말을 하긴 어렵다. 순종과 근면은 프로가 갖추고 있어야 할 충분조건이 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최고 수준의 순종과 근면의 태도를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타인에게 종속되는 삶을 벗어나긴 어렵다. 더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타인의 지시를 기다리며 그에 맞추어 행동을 취하는 방식은 경계를 가르지 못한다. 경계를 가르지 못하면 결코 압도적인 성장과 혁신은 따라오지 않는다. 프로는 항상 ‘다음’을 생각한다. 이다음 목표는 무엇인지, 어떤 일을 진행해야 할지 그를 위해 자신은 다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행한다. 자신의 일, 역할, 프로젝트, 그리고 삶에 대해 자신의 어젠다(agenda)를 설정하고 그에 맞게 역할을 고민한다.
프로는 자신의 역할을 고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조직 안에서는 직무 규정이나 R&R에 얽매이지 않고 일의 영향(impact)을 고민하며 역할을 확장하고 유연하게 조정해나간다. 수평적으로 자신의 범위를 조율하여 어떤 일은 A부터 Z까지 수행하지만, 또 어떤 일에는 필요에 따라 A부터 C까지만 역할을 가져가기도 한다. 또한 수직적으로 자신의 개입을 조율하여 어떤 일은 조언과 질문으로 일의 방향을 설정하고 일의 과정이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지만, 또 어떤 일은 명확한 지시와 요청으로 개선하고 수정하며 육성하고 보호한다.
그들은 메이저리그에서 뛰길 원하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낀다. 어쩔 수 없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와신상담하며 언제라도 메이저리그에 다시 복귀할 수 있게 꾸준히 자신을 단련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프로는 자존감이 높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프로라고 여긴다. 본인이 프로인 만큼 프로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만일 상대방이 아마추어라고 여겨진다면 아마도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에 대한 감정보다 자기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프로인 내가 왜 아마추어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들은 프로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메이저리그로 곧 떠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일찍이 피터드러커 선생님은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실행 능력뿐‘이라고 이야기했고 ‘실행 능력은 하나의 습관‘이라고 하셨다.
지금 우리 조직은 ‘프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전문성은 물론이고 사회성도 떨어지는데 자신을 스스로 ‘프로’라고 여기는 자뻑충들 말고, 조직 안에서 누구나 프로라고 여기는 그러한 사람의 특성은 무엇인가?
혹시나 그들을 ‘괜히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 만드는 골칫덩이로 여기고 있진 않은가?
그들을 팀장 혹은 리더로 모시고 있는 팀원들은 그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프로인 그들은 그들의 리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 조직에서 이야기하는 프로의 정의도 한 번 살펴볼 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프로다움‘은 무엇인가? 진정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원하는가? 말이다.
* On-Demand 워크숍을 위한 모 부서 Needs Assessment 인터뷰를 하며 든 생각을 정리-
브랜딩인가HR인가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