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기자를 꿈꾸던 한 취업 준비생이 얼떨결에 한 유명 패션 매거진에 다니면서 겪는 일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입니다. 패션 업계가 주 무대인 만큼 개봉 당시 프라다를 비롯한 베르사체·에르메스 등 다채로운 고급 패션 브랜드들의 향연이 단박에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감을 자아낸 건 주인공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의 직장 내 고군분투였죠. 종국엔 기자가 되고자 하는 이로선 쉽게 몰입하기 힘든 생소한 업계에서, 극히 치열하고 깐깐하게 일하는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를 모시며 겪는 그의 커리어적 혼란이 인상적이었죠. 때문인지 아직도 직장 생활과 커리어를 고민할 때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작품입니다.
이번주 리멤버 커뮤니티에 올라온 숫자노예님의 고민과 여러분의 댓글 속 사연은 이 영화 속 주인공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합니다. 우린 저마다 연봉 상승과 함께 자신의 커리어를 부풀게 할 수 있단 꿈을 안고 다른 직장을 찾아나서죠. 그러나 때때로 회사는 약속과는 달리 내 주력 업무와 아예 다른 일을 맡기거나 잡일까지 도맡게 하곤 합니다.
물론 취업난 때문에 사정을 알고도 생소한 업계에 등 떠밀려 입문한 앤드리아와 사정은 조금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내 커리어와 무관한 것만 같은 일을 해내야 할 때 맞닥뜨리는 걷잡을 수 없는 후회와 막막함은 같을 것입니다.
리멤버 커뮤니티 원본 글 보기 > 이직했는데 커리어가 망가질것 같습니다.
이직은 했는데 예상 못한 업무에 맞닥뜨린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커뮤니티에서는 의견이 팽팽히 갈린 편인데요. “당장 빠른 재이직에 나서야 한다”고 의견 주신 분들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합니다.
이른바 ‘물경력’, 커리어 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는 경력을 가리키죠. 물경력을 유지하느라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력난에 잘 써먹지도 못할 물경력 때문에 자칫 이력서상 공백기도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재이직에 해만 될 뿐이란 거죠. 심지어 부수 업무도 아닌 잡일 위주로 맡고 계시다면 경험적으로도 얻을 게 거의 없으니 당장 나오시라는 말씀이네요.
위와 반대 의견을 주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얼떨결에 맡은 부수 업무가 자신이 담당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의 확장일 수 있다는 겁니다. 회사가 개인 사업과 명백히 다른 건 팀 플레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실력 발휘할 영역이 넓어진다면 그만큼 자신의 사내 입지도 강해질 수 있겠죠.
향후 관리자, 혹은 임원급을 내다보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선까지 모든 업무를 두루두루 아는 게 메리트가 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 서로 다른 직무들을 잘 헤아리고 있는 게 명백히 도움이 되겠습니다. 조금 멀리 내다보자는 의견인 겁니다.
무턱대고 버티는 건 주력 커리어를 분주히 쌓아갈 동종 업계 경쟁자들을 고려할 때 뒤쳐짐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껏 연봉까지 올려서 갔는데 바로 나오기란 녹록지 않죠.
당장 답을 내려 발을 확 빼든 더 넣든 할 수 없는 거라면,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이란 사표를 던지기 전까지의 행동이겠죠. 이 기간 우린 사내에서 무엇을 성취해야만 할까요? 다시 앤드리아의 얘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스포일러 주의!).
앤드리아는 결국 매거진을 관두고 자신이 바라던 신문사에 들어갑니다. 이때 옛 상관이었던 편집장 미란다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죠. 악연이었을 법도 한데 두 사람이 나누는 시선은 따뜻합니다. 극 중 단 한 번도 ‘진짜’ 미소를 짓지 않던 냉혈한 미란다가 앤드리아를 보고 짓는 미소는 이 영화의 백미로도 꼽힙니다. 단 한번도 상상하지도, 쳐다보지도 않았던 다른 누군가의 치열한 비전을 공유한 이들끼리만 느끼는 무언가였을까요.
원치 않게 떠맡은 ‘망할 놈의’ 이 직무와 이 직군 동료들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이 기회가 아니라면 나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이 일을 그들은 왜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었을지를요. 그들끼리 공유하는 비전을 나도 한번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면 성공입니다.
그럼 언젠가 다시 내 주력 직무로 돌아왔을 때 이것만 들입다 판 경쟁자들과는 결이 다른 누군가가 돼 있을 테니까요. 남의 비전을 온전히 내 걸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내 직무만 헤아리던 시선의 폭은 넓어지고 어느덧 조직의 비전을 함께 그려가는 더 큰 내가 돼 있을 테니까요. 서로 다른 비전들이 함께 굴려가는 게 회사라는 조직이잖아요.
마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을 언급해주신 모니터받침대님의 댓글에서 우리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래에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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