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랜딩 프로젝트 PM을 맡아보시겠어요?
합류 첫 날부터 큰 미션이 떨어지니 살짝 당혹스러웠다. 다행히 팀에 디자이너 두 분 그것도 BX를 메인으로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든든했다. 조직에 대해서도 잘 알고, MCN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도 높으신 것 같아 꽤 오랜 기간 있던 멤버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결국 연매출 100억 짜리 뷰티 MCM 회사의 리브랜딩 TF는 합류 3개월, 2개월 그리고 첫 출근 2시간 된 나. 이렇게 ‘뉴비’ 셋이 시작하게 되었다.(앞선 글 보기)
리브랜딩이 필요한 타이밍은 언제일까. 내가 속한 스타트업 ‘디밀’은 2017년 1월 뷰티 MCN(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 회사)으로 시작했다. 2020년 8월까지만 해도 전 직원이 12명 정도로 생존이 최대의 과제였다. 하지만 현대홈쇼핑과 아모레퍼시픽그룹이라는 거대한 공룡들로부터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고, 큰 변화가 닥치게 된다. 실제로 투자 이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인원 수가 40명에 육박했고, 사업 영역도 크게 확장했다.
구성원이 반 년 만에 3.5배 가량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은 회사의 정체성에도 큰 변화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조직 문화 차원에서는 혼란으로 치닫기 전의 ‘골든 타임’이다. 게다가 미래를 향한 비전까지도 설정해서 누가 새로 들어오든 전체가 한 방향으로 정렬(Align)하게끔 최소한의 틀을 구축해 놔야 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회사 내에 흩어져 있던 문화의 파편들을 모아서 ‘리브랜딩’이라는 작품으로 다시금 묶어내기로 한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와 멤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회사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조직의 비전도 각자의 멤버들에게 와닿게 조금 더 구체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일방적인 결정보다는 구성원들의 뜻을 모아 기업의 방향성과 핵심 가치를 재정립하고, 앞으로 합류할 멤버들의 동료상을 정의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봤다. 이 과정이 없는 브랜딩은 껍질 뿐이며, 진심으로 한 뱡향으로 나가기 힘들다고 봤다.
특히 지금의 우리 뿐 아니라 비전에 맞게 성장해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담아내야 했는데, 짐 콜린스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나오는 “Good to great“로 큰 틀을 잡았다. 대표인 헌주님의 말처럼 “다니기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성장하기 좋은 회사로의 변화“를 추구하며, 멤버의 성취가 전체 조직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다시 개인의 성장으로 돌아와 위대함을 향해 선순환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을 통해 ‘연결’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추출했다. 브랜드와 크리에이터, 고객과의 관계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고객은 실제 소비자 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을 가장 먼저 겪는 내부 고객, 즉 구성원을 포함했다. 팀원들과의 협업과 인연이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함께 더 큰 세상을 만들어가는 관점에서의 시작점이니까. 누구도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러한 생각이 현실이 되려면 결국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실제 구성원들이 개인의 성과보다는 팀워크로, 동료를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라는 태도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미션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우리는 주도적 자세, 원활하고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프로다운 책임감이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업 가치와 방향성을 가다듬는 과정이 가장 길었고, 신중하게 이뤄졌다.
어렵게 한 곳으로 모은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라는 타이틀이 구호로만 남지 않게 하려면 문화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연결, 이타적 이기주의, 성장’이라는 핵심 가치와 ‘주도성, 커뮤니케이션, 책임감’이라는 동료상을 실천할 방법을 고민했다. 실재하지 않는 문화는 허상이며, ‘겉멋’이라고 확신한다. 함께 만든 방향성과 철학이 지속되도록 하는 기둥을 만들려면, 모두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는 분명한 액션이 필요했다.
카카오 조수용 대표께서는 “누가 승진하고 떠나는가가 조직 문화의 전부“라고 말한다. 우리도 어떠한 행동이 존경을 받고, 반대로 어떠한 성향이 자신을 깎아 먹는지 명확히 하기로 했다. 먼저 ‘디밀 베스트헬퍼(델퍼)’라는 제도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각자 업무에 도움을 준 사람을 투표해 20만 원 상당의 상금을 주고 피규어를 만들어 ‘명예의 전당’에 전시하기로 했다. 더불어 핵심 가치와 인재상을 평가 기준에 포함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구축하고자 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것도 브랜드 경험을 내재화 하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봤다. CI의 경우 디밀의 오리지널리티를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로고의 가독성을 높이고 브랜드 컬러를 재정립하는 데 신경 썼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에 없던 굿즈를 통해 기업 아이덴티티를 시각적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그렇게 비주얼 가이드, 웰컴 키트와 실제 업무에서 쓰이는 각종 아이템 기획 등으로 이어졌다.
프로젝트 자체의 즐거움과 전략적 효용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하는 점은 이러한 가치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순환 구조였다. 브랜드 경험과 조직 문화에는 완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은 없기에 구성원끼리 멈추지 않고 논의하고 토론하고 맞춰가는 그 과정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다. 토스 이승건 대표께서 “우리는 실패율 95%짜리지만 좌절하지 않는 조직”라고 말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류태준 님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