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 ‘메타버스 시대, 실감기술을 활용한 패션산업 흐름과 전망’ 1편 바로 가기
‘완전경쟁시장’은 다음의 4가지 조건을 가진다.
1) 진입장벽이 없어 기업(공급자)의 시장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고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존재함
2) 가격은 오직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며, 외부 요인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함
3) 시장 참여자는 가격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짐
4) 거래되는 상품의 가치는 동질함.
현재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하는 다수의 비즈니스들은 ‘가치 소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경매형’의 오픈 프라이스 정책을 취하는 사례가 많다. 가령,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BMW같은 최고급 자동차보다도 SPA브랜드 의류가 더 비싼 금액으로 거래될 수 있다. 현재 메타버스 내에서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품목들 중 다수는 패션 카테고리에 속한다.
미국의 IMVU는 20만 명 이상의 크리에이터가 만든 5천만 개의 아이템이 거래되고 있는 패션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IMVU에서는 모든 거래 조건이 어떠한 외부의 개입도 없이 판매자와 구매자의 공급-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심지어 동일 디자인인데도 구매자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형성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런 IMVU의 인기는 갈수록 뜨거워져서 2020년에만 성장률 44%, 월 활성 이용자(MAU)는 700만 명을 기록했다. 그에 따라, IMVU는 2021년 4월말 기준으로 매달 거래 발생 건수가 2700만 건 이상, 월평균 거래액이 140억 달러(원화 약 16조 1200만원)에 달하며 대표적인 패션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입지를 굳힌 상태다 (N.Phelps, Vogue, 2021.5.27).
앞서 언급했던 ‘파브리칸트’의 드레스 ‘Iridescence’도 구매자가 평가한 가치로 금액이 결정된 사례다. 무명 회사의 제품이 9,500달러(원화 약 1천1백만원)라는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었던 것은 메타버스 환경이었기에 가능했다. 제품 구매자는 이 드레스를 아내 선물용으로 구매했는데, ‘장기적 가치’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지불할 만한 ‘투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C.Hackl, Forbes, 2020.6.8).
심지어는 디지털 상품이 현실 세계의 실물 제품보다 고가로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2월 중국 기업 ‘RTFKT’가 선보인 가상 운동화는 단 7분 만에 600켤레가 완판되는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RTFKT가 가상 운동화 판매로 올린 매출은 310만 달러(원화 35억 7천만 원)였다. 물리적 제품은 아니지만, ‘구찌’의 경우 2021년 6월 신제품 컬렉션을 홍보한 영상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경매로 2만 5천 달러(원화 2,880만 원)에 판매한 사례도 있다(이지현, 한국경제, 2021.6.17).
물리적 실체가 없는 가상 상품에 소비자들이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던 기존 이커머스 생태계와는 결을 달리한다. 메타버스 기반의 커머스는 고객들이 해당 제품 또는 서비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 확고한 브랜드 명성이 없어도, 또는 패션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어도, ‘투자할 만한’ 제품이라는 것이 납득되면 고객은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 메타버스 패션 시장의 특징이다. 이는 동일 브랜드라도 복수 포지셔닝 전략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매력적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패션 메타버스 커머스 시장은 갈수록 가치 기반의 경매형 비즈니스 모델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매형 비즈니스에서는 선도 기업이 구축한 인프라나 브랜드 이미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대신 개개인의 평가로 브랜드 가치가 측정되고 가격 범위가 다양해지기 때문에, 기존 플레이어나 후발주자 할 것 없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패션과 메타버스의 결합이 활발한 또 하나의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메타버스 환경은 기업의 투자효율성(ROI)을 높인다. 가상 피팅과 가상 스타일링을 비롯해서, 가상 패션쇼, 3D 구현을 통한 가상 시제품 제작 등은 소비자의 구매 결정을 돕는 동시에 기업의 시행착오를 줄여 반품과 재고율을 낮출 뿐 아니라, 가상 스타일링의 SNS 공유 등을 통해 마케팅 효과도 높일 수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뷰티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23%가 가상 메이크업 앱을 알고 있으며, 이 중 52%가 구매 전에 가상 메이크업 앱을 활용한다. 소비자들의 이러한 행동 패턴은 제품을 경험하는 시간을 늘리고 구매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일례로 AR뷰티앱 ‘브와(Voir)’는 가상 메이크업을 경험한 18∼44세 소비자들의 구매 전환율을 8~12%까지 끌어올렸다. 일반적인 뷰티 이커머스 사이트의 구매전환율이 1∼3%인 것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숫자다(S.Willersdorf et.al., BCG, 2019.8.6).
‘쇼피파이(Shopify)’도 제품을 3D VR로 살펴볼 경우 구매 전환율이 250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잡화 브랜드 ‘레베카 민코프(Rebecca Minkoff)’는 2019년 가을부터 제품 페이지에 3D VR 기능을 적용한 결과 장바구니 담기와 구매율이 각각 44%와 27% 증가했으며, AR로 제품을 살펴봤을 땐 구매 전환율이 65% 높아졌다(J. Wade, Shopify Blog, 2020.3.14). 아웃도어 배낭 브랜드인 ‘미스터리 랜치(Mystery Ranch)’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월간 웹사이트 방문자 중 AR 기능을 사용한 고객들의 90%가 상품을 구매한 것이다. 구매 전환율로 환산하면 3.74%인데, 이는 일반 고객들의 전환율보다 무려 43.4%가 높다(정해순, 패션비즈, 2020.10.).
패션 브랜드 ‘틸리스(Tillys)’는 2020년 미국 내 200개 이상의 오프라인 매장에 ‘디지털 커머스 360(Digital Commerce 360)’사의 AR 윈도우를 설치하여 효과를 보았다. AR 윈도우는 고객에게 당사 제품을 입힌 가상의 3D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실물 크기로 보여주는 서비스인데, 이 기능을 도입한 이후 틸리스의 매장 방문율은 30%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Digital Commerce 360 Website).
메타버스 기술은 제품 기획에도 활용할 수 있다. 3D 디자인과 프린팅 기술은 제품 기획 단계만 수개월이 걸리던 기존 방식에 비해 기획부터 디자인, 시제품 제작을 단 몇 시간 만에 완성시킨다. 3D 디자인 기업인 ‘앨버논(Alvanon)’의 가상 디자인 솔루션 ‘ABP(Alvanon Body Platform)’는 패션 브랜드 제품 기획 과정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 아머(Under Armour)’는 이 솔루션을 활용하여 3D 시제품 제작 이후 1~2일 내에 본 생산에 돌입하는 등, 물리적 샘플량과 제품 생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 것으로 알려졌다(Just Style, 2020.4.15).
메타버스 기술은 반품률 개선에도 효과적이다. 온라인으로 옷을 살 때 고객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사이즈(Size)와 핏(fit)이다. 화보 형식의 멋진 카탈로그는 고객의 구매를 자극하는 중요 요인이지만, 동시에 구매를 망설이게 하고 반품률을 높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 글로벌 패션 업계는 무려 60~80%에 달하는 반품률로 골치를 겪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2020년 패션 상품의 반품을 처리하는 비용으로 무려 653조 원이 소요되기도 했다(정해순, 패션비즈, 2020.10.). 온라인 실태는 더 심각해서, 오프라인보다 반품률이 최소 20%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이다(C. Hackl, Forbes, 2020.6.8).
쇼핑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반영된 행위다. 무언가를 갖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물물교환 행위를 ‘비즈니스’로 발전시켰고, IT기술의 발전은 ‘아마존’, ‘이베이’, ‘쿠팡’ 같은 대형 온라인 유통 플랫폼들을 탄생시켰다. 덕분에 인류의 커머스 공간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단일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에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은 본격적인 메타버스 시대를 열며 인류의 활동 공간을 또 한번 확장시켰다. 2000년대 중반 ‘세컨드라이프’와 함께 잠깐 화제를 모았던 메타버스는 어느 순간 인류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듯 보였지만, 비대면 생활권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인류의 ‘미래 공간’이자 ‘미래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이커머스 초기 발전을 이끌었던 패션 기업들은 이제 메타버스 산업 발전을 이끄는 주요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들 기업은 가상 런웨이, 가상 피팅, 가상 스타일링 등 실감기술을 누구보다 적극 활용하며, 다양한 형태의 신규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데 열심이다. 일례로 디지털에서만 존재하는 ‘가상 패션 제품’ 서비스를 전용으로 하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패션 기업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다양한 신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메타버스 커머스 과정에는 전혀 새로운 원리가 작용된다. 메타버스에서 거래되는 디지털 상품 가격은 고객이 부여한 ‘가치’에 기반하며, 현실에서 저관여, 고관여 분야로 구분되었던 기준은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메타버스 비즈니스를 고민하는 기업들이라면 실감 기술을 활용하여 고객들에게 실재감을 제공하고 몰입감을 높이는 부분에 주력해야 한다. 이는 고객의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과는 전혀 다른 문법의 ‘가격’ 형성을 통해 단기간에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시간과 비용 효율성의 개선도 패션 기업들의 실감기술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3D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생산으로 재고량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가상 피팅이나 가상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의 구매결정을 돕는 것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이러한 점에서, 실감 기술을 접목시킨 비즈니스 개발이 앞으로 기업들이 주력해야 할 필수 경영 전략이라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개념적으로는 명확한 정의가 합의되지 않았고, 실감기술을 접목한 비즈니스 모델 대부분이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다양한 실감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출현은 갈수록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관건은 “’언제’, ‘어떻게’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론을 찾아내는가”일 뿐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현 시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방안으로 메타버스 기술 활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선,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유입되고 있는 고객군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타버스에서는 현실과 전혀 다른 새로운 브랜드 가치와 고객 행동이 발견될 수 있다. 고객은 자신의 판단 기준에 따라 ‘제품의 가치’를 직접 평가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가격’도 직접 결정한다. 본래 ‘기업’이 가졌던 비즈니스 주도권이 ‘고객’에게로 전이되는 이러한 현상은 고객과의 소통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높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가령, 메타버스 공간에서 실감기술을 활용하여 가상 모델이 되어 패션쇼를 열고, 가상 시상식을 주최하며, 가상 스타일링과 3D 시제품 감상을 통해 현실에서의 활용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은 ‘콘텐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스토리텔링’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모든 기업은 미디어 기업”이라는 ‘포렘스키(Foremski)’의 유명한 명제는 이커머스 기업에게도 적용된다. 메타버스 환경에서 기업은 보유 브랜드(또는 서비스)를 통해 자신만의 문화를 생성하는 창작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이상적인 가치 기반의 비즈니스를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메타버스 환경이 거대 광고판이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미디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확실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러면서도 방문자(소비자)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메타버스 문화와 규범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2007년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구축된 모바일 생태계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다변화 시키며 비즈니스를 보다 유연하고 풍부하게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팬데믹을 겪으면서 이커머스는 ‘메타버스’로 통칭되는 새로운 플랫폼과 기술을 온전히 구현하는 방향으로 또 한번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과거 온라인 쇼핑은 여러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직접적 체험’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오프라인 쇼핑을 보완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그러나 메타버스 환경은 이러한 온라인 쇼핑의 한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이제 고객은 실감기술로 개별 제품을 ‘실제와 유사하게’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으며, 현실과 동일하게 구현된 미러월드 공간에서 오프라인 매장과 거의 동일한 쇼핑 경험을 할 수 있다.
현실 공간인 ‘오프라인 매장’과 가상의 ‘온라인 몰’을 융합한 ‘메타버스 몰’은 이커머스 비즈니스가 이루어질 차세대 필수 공간이다. 많은 이들이 메타버스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SNS나 앱을 통해 개인의 데이터를 수집·기록하는 데 집중하는 라이프로깅(Life-logging)에 집중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홀로그램, 반응형 3D등 메타버스의 기술적 특장점을 반영한 다양한 방식의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이 흐름을 패션 시장이 이끌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며, 우리가 패션 업계의 이커머스 행보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Reference>
Report/Article/News
박호현 (2021.7.2). “패션 스타트업도 메타버스로”···패스커, 41억 초기 투자유치”, 서울경제.
유진희 (2021). <메타버스(Metaverse), ‘비즈니스의 확장’과 ‘혁신’을 여는 공간>. 문화관광 2021년 6월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KC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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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Williams (2019.10.4). “GOAT showcases world’s rarest sneakers with AR try-ons”. Marketing Dive.
Website
YouTube
Bazzar UK. “Virtual tour of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
INDE. “VyuAR Augmented Reality store at Tilly’s retail stores”.
Alvanon. “Introducing the Alvanon Body Platform”.
유진희(피아비키)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