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태도가 되면 정말 안되기에
제가 처음 사회생활을 할 때 이직하는 선배가 제게 해 준 말이 있었습니다.
“일은 잘하고 못하고 할 수 있어. 근데 태도는 중요해. 자세를 보고 준단 말이야.”
배움이 필요한 시기였기에 태도를 잘 유지해야 좋은 배움도 있고 좋은 업무도 있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선배의 눈에 저는 아직 혈기 왕성하고 감정 제어가 잘 안 되는 그런 후배였을 겁니다. 저 좋으라고 한 말이지만 선배의 꼰대 같은 말투가 아직도 생각날 만큼 그 조언은 좋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저는 들이받고 티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보고 라인에 있는 상사와도 싸우고 기획을 하면서 연관 팀장님과도 모두가 알도록 큰 소리로 다투는 일화들을 만들어 냈었습니다. 당시 제게는 부조리한 것은 싸우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표현을 그 자리에서 다투는 것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할수록 ‘화내면 나만 좋지 않구나‘, ‘화를 내지 않고 할 말을 해야겠구나‘, ‘감정이 아닌 논리와 근거로만 추슬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생활은 대부분 화내면 지는 게임이기에 그렇습니다. 화를 내는 마음과 논리가 나쁜 게 아니라 그게 그저 화를 내서 나쁜 취급을 받는 게 사회생활에 빈번했습니다. 화만 내지 않으면 다음을 내가 모색할 수도 있는데 다만 화를 낸 장면이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가 되었든 고객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소비자와 만날 수 있고 조직 내부에서 내 결과물을 통해 일을 하는 다른 팀이 내 고객이기도 합니다. 다른 회사에 협업하는 분이 고객이기도 하고 보고를 받는 분이 고객이기도 하죠. 나의 퍼포먼스가 누구에게 가치를 얼마큼 주는지에 따라 고객이 결정됩니다. 같은 말이라도 화를 내는 태도는 강한 방어 논리로 보입니다. 논리적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거나 한 번 더 수정할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죠. 완강한 공급자입니다. 수요에 비해 차별화된 결과를 늘 제공하는 공급자라면 완강해도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하며 거래를 하지만 우리가 알듯 비슷하면 태도에서 거래선을 정리합니다. 어르고 달래는 방법이 결과적으로는 나쁜 방법이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리더십에 대한 요구는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관리자가 아닌 전문적인 실무를 계속하고 있음에도 리더십을 요구받습니다. 누군가가 온보딩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해야 하고 사람과 과제를 연결하는 일도, 새로운 기술을 알고 그걸 조직에 리드해야 하는 역할을 누군가는 요구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성장 경로가 예측 가능한 사람에게 리더십을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 드러나고 있는 직장 내 갑질 문제처럼 아직 불같은 성격에 난폭하고 무례한 태도를 카리스마라 생각하는 사람이 없진 않지만 점점 사회는 변해가고 있습니다. 보이는 실력이 비슷하다면 조직에 함께 있는 분들이 편하게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 리더십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리더십인 것이죠. 더 이상 위는 리드할만한 유용한 경험과 새로운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화내고 뒤에 달래는 모습의 리더십이 설 수 있는 공간은 작아지고 있습니다.
리더십의 연장 선상에서 조직에 화를 내는 리더는 교정적 피드백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교정적 피드백은 누군가에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수정할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주고 바로잡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좋은 행동을 계속하도록 하는 지지적 피드백과는 다른 모습이죠. 하지만 교정적 피드백이 화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아이의 행동을 바꾸려는 부모 출연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닌 팩트에 의한 접근이기 때문이죠. 조직의 성장을 꾀해야 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드라이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감정에 휘둘리면 가능성이 있는 원석의 동료는 회사를 떠날 것입니다. 이것은 화를 내는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인 것 같네요.
화를 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수준을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업계에서, 세상에서 나는 어떤 수준이고 무엇을 못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화가 날 이유가 별로 없다는 게 제가 얻은 결론이었습니다. 이 회사 안에서 여기 조직 안에서 내가 왕처럼 지내고 과거에 했던 것처럼 다 안다고 생각할 무렵 화내도 될 자신감이 붙습니다. 내가 회사고 내가 여기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면 다른 조직과 회사와 붙게 되기도 합니다. 겸손은 정확한 내 상황을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작년 한 해 많이 팔린 책 중 하나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였습니다. 책 제목처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반적 범위의 공급자인 모두에게 능력만큼, 그 이상으로 평판을 유지하는 방법은 안정적인 정서입니다. 화만 내지 않는다면 2022년은 보다 좋은 사회생활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PETER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